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윤 클라리넷 독주회
- 장르
- 클래식/오페라 - 클래식
- 일시
- 2025.12.11 ~ 2025.12.11
- 장소
-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
- 관람시간
- 90분 (인터미션:15분)
- 관람등급
- 초등학생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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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레즈의 그림자
2025년은 피에르 불레즈 탄생 100주년이다. 이번 리사이틀은 이 상징적인 해를 맞아, 드뷔시에서 베리오에 이르는 현대음악의 흐름 속에서 ‘불레즈의 보이지 않는 실’이 각 작품을 어떻게 연결하고 있는지를 탐색하는 여정으로 기획되었다. 프로그램에는 그의 작품이 직접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그 실은 모든 곡을 은밀하게 가로지르며 음악적 방향을 이끌고,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현대음악의 흐름 속에서 불레즈가 남긴 흔적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첫 지점은 클로드 드뷔시다. 불레즈는 드뷔시를 자신의 “모든 것이 시작되는 지점(point zéro)”이라고 부르며, “우리가 해야 할 모든 것은 드뷔시에서 출발한다”고 선언했다. 1910년에 작곡된 클라리넷 제1 랩소디는 섬세한 음색, 자유로운 유동성, 그리고 미세한 울림에 대한 탐구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요소들은 불레즈가 자신의 음악적 기원을 발견한 출발점이자, 근대음악의 가능성을 열었던 기반과 맞닿아 있다. 드뷔시의 음악은 단순히 사운드의 아름다움을 넘어, 현대음악적 사고의 씨앗을 품고 있으며, 불레즈는 이를 자신의 언어로 확장했다.
이어지는 에디손 데니소프의 Clarinette Seul은 프랑스로 정착한 후 불레즈가 구축한 음악적 네트워크와의 연결 속에서 작품세계를 확장한 결과물이다. 그의 작품은 구조적 엄격함을 지닌 음렬주의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인간적 긴장감과 서정성을 놓치지 않는다. 이는 거대한 음렬 체계를 세운 불레즈 이후 세대가 그 체계를 재해석하고, 음악적 인간성을 더하며 새로운 표현의 가능성을 탐구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데니소프의 음악은 강렬한 지적 에너지를 품고 있으며, 동시에 따뜻하고 깊이 있는 감성적 울림을 전달한다. 이러한 상반된 요소가 조화롭게 결합되어, 그의 작품 속에서 우리는 불레즈의 그림자를 느낄 수 있다.
브루노 만토바니의 Bug는 ‘불레즈 이후’ 세대의 음악적 상상력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부레즈는 초기에 만토바니를 인정하며 여러 작품을 직접 지휘하기도 했고, 그의 음악적 역량과 상상력을 격려했다. Bug는 번뜩이는 에너지와 극도로 정교한 음형, 끝없이 증식하는 음악적 구조를 통해 불레즈가 남긴 미학적 자장을 젊은 세대가 새롭게 재창조한 화답처럼 들린다. 이 곡은 마치 기계적 오작동과 인간적 감정이 동시에 존재하는 세계를 묘사하는 듯하며, 청중에게 끊임없는 긴장과 흥분을 선사한다.
윤이상은 독일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불레즈가 주도한 전후 유럽 현대음악의 미학 속에서 성장했다. 두 작곡가는 음렬의 유기적 변형, 시간과 구조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형태, 음색의 섬세한 확장이라는 공통된 철학을 공유했다. 윤이상의 Monolog은 이러한 미학적 기반 위에 동양적 선율 개념과 철학을 결합하여, 불레즈의 그림자를 자신만의 음악적 언어로 굴절시키고 확장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는 고요와 긴장, 단순함과 복잡함, 동양적 사유와 서구 현대음악적 사고가 조화롭게 맞물리며 독특한 울림을 만들어낸다.
마지막으로 루치아노 베리오의 Sequenza IXa는 불레즈와 거의 정면에서 마주하는 듯한 경험을 선사한다. 베리오와 불레즈는 동지이자 경쟁자로서, IRCAM과 유럽 주요 음악 기관에서 나란히 활동하며 서로에게 강력한 자극을 주고받았다. Sequenza IXa는 단일 악기가 스스로 다성적 울림을 만들어내며, 내부의 또 다른 목소리와 그림자와 대화하는 구조를 지닌다. 이는 불레즈가 즐겨 다루던 Dialogue de l’ombre double의 개념과 연결되며, 베리오식으로 변주된 ‘이중 그림자’의 세계를 보여준다.
드뷔시에서 베리오까지, 데니소프·만토바니·윤이상에 이르기까지 - 각 작품은 서로 다른 언어와 색채를 가지고 있지만, 그 사이를 ‘불레즈의 보이지 않는 실’이 고요히 잇고 있다. 이번 리사이틀은 불레즈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며, 그 실이 만들어내는 음악적 흐름과 연결성을 청중에게 선명하게 드러내고자 하는 기획이다.
불레즈의 그림자 - 그 그림자는 결코 단순한 어둠이 아니며, 오히려 현대음악의 길을 은밀히 밝혀주는 또 하나의 빛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