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여기 있어!
- 장르
- 연극 - 연극
- 일시
- 2009.04.17 ~ 2009.05.05
- 장소
- 예술공간 오르다 (구.우석레퍼토리극장)
- 관람시간
- 100분
- 관람등급
- 만 14세이상
전문가평
평점 0.0예매자평
평점 10전문가평
평점 0.0예매자평
평점 10출연진
작품설명
-2007 서울연극제 ‘희곡아 솟아라’ 당선작 / 사다리 아트센터 네모극장
-2008 서울연극제 무대 예술상 수상 / 아르코 예술극장 소극장
-2008 서울문화재단 공연 창작 활성화 지원 선정작
- 작품의도
치부를 앞장 세우다.
흔히들 삶이 연극이요 연극이 곧 삶이란 말을 한다. 되돌릴 수 없는 모습을 표현한 말이다. 예년처럼 2009년 연극계도 춤과 노래, 웃음과 로맨스가 가득하다. 세상살이가 웃음으로만 가득하지만은 않은데도 말이다. 웃음이 있으면 눈물이 있고, 행복이 있으면 절망이 있듯 동전의 양면 같은 인생사에 <나, 여기 있어! >는 동전의 뒷면을 보여준다. 버려진 아이들, 패륜적인 사건사고 등 아침 저녁으로 뉴스에서 접하게 되는 우리의 감추고 싶은 치부를 정면으로 내세운다. 그리고 기억하기를 바라고 있다. 뒷면이 있기에 앞면이 있음을, 양면이 있어야 완성된 동전임을 말이다.
‘정말, 불행 하세요?’
‘지금 행복하세요?’라는 물음에 사람들은 간혹 머뭇거린다. 반면 ‘지금 불행하세요?’란 질문에는 쉽게 ‘아니요’ 라고 대답한다. 그것은 잠깐만 되뇌어 보아도 우리네 인생이 절망적이고 처참한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절망적인 다섯 가정의 모습은 과연 저렇게까지 살아야만 할까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리고는 역설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그래도 그들은 살아간다고, 그들의 삶에는 이유가 있다고. 연신 접하게 되는 연예인들의 자살 소식과 우울증에 관한 이야기들 속에서 작품은 조심스레 질문을 던진다.
‘정말 불행하기만 하세요?’
대식가 박장렬, 미식가 김민정
연극집단 反의 박장렬 연출은 섬세한 연출력과 독립적인 창작활동으로 주목 받아왔다. 그 섬세함에 이제는 활동의 왕성함까지 더해 졌다. 2008년 연말 <리어-흐르는 강물에 손을 씻고>를 공연하고 2009년 벽두부터는 <2009 SFPF>를 추진하여 3개월의 여정, 그리고 쉼 없이 <나, 여기 있어! >를 준비한다. 하지만 대식가가 되었다고 하여 그 까다로운 입맛을 버리지는 못하는 법. 그 입맛을 채워주는 것이 김민정 작가이다. <가족의 왈츠>, <십년 후>, <해무> 등 좋은 식단을 가진 김민정 연출이 추천하는 메뉴 중 하나가 <나, 여기 있어!>이다. 지난 2007년 서울연극제 ‘희곡아 솟아라’ 부문 당선은 박장렬 연출과 김민정 작가의 만남에 대한 축배였다고 하겠다. 1년이 지난 뒤 다시 만난 두 사람. 식욕도 미각도 더욱 왕성해지고 까다로워지기에 관객들은 즐겁다.
- 관람 POINT
五 원색의 무대향연
세 개의 원에 원색이 섞인 구도를 삼원색 구도라 한다. 세가지 색깔만 섞여도 수많은 컬러가 나오는데 다섯 가지 색을 섞으면 어떨까? 물론 더욱 다양한 색이 나올 것이다. 작품에서는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진 다섯 집안이 나온다. 이들은 무대라는 도화지에서 각자 단색으로 존재한다. 공연이 진행 됨에 따라 다섯 가지의 원색은 마치 오선지의 음표들과 같이 때로는 솔로로 때로는 교향악의 하모니 같이 되돌려지고 중첩된다. 무대 위의 오 원색의 향연을 보는 것은 관객이 극을 즐길 수 있는 하나의 포인트이다.
소외 받은 정서와의 만남
흑인의 억울한 삶을 넋두리하듯 리듬에 실어낸 랩. 그 속에는 소외 받은 그들의 정서가 녹아있다. 마치 연극에 나오는 다섯 가정의 속마음과 같다고 할까?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에 힙합만큼 어울리는 음악이 없을 것이다. 극의 포인트마다 등장하는 랩은 각 가정의 속마음을 대변하는 듯 열정적이다. 하나에 하나를 더해서 둘 이상의 효과를 내듯이 작품과 랩을 더하면 어떤 효과가 나오는지 확인해 보자.
Remember Family
공연 내내 소외 받은 가정의 이야기만 나오지만 이 연극은 가족과 집의 소중함을 이야기 하는 따뜻한 작품이다. 다만 표현이 다를 뿐 말하고자 하는 크기는 더욱 크다. 고통 없는 기쁨은 없다고 한다. 이 말은 현실의 양면성을 시사한 말이며, 우리 삶의 양면을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 행복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니듯이, 불행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행복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찾기 나름에 따라 그 크기는 더욱 클 수도 작을 수도 있다. 작품은 관객이 직접 찾길 바라며, 보다 크게 찾은 행복과 가족의 소중함을 간직하길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