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참사든 사건이든 그 사건을 이해하는 방식이 단순화되기 쉬운데, 사실 고통을 이해하는 방식, 사람이 연루되는 방식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그걸 다뤄보고 싶었다. 그렇게 이해할 때 조금 더 실상에 가까워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어렸을 때의 경험으로 인해, 내가 연루된 사건을 바라볼 때 사람들의 다양한 입장 같은 것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다, 지금까지도 그렇다. 고통받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이렇게 단순하게 이해할 수도 있지만, 조금 더 들어가면 개별적인 사람들이 사건을 겪는 방식이 다 다르고, 크고 작지만 나름의 기쁨과 슬픔이 있다. 그걸 다뤄야 대화, 혹은 만남이 가능한 게 아닌가? 그렇게 해야 ‘죽은 사람들과 나는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까지 이를 수 있다. 죽은 사람들, 유해를 찾은 사람들, 유해조차 찾지 못한 사람들이 다 다르다면, 우리는 사라져버린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으면서 남은 생을 살아가야 하는 걸까, 나한테는 그런 고민이 있었다. 사건과의 서로 다른 거리를 잘 재고 잘 느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이 서로가 서로에게 살아 있는 느낌이 아닐까?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10년, 20년 이상을 괴로워하면서 살다가, 어느날 돌아가신 어머니의 존재를 더 크게 느낀 순간이 있었다. 어떤 사람을 느끼는 데에 육체가 눈앞에 있고 없고가 중요하게 영향을 미치긴 하지만, 꼭 그런 건 아니라는 체험이었다. 극중 여고생 ‘진아’는 살아있는 아이인데 많은 관객들이 죽은 아이일지도 모른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세월호 유가족이 <비온새 라이브>를 보게 된다면, 마치 우리 아이가 살아있는 것 같다는 감각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작가 인터뷰 중 (출처)

줄거리

몇 해마다 수해가 찾아오는 마을에 <비온새 라이브>가 있다. 비가 오면 물에 묻히는 아랫마을과 아랫마을 사람들이 대피하는 윗마을 사이에, 강 건너 읍내가 마주보이는 곳에 <비온새 라이브>가 있다. 마을 사람들은 하나둘 떠나고 이제는 별장촌으로 변해가는 마을에 갈림길에 <비온새 라이브>가 있다. 고등학생 하나가 전기 끊어진 <비온새 라이브>에서 혼자 음악이나 듣고 있다. 엄마는 비 올 때는 강 건너에 있더니 비가 그쳐 강을 건너와서는 산소가 쓸려내려간 자리에서 남은 유해를 찾고 있다. 수해복구를 도와주러, 끊어진 전기를 이으려 사람들이 바깥에서 하나둘 마을로 모여든다, 마을사람들이 준비하고 있는 아카펠라 멜로디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