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교향악단 제576회 정기연주회 - 말러, 거인과 거장
- 장르
- 클래식/오페라 - 클래식
- 일시
- 2005.06.23 ~ 2005.06.24
- 장소
- KBS홀
- 관람시간
- 0분
- 관람등급
- 7세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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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설명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 1번 g단조 작품 26
브루흐. 낮보다 밤에 듣기 좋은 작곡가. 봄보다 가을에 어울릴듯한 작곡가. 센티멘탈한 선율로 끌어들이고 때로는 열정적이고 강렬한 비트와 음향으로 닥아오는 그는 여러모로 차이코프스키와 비견된다. 둘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어보면 차이코프스키에게는 애증어린 한과 눈물이 서려있지만 브루흐에게서는 조금 담백한 감상성을 느낄 수 있다. 동시대의 브람스처럼 잰체하는 진지함과 중후함 대신 연하고 부드러운 선율을 택했지만 차이코프스키처럼 격정적이지는 않다. 음악에서의 이런 감상적이며 고운 선을 추구했던 것과는 달리 그는 격렬한 공격성도 지니고 있었다. 그는 멘델스존류를 이어받는 보수적 작곡가임을 자처하였다. 당시 후배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교향시로 다양한 실험을 하고 표제음악의 세를 불리려는 시도를 용납할 수 없었다. 그는 슈트라우스에게 “음악적 사회주의 두목”, “안티 음악의 총수”, “예술을 더럽히는 인간”, “아나키스트” 등등의 온갖 독설을 퍼부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실험을 극히 위험한 것으로 예민하게 받아들인 것이다. 오늘날에는 물론 둘 간의 음악사적 지위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높지만 신독일 악파가 세를 높이던 당시의 흐름에 저항하던 부르흐의 음악적 입장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음악적 진보를 자처하며 자신들을 위축시키려드는 신독일 악파의 파워 상승과 반유대 음악가 움직임을 지나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현실적으로는 베를린 음악원 교수나 리버풀 교향악단의 지휘자를 역임하는 등 당대 악단에서 무시할 수 없는 지위를 지니고 있었다.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 g단조는 그의 나이 28살때인 1866년 작곡된 작품이다. 당시 그는 이른 나이에 코불렌츠 필하머니 협회의 교향악단의 지휘자로 일하고 있었다. 이 협주곡은 젊은 브루흐의 감성과 음악적 특질이 잘나타나 있으며 낭만적인 바이올린 선율을 좋아하는 음악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당대 최고의 거장 요아힘에게 헌정되어 젊은 부르흐의 의욕을 느끼게 한다. 이 협주곡은 분명 멘델스존의 협주곡류이다. 편성도 거대하지 않고 독주 바이올린의 선율과 기교가 일품으로 낭만주의 시대 바이올린 특유의 감성이 절절히 살아 숨쉰다.
제1악장 서주와 알레그로 모데라토
오케스트라의 화음 선도에 이은 독주 바이올린의 상행 아르페지오의 느리고 정감어린 카덴차풍 짧은 서주에 이어 빠른 주부에서 강렬한 열정을 지닌 독주 바이올린의 주제 선율이 등장한다. 선율의 자연스러움과 매력이 풍부하며, 그리고 종횡무진 활약하는 독주 바이올린의 기교적 패시지들이 자유스럽게 어우러진다.
제2악장 아다지오
바이올린 협주곡의 전형적인 칸타빌레 악장. 바이올린 특유의 끊임없이 이어지는 느린 주제 선율 속에는 그리움과 동경, 그리고 사랑에 대한 열망과 같은 정서가 흐르고 있다.
제3악장 알레그로 몰토
역시 서주가 여리게 시작하여 점차 강해지면서 절묘하게 독주 바이올린이 빠른 주제를 연주하는데 강력한 맛이나 춤곡과 같은 흥겨움은 덜하지만 독주 바이올린의 자연스러운 선율과 기교적 흐름 속에서 부르흐 음악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다.
▶말러 교향곡 제1번 D장조 ‘거인’
말러의 음악은 거대하다. 천년설의 알프스 준령처럼 웅장하고 장대하다. 토스토예프스키 소설처럼 복잡하다. 그것은 서양 오케스트라의 숫적 확대와 음량의 증가와 음색의 다채로움의 극한을 보여준다. 그의 음악은 이중적이다. 고고하고 성스럽다. 모든 음악적 숭고와 종교적 정신의 합일을 느끼게한다. 그러나 말러의 음악은 속되고 친근함을 주기도한다. 아이들의 동요처럼, 때로는 군대의 군가처럼, 농부의 노래와 민요처럼, 길거리나 선술집에서 부르는 유행가처럼 따라부르게하기도한다. 말러의 음악은 음울하다. 그것은 절망에 처한 한 인간의 괴로움의 토로이기도하며 문명의 파국을 앞둔 전인류에 대한 예언처럼, 경고처럼 들리기도한다. 진보에 대한 확신의 상실, 인간성에 대한 믿음의 결여를 느끼게하지만, 따스한 구원과 영원한 사랑을 갈구하는 애처러운 노래로 들리기도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운명에 대한 분노가 있으며, 절대자에 대한 부름이 저 먼곳에 있지만 결코 드러내보이지는 않는다.
