들소의 달

장르
연극 - 연극
일시
2010.05.12 ~ 2010.05.16
장소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관람시간
90분
관람등급
만 14세이상

전문가평

평점 7.0

예매자평

평점 9

전문가평

평점 7.0

예매자평

평점 9
공유하기

공연 영상포토

더보기2

작품설명

극작가 겸 연출가인 고선웅이 직접 쓰고 연출한 <들소의 달>은 극공작소 마방진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특유의 연극적 형식과 해법이 잘 녹아있다. 한 인간의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를 쫓아가는 형식으로, 폭력에 노출된 한 인간의 후유증이 얼마나 오랫동안 집요하게 지속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폭력’이라는 자칫 자극적이고 어둡게 흐를 수 있는 소재를 극공작소 마방진만의 접근방식으로 심각하지 않게 형상화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마이클잭슨의 뮤직비디오에서 볼 수 있는 군무라든가 막간극으로 펼쳐지는 아동극, 힙합 공연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적재적소에 배치해 관객들의 시선을 작품이 끝날 때까지 붙잡는다. 더불어 배우들의 탄탄한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절제되면서도 역동적인 동작도 이 작품에 생기와 활력을 불어 넣기에 충분하다.

표현에 있어,
연극 <들소의 달>은 극공작소 마방진의 전작들과 같은 맥락으로, 그 형식이나 내용의 접근은 사실주의적 기법과는 거리가 멀다. 과감히 생략하고 본질적인 캐릭터만 붙들어서 과장하고 희화시켜 표현한다. 아동극적인 요소도 다분히 보인다. 즉, 직접적이지 않고 몽환적이며 다이나믹하고 표현주의적이다. 텍스트의 해석에 준하여 접근하지만, 회화적이고 시적(詩的)으로 표현한다.

내용에 있어,
구양수라는 한 인간의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를 추적하며, 크고 작은 폭력에 노출된 한 인간의 후유증이 얼마나 오랫동안 집요하게 따라다닐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표면상으로는 시간의 흐름을 좇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작품은 철저히 양수의 의식의 흐름을 따른다.
<들소의 달>에서 들소는 떼 지어 사는 열등한 생명체다. 대열 속에서 같이 먹고 같이 싸고 같이 자고 같이 움직인다. 무리에서 벗어나면 금세 육식동물의 먹잇감이 되고 만다. 인간 역시 사정은 비슷해 보인다. 사회에서 도태된 인간은 누군가의 먹잇감이 되기 십상이다. 주인공 양수가 그렇다. 그는 성장기부터 무수한 폭력에 노출되었고, 급기야 1980년, 광주에서 시민군으로 오인 받아 혹독한 고문을 당한다. 이미 무리에서 이탈해버린 양수는 자신만의 방어기제를 쌓는 과정에서 더욱 피폐해지고 고립된다. 하지만, <들소의 달>은 결코 암울한 작품이 아니다. 극공작소 마방진 특유의 강한 에너지와 놀이정신으로 무장된 배우들이 끊임없이 무대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마이클잭슨의 ‘Thriller'에 맞추어 군무가 펼쳐지는가 하면, 익살스러운 아동극이 툭 튀어나오고, 난데없이 힙합 공연이 펼쳐지기도 한다. 그러면서 관객들은 마치 한 편의 쇼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구양수라는 암울한 인간의 生을 한 편의 쇼 안으로 끌어들이면서, 관객들이 절망의 언저리에 서성대기 보다는 ‘달’을 바라보는 들소가 되어, 살아갈 희망과 에너지를 조금이라도 만끽할 수 있게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고군분투한 작품이다.

“들소에 대한 존경심을 갖으라구.”
들소떼가, 성난 들소떼가 당신을 짓밟고 지나갈걸? 검은 눈깔을 희번덕거리며 허연 이빨사이로 혓부닥을 널름거리며 쇠뭉치보다 더 튼튼한 두 다리를 박차며 수천 수만의 들소떼가 당신한테 미친 듯이 달려들걸?

“이제 삼십삼일 남았어. 이 지구는 멸망하고 말아.”
1999년 39세의 양수는 이혼한 아내 선녀를 찾아가 앞으로 삼십삼일 후에 지구가 멸망한다고 말한다. 소두무족의 외계인들이 지구를 점령할 것이라 믿는 양수. 어렸을 때 자신이 좋아했던 게임인 ‘스페이스 인베이더’ 속 악랄한 인베이더들이 그 주범이라고 말한다.

“오카방고로 가자!”
오카방고 델타는 아프리카 보츠와나 북부에 있는 습지대로서 세계 최대의 내륙 삼각주를 이루는 지대다. 아프리카 내에서 최대의 수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오카방고 델타에는 수많은 생명체가 몰려들어 ‘야생 동물의 천국’이라고 불린다. 양수는 오카방고 델타로 가고 싶어 한다. 거기서 사자에게 위협당하는 들소 떼를 지키는 것이 양수의 꿈이다.

“완벽한 합의로서의 공생사회! 근사하지 않습니까?”
“시간이 지나면 모든 상황에 익숙해지죠. 자극과 폭력에 복종하는 겁니다. 나중엔 그런 사실조차도 느끼질 못합니다. 약자는 스스로에게 혹은 가해자에게 무감각해지려는 본성이 있습니다. 그래야 오늘을 또 살아갈 명분이 생기니까요. 운명이려니 합니다. 제기랄 팔자려니 합니다. 그쯤 되면 강자들 역시 풀이나 날벌레의 죽음 따윈 신경쓰지 않게 됩니다. 폭력은 피해자나 가해자 모두에게 당연한 일상이 되고 잊혀져 버리는 거죠.”

“살아있는데 죽은 척 하는 거야.”
양수는 아이들의 놀이에 항상 끼어들고 싶어 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어른인 양수를 따돌리기만 한다. 어느 날 이혼한 아내의 정부에게 얻어맞아 쓰러져있는 아이들에게 아이들이 묻는다. “죽었어요?” 양수가 대답한다. “죽은 척 하는 거야.” 아이들이 다시 묻는다. “죽었는데 산 척하는 거 아녜요?” 양수가 다시 대답한다. “아니야 살아있는데 죽은 척 하는 거야.”

더보기

전문가 20자평

  • 평점 7
    이진아

    좌충우돌 발랄하던 상상력마저 상투적인 봉합에 먹혀버릴까 걱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