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입국사무소의 오이디푸스

장르
연극 - 연극
일시
2024.04.13 ~ 2024.04.21
장소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관람시간
110분
관람등급
만 13세이상

전문가평

평점 0.0

예매자평

평점 10

전문가평

평점 0.0

예매자평

평점 10
공유하기

작품설명

떠났다. 어딘가에 도착하기 위해.
자꾸 뒤를 돌아본다.
총소리는커녕 호루라기 소리도 없는데 자꾸 뒤를 돌아본다.
자꾸 없는 소리를 듣는다. 자꾸 깜짝 놀란다.
도착은 쉽지 않다.
어떤 차의 트렁크에는, 어떤 배의 밑바닥에는, 어떤 고무 보트에는…….
‘숨죽인 숨’이 있다.
지금 여기, 콜로노스는 가능할까
그리스 비극에서 묘사된 아테네에 있는 ‘콜로노스’는 신들의 땅이므로 신성하고 아름답다. 그곳은
근친상간과 부친살해를 저지른 오이디푸스 같은 오염된 자가 감히 들어설 수 없는 곳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땅이 콜로노스이기를 바랄 것이다. 어떤 불경함도, 어지러움도 없는.
그래서 이방인이 그 땅에 들어서는 순간 왠지 모를 긴장을 느낀다. 일순 그를 위협의 대상으로
여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 땅의 문을 두드리는 것은 삶을 위해서다. 새로운 꿈과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다. 그렇다면 오이디푸스를 기꺼이 받아들이게 되는 그런 콜로노스는 지금
가능할까.
있으되 ‘없는’ 존재가 되어 여기저기 떠도는 삶이 있다
전지구적 재난과 기후위기 속에서, 혹은 분쟁 속에서 우리는 누구도 난민화될 가능성을 가진 채
살고 있다. ‘우리’의 땅이 언제든 우리의 것이 아니게 되고, 때론 바다 밑으로 그 땅이 가라앉기도
하며, 언제든 살던 땅에서 추방될 수 있다. 좁게는 국가 내에서도 하나의 도시 내에서도 난민은
존재한다. 소외된 삶과 배제된 몸은, 있으되 ‘없는’ 존재가 되어 여기저기를 떠돈다. 우리는
서로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두려움을 이겨낸 환대는 가능한가.
경계 밖으로 내몰리는 ‘난민화되는 삶’, 환대는 가능한가
소포클레스의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에서 우리는 이방인의 수용 문제를 읽는다. 난민과 이주
노동자라는 이방인. 둘의 경계는 모호하다. 만약 오이디푸스와 함께 난민의 처지가 된
안티고네가 아버지를 위해 구걸하지 않고 노동을 했다면 우리 법에서는 불법 행위가 된다. 이주
노동자로 오인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서로 다른 이유로 ‘난민화되는 삶’ 그 자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출입국사무소의 오이디푸스'는 소포클레스의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에서
읽어낸 몇 가지 주제적 질문을 여러 인물을 통해 그려내는 작품이다. 자신을 증명할 길을
잃어버린, ‘없는’ 자들의 나라를 만들고, 이를 통해 ‘타자 수용’의 문제를 관객과 나누고자 한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