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고시원 - 진주
- 장르
- 연극 - 연극
- 일시
- 2011.12.15 ~ 2011.12.25
- 장소
- 현장아트홀(구,동명아트홀)
- 관람시간
- 70분
- 관람등급
- 만 18세이상
전문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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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8출연진
작품설명
연출의도
하아무 작가의 소설 ‘마우스 브리더’를 읽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단어가 ‘루저’였다. 사전적 의미에서 loser는 실패자 혹은 패배자를 일컫는다. 사회적 의미에서 ‘루저’는 사전적 의미보다 더 넓어진다. 소외된 모든 이들이 ‘루저’에 포함되는 것이다. 하물며 키작은 사람도 ‘루저’라는 실언이 나와 네티즌들을 들끓게 했을까?
역사는 대체적으로 기득권을 중심으로 기록되어 진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야사(野史)를 만드는 ‘루저’들에 의해 만들어져 왔다. ‘루저’들은 외로워서 서로를 사랑하고, 부족해서 사랑한다. 그것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힘인 것이다.
‘백제 고시원’에 등장하는 무명, 주대, 기원, 용식을 통해 그래도 이 세상이 따뜻함을 보여주고 싶다. 힘들어도 살아갈 만한 세상이라고 말하고 싶다.
작가의도
고시원은 본래 각종 고시 및 시험을 준비하는 장기 수험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주거시설입니다. 하지만 비용이 다른 주거시설보다 싼 까닭에 고시원의 주된 이용자가 크게 바뀌어왔습니다. 도시환경 연구자들에 의하면, 고시원은 1980년 안팎에 등장했는데, 당시 주택 재개발 열풍으로 서울의 빈민가(달동네)가 아파트로 바뀌면서 도심 빈민들이 살 수 있는 저가 주택도 사라졌습니다. 그 결과, 고시원에는 학생이나 수험생을 비롯해 젊은 독신 직장인과 노인, 장애인, 기초생활보장 대상자, 그리고 저임금ㆍ불안정 노동자 등 도시 빈곤층까지 몰려들게 된 것입니다. 쉽게 말해 이제 고시원은 도시 빈곤층의 불안정한 주거지로 자리잡힌 것입니다.
이렇게 정리하고 보면, 고시원은 많은 부분을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정치ㆍ경제ㆍ사회ㆍ교육ㆍ노동ㆍ생활 문화 등의 문제가 고시원에 스며들어 있는 셈입니다. 통계에 따르면 고시원 수는 빠르게 늘어나고 있으며, 특히 경제 위기 이후 고시원 거주자가 크게 증가합니다. 고시원의 성격이 변화하는 근원적 원인을 짐작해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저 역시 한때는 고시원에서 살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오래전이었고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좌충우돌하며 고민하던 때였습니다. 실제로 고시원 거주자들을 만나보면 이른바 ‘루저 의식’에 젖어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아직도 고시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남아 있던 때까지만 해도 고시원 거주자들은 그나마 희망이라는 끈을 붙잡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중후반을 거치면서 도시 빈곤층이 점령한 고시원에는 아주 가느다란 희망의 끈이 남아 있거나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무한경쟁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거의 마지막으로 선택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경제는 발전한다는데 자립해 살아갈 방도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의 수는 떼거리로 늘어가는 사회, 결국 그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주류 사회에 들어갈 수 없다는 패배감에 시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의 존재론적 불안감은 자학으로 치닫게 되고, 곧 비판을 부르고 다양한 형식과 내용의 저항을 부릅니다.
그 소외된 삶의 내력과 이면들을 어루만지고 위무하고 싶었습니다. 비빌 언덕 하나 없이 서로 부실한 어깨를 어빡자빡 붙안고 있는 그들의, 아니 우리들의 자화상을 통해 우리 본모습을 정확하게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도저한 아픔 속에서도 서로 정으로 얽히고 자신을 발산하는 꿈을 꾸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보면,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한 줄기 빛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바싹 말라비틀어진 나뭇가지에서도 새싹이 돋듯 재생의 끈을 붙잡을 수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그 믿음과 확신의 촛불을 켜는 순간,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은 생겨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