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노래하듯이’ 혹은 ‘놀이하듯이’ 햄릿
다섯 명의 익살광대들은 무덤지기이며, 일종의 무당이며, 인형의 조종자이며, 삶의 관찰자입니다. 해골만 남은 햄릿과 그의 수첩을 가지고 햄릿의 이야기를 ‘노래하듯이’ 혹은 ‘놀이하듯이’ 재연합니다. 인물들의 뒷담화를 서슴치 않으며, 우유부단한 햄릿을 조롱하는가 하면 제멋대로 결말을 지어내기도 합니다. 모든 것이 놀이의 대상일 뿐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심각한 것이 없습니다. 심지어 그것이 셰익스피어의 ‘햄릿’일지라도...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들의 관조와 조롱을 통해 ‘햄릿’은 햄릿이라는 한 인물의 비극에서, 욕망과 죽음을 관통하는 삶에 대한 비극으로 승화됩니다.
무겁지 않아도, 심각하지 않아도 우리는 언제나 삶의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다섯 명의 광대들 ‘노래하듯이’ 혹은 ‘놀이하듯이’ 풀어내는 이야기 속에 들어있는 ‘그 무엇’을 찾아내는 것은 바로 관객의 몫입니다.
인형과 가면, 음악이 어우러지는 난장판
광대들은 주변의 물건들을 가지고 한바탕 난장을 벌입니다. 광대들은 장례를 치루고 난 가면들에 사물(오브제)을 결합하여 햄릿의 인물들로 변신합니다. 다섯 명의 광대가 가면과 인형을 가지고 ‘햄릿’의 모든 인물들을 연기하며, 기이하고 그로테스크한 노래로 각 인물들의 내면을 표현합니다. 그 노래들이 때로는 매우 애절하고 절실하게 들리기도 하고, 때로는 낯설고 우스꽝스럽게 보이기도 합니다. 광대들의 노래는 아주 맛깔나고 멋들어지는 소리는 아니지만 피아노와 바이올린, 다국적 퍼큐션의 앙상블은 배우들의 코믹한 창법과 어우러져 묘한 불협화음을 만들어냅니다. 광대와 인형 그리고 음악의 결합은 마치 곡소리가 울리는 장례식 구석자리의 화투판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 같은 기괴하고도 절묘한 하모니를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제껏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새로운 ‘햄릿’을 여러분께 선보일 것입니다.
공연창작집단 뛰다의 햄릿
<햄릿>은 전세계에서 가장 자주 공연되는 레퍼토리의 하나입니다. 무수한 ‘햄릿’들이 있었고, 그 모든 ‘햄릿’들이 각기 다르듯이 <노래하듯이 햄릿>도 공연창작집단 뛰다 만의 ‘햄릿’입니다.
대본과 연출은 맡은 배요섭이 셰익스피어의 햄릿과 스페인 원전을 참고하여 ‘햄릿의 이야기’를 재구성하였고, 여기에 작곡자 한정림이 작곡한 안성맞춤의 노래들 그리고 뛰다의 노련한 배우들이 펼쳐내는 연기가 더해져서 <노래하듯이 햄릿>이 탄생하였습니다. 새로운 양식으로 재탄생한 <노래하듯이 햄릿>은 뛰다의 연극 메소드가 구석구석 녹아들어 그 누구의 햄릿도 아닌 공연창작집단 뛰다만의 <햄릿>입니다

줄거리

저녁 어스름을 누르고 어둠이 찾아올 무렵 다섯 명의 광대들이 수레를 끌고 무덤가로 돌아온다. 이들은 죽은 사람의 모습을 한 가면이나 인형을 만들어 그것으로 장례를 치워주는 사람들이다. 이 날도 어느 영혼의 장례를 치러주고 있었는데, 무덤가를 배회하고 있던 햄릿의 유령을 만나 그의 하소연을 듣게 된다.
유령이 남기고 간 수첩을 줍게 된 이 광대들은 으레 그랬듯이 햄릿의 이야기로 수다를 떨며 놀기 시작한다. 수첩에 적혀있는 이야기는 이렇다. 햄릿이 아버지를 잃고 깊은 슬픔에 빠져 지내다가, 아버지의 유령을 만나 숙부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여 왕위를 빼앗았다는 것이다. 고뇌하던 햄릿은 복수를 하기 위해 기회를 엿보지만 번번이 기회를 놓치고 만다. 결국 오필리어의 아버지 폴로니어스를 실수로 죽이게 되고 결국 외국으로 추방당하였다가 다시 돌아와 복수를 꿈꾼다.
이 구구절절한 햄릿의 사연을 다섯 명의 광대들이 하나씩 놀이하듯이 그리고 노래하듯이 극으로 꾸며낸다. 하지만 햄릿의 이야기를 통해 광대들이 얻게 되는 결론은 아주 단순하다. 죽음 앞에서 모든 것은 허망하다는 것, 사랑도 정의도 복수도 권력의 욕망도 어리석은 장난이라는 것. 햄릿을 위로해준 광대들은 다시 죽은 사람들을 찾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