말러 르네상스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반세기 이상 무시되고 망각되었다가 세기말의 정신사적 징표로서, 서양 음악 거대 담론의 최고봉으로 우상화되고 있다. 열렬한 말러 신도들의 환호는 바그너의 그것에 필적할만하다. 바야흐로 말러를 통하지 않고는 서양 음악의 정수에 도달할 수 없다는 태세이다.
말러 창작의 첫 출발인 교향곡 1번은 1884-1888년에 작곡되어 1889년 부다페스트에서 초연되었다. 20대 말의 작품으로 다른 작곡가들의 초기 작품이 가지는 습작적 성격은 전혀 없이 그자체로 성숙함을 보여주는 대작이다. 이 작품은 <<거인>>이라는 표제로 잘 알려져 있다. 슈만이 좋아했던 소설가 장 파울의 같은 제목의 소설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된데서 붙여졌다. 그러나 말러 자신이 이 곡을 표제음악으로 작곡하려는 것을 포기해버려서 이 <<거인>>이라는 표제는 별 의미를 갖지 못한다. 이 곡은 거인 예찬도 아니고 거인의 삶이나 활약상, 혹은 부족한 인간의 구원자로서의 거인을 그린 것도 아니다. 차라리 말러의 소박한 자연예찬과 젊은이의 가벼운 방황을 파노라마처럼 그린 것처럼 들린다. 아직은 고통과 음울함, 파국과 구원에의 갈구와 같은 심각한 음악적 모티브는 들리지 않는다. 바그너와 브람스가 지배하던 당대의 음악적 환경 속에서 젊은 말러는 의연히, 혹은 요새 유행하는 말로 조금은 “생뚱맞은” 교향곡은 쓴다. 장황하게 느껴지며 당대 청중들이 교향곡이라는 심오한 장르의 음악에서 쓰면 모욕감을 느낄만한 속요나 동요를 거리낌없이 도입한 젊은 말러에게 이 곡의 초연은 참담한 실패를 가져다준다. 그 청중의 몰이해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이후 말러는 두 번의 개작을 통해 5악장 구성을 4악장으로 바꾼다.
제1악장 느리게, 끌듯이(Langsam, Schleppend)
현의 트레몰로 속에서 관이 번갈아 조금은 어둡게 심각한듯하지만 차츰 밝아지며 등장하는 호른의 선율은 소위 목가풍, 전원풍 악장임을 확인시켜준다. 이윽고 동이 터오듯 등장하는 첼로의 제1주제는 밝고 신선하다. 악기군을 바꿔가며 반복하는 대목에서는 주제 발전에 의한 역동적 전개보다 매끄러운 연결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새의 지저귐이 인상적이다. 중간부에서도 제시부의 심한 발전보다는 변화감을 주는데 주력하며 클라이맥스후에 강렬한 주제의 튜티로의 이행은 대가 말러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그 풍성하고 다채롭고 매끄러우며 자연스러운 울림과 음향!!
제2악장 강렬한 움직임으로(Kraftig bewegt)
랜틀러. 소박한 농민 춤곡 랜틀러의 악장이다. 미뉴엣도 아니고 스케르초도 아닌 랜틀러에서 이 교향곡의 성격을 보다 분병하게 드러내주고 있다. 저음 현과 고음 현이 대응하면서 도입하고 관이 가세하는 랜틀러는다소 거친듯하지만 활기로 가득하여 강렬한 맛을 중간부에는 우아함을 도입하기도한다.
제3악장 장중하고 위엄있게(Feierlich und gemessen)
분위기가 급변하여 어둡고 느린 장송 행진곡으로 바뀐다. 바순과 목관을 통해 제시되는 주제에 이어 약간의 춤곡풍의 바이올린 선율이 등장하는 듯 곡 정서의 굴곡이 심하다. 죽음에 대한 심각함을 아직 깨닫기 힘든 젊은이의 소감과 같은 악장이다. 이 장송 행진곡은 당시 유행하던 동요를 바탕을 삼았다.
제4악장 휘몰아치듯(Sturmisch bewegt)
폭풍우가 갑자기 몰아치듯 최고조의 긴장으로 악장을 시작하는데, 위기감과 공포감을 담아 내지르며 달리는 흐름에서 전원의 평화는 오간데 없다. 정신없이 휘몰아치던 흐름이 일단락된 후 앞서 나온 악장들의 주요 주제들을 회상하기도하면서 장대한 곡을 마무리한다. 스물여덟살 말러의 천재적 솜씨를 유감없이 맛보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