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 바트만과 해부학의 탄생
- 장르
- 연극 - 연극
- 일시
- 2011.05.13 ~ 2011.05.21
- 장소
- 대학로 소울 소극장
- 관람시간
- 75분
- 관람등급
- 만 12세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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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설명
연극 <사라 바트만과 해부학의 탄생>은 19세기에 유럽이 제국주의적 마수를 아프리카로 뻗어나가던 시절 남아프리카에 살다가 유럽으로 끌려가 인종전시를 당했던 한 코이코이 여인, 사라 바트만의 비극적 삶을 새로운 방식으로 조명한다. 한국에 사라 바트만이라는 인물을 최초로 소개한 연출가 이석호는 2003년과 2004년 두 해에 걸쳐 창작 희곡인 <사라 바트만>을 가지고 한국과 남아공은 물론이고 모잠비크와 케냐 등 아프리카 3개국 순회공연을 펼친 바 있다. 이 공연으로 인해 사라 바트만이라는 인물은 대륙을 초월해 식민주의의 상흔을 내면화한 대중들의 지극한 관심을 받게 된다. 마침내 8년 만에 사라 바트만이 <사라 바트만과 해부학의 탄생>이라는 이름을 달고 2011년 5월 우리 곁으로 다시 돌아온다.
배우 위희순이 다년간 쌓아올린 내공으로 사라 바트만이 당한 역사적 고통을 과거라는 이름의 무덤에서 끄집어내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무대 위로 새롭게 되살려낼 것이다. 또한 한국-아프리카 합작 뮤지컬인 <카카우>를 비롯하여 <명성황후>와 <넌센스>의 음악을 맡았던 김혜진 교수가 주제곡 ‘사라 바트만을 위하여’를 헌정함으로써 이 작품의 의미가 가일층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제작진은 차후 이 작품을 가지고 제 2차 아프리카 순회공연을 다녀올 준비를 하고 있다.
1. 사라 바트만은 누구인가
* 사라 바트만은 1790년 남아프리카의 이스턴 케이프(Eastern Cape)에서 태어났다. 유독 돌출한 둔부를 가지고 있어 유럽에서 순회 전시를 하면 돈을 많이 벌 것이라고 유혹하는 영국계 의사인 던롭을 따라 1810년 스무 살의 나이로 대서양을 건넌다.
* 유럽 여성들의 신체적 특징과 비교해 볼 때 다소 특이한 둔부를 가진 사라 바트만은 그 둔부 하나로 당시 제국죽의 유럽의 인종학자 및 인류학자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신체적 차이에 대한 호기심에서 나아가 성적 관음증의 대명사가 되어 유럽의 여러 도시에서 인종 전시를 당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게 된다.
* 하지만 무려 5년 동안 연일 이어지는 비인간적인 노역과 수모를 끝내 이기지 못한 사라 바트만은 1815년 1월 1일 새벽 자신의 스물 여섯 번 째 생일을 눈앞에 두고 끝내 프랑스 파리에서 숨을 거둔다. 숨을 거둔 후 그녀의 시신은 당시 프랑스의 유명한 해부학자인 조지 쿠비에(George Cuvier)에게로 양도된다. 사라 바트만의 시신을 양도 받은 그는 그녀의 시신에서 생식기와 뇌를 분리해낸 다음 ‘인간이 멈추고 동물이 시작하는 자리’를 찾아내는 연구에 몰두하게 된다.
* 그 후 사라 바트만의 유해는 뇌와 생식기를 절단 당한 채로 장장 186년 동안 프랑스의 인류학 박물관에 소장 및 전시된다. 남아공 젙부는 인종주의적 폐해의 상징인 사라 바트만의 유해를 프랑스로부터 돌려받는 것을 외교적 사명으로 내걸고 오랜 공을 들인 끝에 2002년 5월 마침내 사라 바트만의 유해를 고국으로 들여오게 된다. 고향으로 돌아온 사라 바트만의 유해는 이스턴 케이프의 감투스(Gamtus) 강가에 묻힌다.
* 하지만 과거 제국주의 내지는 식민주의자들이 그들의 신체, 나아가 그들의 문명·제도·가치 등 존재론적이고 인식론적인 제 영역의 총체적 우월성을 선전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기형화하고 악마화한 사라 바트만의 그 문제의 생식기와 뇌는 여전히 타국의 허방을 떠다니고 있다.
2. 기획의도
* 새로운 발상
넬슨 만델라 이후 아프리카 최고의 문화적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는 사라 바트만을 한국적 문맥을 포함한 전 지구적 주제로 확장한다.
* 한국 연극의 내용적 확장
소재주의의 한계를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는 한국 연극의 틀과 내용을 발전적으로 개선한다.
* 한국 문화 콘텐츠의 다양화
전 지구적 의미를 지닌 사라 바트만의 이야기를 한국적 문맥으로 전유함으로써 한국 문화의 콘텐츠를 다양화한다.
* 한국 연극의 제 3세계 진출
유럽과 미국 연극만을 미학적 전범으로 삼고 있어 형식적, 내용적 한계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한국 연극판에 아프리카, 나아가 제 3세계라는 새로운 미학적 돌파구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