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가토리움

장르
연극 - 연극
일시
2012.04.17 ~ 2012.04.29
장소
국립극장 별오름극장
관람시간
90분
관람등급
만 8세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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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설명

<기획의도>

고전의 재해석, [죄와 벌] 시리즈의 두 번째,
무대 위에서의 깊이 있는 철학과 사상적인 담론의 시간!


작금의 한국연극은 엄청난 제작비, 화려한 무대를 무기로 하는 대형 뮤지컬과 연예인을 기용한 연극이 공연 시장을 압도하고 있다. 이러한 틈바구니에서 연극인들은 ‘살아남기’ 위해 관객들의 기호에 맞추거나 가벼운 웃음만을 좇아 대중매체의 개그프로그램을 베껴오는 등 흥미와 말초적인 재미를 자극하는 작품들을 생산해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제작방식은 관객들에게 식상함을 주어, 그들의 발길을 붙잡기보다는 오히려 한두 번 맛보고는 떠나게 만들어 버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볼만한 작품이 없다’라며 외면하는 관객과 ‘관객이 없어서 먹고 살기 힘들다’라며 떠나는 예술가들의 악순환 속에 순수예술이자 종합예술이었던 연극은, 쓸쓸하고 초라한 예술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명품극단은 세계적인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과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받은 <푸르가토리움-하늘이 보이는 감옥(獄)(이하, 푸르가토리움)>을 통해 연극이라는 장르가 가지는 본래적 의미에 대한 진지한 고민의 장을 제시하며, 한국연극에 다시 깊이 있는 철학과 사상적인 담론의 시간을 불러오기 위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자 한다.

<푸르가토리움>은 명품극단의 섬세하고 양식적인 무대 만들기와 명품극단의 사실주의 연기훈련을 받은 배우들에 의해 장면 장면들이 무대에서 하나 둘 숨 쉬며 움직일 것이며, 이로 하여금 관객들에게 삶에 대한 진지한 고뇌와 감동을 느끼게 할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국내 연극무대에서 홀대받고 있는 고전의 무게감을 지닌 작품의 주제를 통해 고급문화향유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1년여 간의 수정과 보완을 거친 뒤
관객과 다시 만나는 진정으로 원숙한 작품!


또한 <푸르가토리움>은 작년 국립극장에서 초연 이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창작기금지원사업에 선정된 작품으로 그 작품성과 예술성을 이미 검증받은 연극이라 볼 수 있다.

명품극단은 이러한 <푸르가토리움>을 일회성 공연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약 1년간의 수정과 보완 작업을 거쳐 더욱 업그레이드 하여 관객과 다시 만나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명품극단이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레퍼토리 작업으로, 현재 연극계의 단발성 공연문화에 새로운 길을 제시하며 지속적으로 관객과의 만남을 의도하고자 한다. 


<연출의도>

연극, 당신의 본래의 의무는 무엇이었나요?

오늘날 예술은 인간과 삶에 대한 통찰과 같은 순수한 정신작업이 아닌, 사고파는 ‘상품’이 되어가고 있다. 그리하여 ‘잘 팔리는 상품’이 ‘좋은 예술작품’으로 취급되기까지에 이르렀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 이후 예술의 본래 성격은 비판과 반동에 있었다. 그것이 연극미학 안에서든, 나아가 세계에 대한 것이든, 예술은 문제점을 지적하고, 질문하기를 서슴지 않았었다. 예술의 역사는 투쟁의 역사였던 것이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연극계에서는 질문하는 연극, 비판하는 연극을 찾아보기 힘들다. 더 이상 연극무대가 가벼워진다면 그때의 ‘연극’이란 이미 ‘연극’이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세태에서 명품극단은 <푸르가토리움>을 통해 관객들의 머리에 찬 물을 끼얹고, 연극의 본래적 특징인 고민하고 사색하는 기쁨을 관객들에게 선사하고자 한다.

알코올중독으로 생활력을 잃고 딸을 창녀로 만든 것도 모자라 자신의 상관에게 상납하는 아버지, 굶고 있는 아이들이 있으면서도 빵 대신 꽃을 사는 어머니, ‘차라리 낳지 말았어야 했어’라며 부모를 비난하는 어린 아이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의 삶과 이들을 극한으로 몰아놓은 사회의 잔혹함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그리고 작품에서 가장 아이러니하고 사회성 짙은 측면인, 선과 악의 이중성에 주목했다. 선과 악이 흑백처럼 분명한 도덕교과서와는 달리, <푸르가토리움>에서는 마르멜라도프의 악행이 소냐의 희생정신을 불러일으키고, 걸인을 도와주는 소냐의 선행은 아버지의 죽음과 집안의 파멸을 가져온다. 이러한 미묘한 관계와 사건의 흐름을 통해 한 인물을 '선' 아니면 '악'이라는 이분법적인 판단이 아니라, 어떠한 면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정의'의 문제를 풀어냈다. 이와 같은 의도와 결과의 상반된 모습을 통해 관객들이 스스로 '과연 진정한 선과 악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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