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영화 ‘빌리엘리어트’, ‘풀몬티’, ‘미쓰 루시힐’, ‘온 어 클리어 데이’, ‘김씨표류기’, ‘즐거운 인생’ 의 공통점은? 바로 <구조조정>을 소재로 작품으로, 구조조정으로 인해 인간이 몰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에서는 해피엔딩을 담아냈다. 하지만 연극<마땅한 대책도 없이>는 ‘이렇게 힘든 현실이 있지만 잘 헤쳐 나가자.’가 아니라 관객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끔 현실의 모습 그대로를 너무도 선명하게 보여준다.
분배의 그늘에서도 엇갈리는 삶의 명암
생산에서의 불평등은 개인의 능력이나 운수의 문제로 치부되어 오랫동안 사람들은 그로 인한 소유의 집중에 관대했다. 하지만 그럴 때도 부정한 수단을 쓴 과다한 생산은 진작부터 비난받고 경계 당했다. 거기다가 불평등한 생산으로 집중된 소유는 곧 힘으로 전화돼 분배의 불평 등을 심화시킨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생산의 불평등 문제는 분배의 불평등 문제로 수합되었다. 분배의 불평등은 일쑤우리 삶을 밝음과 어둠으로 갈라놓는다. 그로인한 소유의 집중은 대개그만큼 다른 동료의 몫이 줄어들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집중된 소유의 초과분이 향상된 생산력과 정확히 일치해서 다른 동료의 몫을 건드리지 않은 경우에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이번에는 상대적 빈곤감이 불화를 일으킬 것이기 때문이다.'마땅한 대책도 없이'는 바로 그런 분배의 불평등이 연출한 세상의 어두운 측면을 그려 보이고 있다. 곧 소유의 집중으로 노동력 밖에 가진 게 없게 된 사람들이 파업으로 노동력을 팔 기회조차 잃고 떠돌면서 겪는 일들을 인상적으로 그린 연극이다.
<마땅한 대책도 없이>를 무대에 올리는 이유?
원작 아서 모리슨의 <마땅한 대책도 없이>는 분배의 그늘에서도 엇갈리는 삶의 명암을 인상적으로 그린 단편이다. 또한 현재 우리에게도 멀지 않게 느껴지는, 가슴 아프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원작을 기본으로 해서 인물과 상황을 현재 우리의 모습으로 재해석, 재창조 하였다. 소유의 집중으로 노동력 밖에 가진 게 없게 된 사람들이 파업으로 그 노동력을 팔 기회조차 잃고 떠돌면서 겪는 일들은 우리 주위에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만석과 정만 그리고 봉기는 우리 아버지, 오빠, 옆집 어디에나 존재하는 그런 사람들이다. 분배의 불평등보다도 그걸 받아들이는 인성의 차이에서 삶의 명암이 엇갈리는 걸지도 모를 일이다. 과연 당신은, 그리고 우리는 절망의 끝, 낭떠러지에서 무엇을 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사람다움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극명한 삶의 명암 속에서 울고 웃으며 함께 고민해 보고 싶다.
분배의 그늘에서도 엇갈리는 삶의 명암
생산에서의 불평등은 개인의 능력이나 운수의 문제로 치부되어 오랫동안 사람들은 그로 인한 소유의 집중에 관대했다. 하지만 그럴 때도 부정한 수단을 쓴 과다한 생산은 진작부터 비난받고 경계 당했다. 거기다가 불평등한 생산으로 집중된 소유는 곧 힘으로 전화돼 분배의 불평 등을 심화시킨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생산의 불평등 문제는 분배의 불평등 문제로 수합되었다. 분배의 불평등은 일쑤우리 삶을 밝음과 어둠으로 갈라놓는다. 그로인한 소유의 집중은 대개그만큼 다른 동료의 몫이 줄어들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집중된 소유의 초과분이 향상된 생산력과 정확히 일치해서 다른 동료의 몫을 건드리지 않은 경우에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이번에는 상대적 빈곤감이 불화를 일으킬 것이기 때문이다.'마땅한 대책도 없이'는 바로 그런 분배의 불평등이 연출한 세상의 어두운 측면을 그려 보이고 있다. 곧 소유의 집중으로 노동력 밖에 가진 게 없게 된 사람들이 파업으로 노동력을 팔 기회조차 잃고 떠돌면서 겪는 일들을 인상적으로 그린 연극이다.
<마땅한 대책도 없이>를 무대에 올리는 이유?
원작 아서 모리슨의 <마땅한 대책도 없이>는 분배의 그늘에서도 엇갈리는 삶의 명암을 인상적으로 그린 단편이다. 또한 현재 우리에게도 멀지 않게 느껴지는, 가슴 아프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원작을 기본으로 해서 인물과 상황을 현재 우리의 모습으로 재해석, 재창조 하였다. 소유의 집중으로 노동력 밖에 가진 게 없게 된 사람들이 파업으로 그 노동력을 팔 기회조차 잃고 떠돌면서 겪는 일들은 우리 주위에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만석과 정만 그리고 봉기는 우리 아버지, 오빠, 옆집 어디에나 존재하는 그런 사람들이다. 분배의 불평등보다도 그걸 받아들이는 인성의 차이에서 삶의 명암이 엇갈리는 걸지도 모를 일이다. 과연 당신은, 그리고 우리는 절망의 끝, 낭떠러지에서 무엇을 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사람다움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극명한 삶의 명암 속에서 울고 웃으며 함께 고민해 보고 싶다.
줄거리
그들은 왜 거짓말을 하는가? 만석과 정만은 노동자다. 그들의 소원이라면 그저 가족과 함께 밥 먹고, 웃고, 잘 수 있는 집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모처럼 목소리를 높여 파업이라는 사건은 생각 외로 큰 타격을 준다. 잘 될 거라는 믿음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멀어져 간다. 일자리를 찾아 가족과 떨어져 여기저기 고되게 걸어 보지만 성과는 없고, 그들은 벼랑 끝에 내몰린 심정으로 더욱 더 먼 곳으로 가게 될 뿐이다. 이윽고 병든 몹과 절망감의 끝에서 봉기라는 사내는 그들에게 따뜻한 국밥과 막걸리 그리고 새로운 희망을 제시한다. “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평생 살고 싶어~” 만석과 정만의 노래는 다시 불려 질 수 있을까? 소박한 꿈을 꾸는 그들에게 마땅한 대책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