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2차 세계대전 기간 연합군의 포격으로 도시 기반이 붕괴된 가운데서도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와 함께 도시의 유서 깊은 클래식 문화를 지탱해온 드레스덴 필하모닉이 2년 만에 네 번째 내한공연(2008년 라파엘 프뤼벡 데 부르고스-마이스키 / 2013년 미하엘 잔데를링-율리아 피셔 / 2015년 미하엘 잔데를링-백건우)을 갖는다. 2011년, 악단의 수석 지휘자로 부임해 고풍스런 동독 사운드에 현대적 매력을 부가한 첼리스트 출신의 지휘자 미하엘 잔데를링이 내한 공연의 지휘봉을 잡는다.

드레스덴 필하모닉은 1930년대부터 실력파 유명 지휘자들을 연이어 맞이하면서 독일 악단의 강자로 자리잡았다. 파울 반 켐펜을 시작으로 아르투르 니키슈, 헤르만 아벤트로트, 한스 크나퍼츠부쉬, 에리히 클라이버, 요제프 카일베르트처럼 금전으로 살 수 없는 풍부한 명장들의 경험이 악단에 오롯이 남겨 있다. 과거 동독 시절, 과장을 배제하고 기품을 가득 머금은 고풍스러운 사운드로 유명했던 드레스덴 필하모닉은 명장 쿠르트 잔데를링의 아들 미하엘 잔데를링을 새로운 사령탑으로 새로운 부흥기를 맡고 있다. 성모교회, 츠빙거궁전이 즐비한 드레스덴 구시가지 한 복판에 위치한 문화궁전(쿨투어팔라스트)이 올해 4월, 4년 동안의 리노베이션을 마치고 새 단장했다. 통독 이전부터 이곳을 본거지로 삼아온 드레스덴 필하모닉은 함부르크의 엘브필하모니처럼 인프라 확충을 통해 도시의 클래식 문화를 혁신적으로 바꾸려 하고 있다.

잔데를링은 악단에 꾸준히 이어 내려온 독일 관현악의 권위 있는 해석과 절도를 계승하는 한편, 첼리스트 출신답게 현악 파트에 대한 충실한 이해를 기반으로 악단의 개별적 기능과 앙상블 능력을 극대화하고 있다. 이러한 유연하고 실용적인 잔데를링의 태도는 고음악-시대악기 방식으로 과거와 현재의 대화를 나누는 원전연주 전문가들과 접근과는 구별된다. 악단의 기존 자산을 바탕으로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생하는 잔데를링의 독특한 방식은 메인 레퍼토리인 브람스 교향곡 4번에서 확인할 수 있다.

협연에는 2006년 리즈 콩쿠르 우승자 김선욱이 당시 대회 우승을 확정 지은 결선곡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한다. 마크 엘더/할레 오케스트라와 함께 했던 김선욱의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은 리즈 콩쿠르 우승자들의 결선 연주 기록 가운데서도 빛나는 명연으로 손꼽힌다. 브람스를 비롯해 모차르트-베토벤-슈베르트-슈만으로 이어온 독일 피아노 사조에 대한 깊은 이해를 특유의 기교와 에너지로 남김없이 발산하는 김선욱을 만날 수 있는 자리다. 11년 전에는 대다수의 국내 팬들이 리즈의 승리를 지켜볼 수 없었지만, 더욱 성숙해진 음악인으로 돌아온 김선욱이 한국 관객 앞에서 다시금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을 살핀다.

올해 김선욱은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탐구에 심혈을 기울인다. 엘더/할레 오케스트라와 새롭게 녹음한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집이 올해 상반기에 발매되고, 브람스 협주곡 1번을 드레스덴 필하모닉과, 브람스 협주곡 2번을 서울시향과 연주하면서 브람스에 대한 스스로의 이해를 점검한다. 잔데를링과는 올해 초 독일에서 쾰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브리튼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하면서 절정의 호흡을 조율한 바 있어, 이번 내한 공연에서 다시 한번 보여줄 이 둘의 조합을 기대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