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연 출 의 도
이 작품 <특급 호텔>의 특징은 외국인의 관점에서 본 우리의 문제라는 것이다. 작가는 사건에 대한 주관적인 감정에 함몰되지 않고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여 작품의 미학적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역사적인 사건을 다룸에 있어 중요한 하나는 사건에 대한 국민적 감정이 미학적 완성도보다 중요시 되는 점일 것이다. 우리 역시 작품을 대하면서 그러한 감정에 빠져들지 않는 것이 무척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이제 우리에게도 사건에 대한 객관적 시각을 통해 미학적으로 완성된 무대를 만들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객관적 거리감과 미학적 완성도는 관객들을 순간의 감정적 회포가 아닌, 이 사건에 대한 더욱 진지한 고민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 작품의 초점은 인간이다. 그러나 인간 그 존재의 가벼움이 아닌, 숭고한 인간성의 승리로 그려질 것이다. 그 날 그들은 그저 한갓 군수품으로 취급되어졌던 여성들이었지만, 그들은 이제 그날을 증언하는 당당한 증인이 되어 우리 앞에 설 것이다. 극단 초인의 그간의 작업이 배우의 신체를 주요 표현수단으로 하는 움직임 위주의 연극이었다면 이번 작업은 몸이 만들어내는 움직임, 더불어 몸 자체가 보여주는 표현의 영역, 또한 몸을 울리는 소리의 에너지를 통해 표현하고자 한다. 


무대구성 계획
무대는 몇 가지의 소도구 외에 텅 빈 무대에서 행해진다. 때문에 네 명의 여자들이 시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대사를 통해 무대를 채워야 한다. 대사는 충분히 압축적이면서도 에너지로 충만하며 동시에 절제 될 것이다. 때문에 공연에서 여배우들의 연기 역량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시가 이미저리를 구축하는 동시에 언어가 함축한 의미에 대한 소격 효과를 성취한다. 미묘한 뉘앙스를 살리기 위해 희곡 텍스트에 대한 배우 스스로의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등장하는 모든 남자의 역할을 맡는 남자 배우 역시 역할놀이를 통해 연극성을 강화하며 무거운 분위기를 완화시키며 공연에 탄력을 보탠다. 음향효과는 플롯에서 요구하는 대로 사용하지만 소리와 소리가, 음향과 음악이 충돌하여 파생되는 효과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이다. 조명은 텅 빈 무대를 빈 캔버스처럼 자유롭게 사용하여 극적 효과를 한층 부각시킬 것이다. 

기 획 의 도
그간 발표되었던 몇 편의 ‘위안부’소재 작품들이 사건에 대한 좀 더 감성적인 접근을 했던 작품이라면 극단 초인의 ‘특급호텔’은 시적인 대사와 객관적 거리두기를 통해 이성적인 접근과 미학적인 완성도를 높이려는 시도이다. 이러한 미학적 완성도를 통해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내고 국민적인 관심을 유도하고자 한다. 2007년 미국, 캐나다, 네덜란드, 그리고 유럽연합의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죄를 촉구하는 결의안이 채택되었다. 그러나 정작 가장 큰 피해 당사국인 한국에서 이 문제에 관한 국민적 관심은 아직 부족한 것 같다. 심지어 새 대통령은 더 이상 일본의 사죄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발언을 하여 국민적 실망감을 자아내고 있다. 극단 초인의 ‘특급호텔’은 ‘위안부’ 소재의 작품뿐만 아니라 과거를 고민할 수 있는 또 다른 많은 작품들의 공연화를 기대하며 또한 그러한 진지한 고민의 장에 일조하고자 기획되었다.

작품 소개
작가는 일본에 체류하던 중 우연히 ‘위안부’에 대한 이야기를 스쳐듣고 거기에 시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특급 호텔’은 그 당시 실제 ‘위안부’ 막사의 이름이었다. 이 극은 ‘일본 군대에 유린되고 성의 노예가 된 네 여인의 삶을 호소력 있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알칸사스 대학에 본부를 두고 매년 제정되는 2001 국제 평화상을 받았다. <특급 호텔〉의 주인공은 네 명의 위안부이다. 11세에서 25세에 이르는 네 여자들이 강간에 가까운 위안부 생활을 적나라하게 풀어내는 것이 플롯의 기본 줄기이다. 때문에 <특급 호텔〉은 억압되어 온 여성의 역사를 발화한다는 여성주의 연극의 형식을 닮아 있다. 그러나 이 극은 일반적인 여성주의 극과는 그 농도와 색깔을 달리한다. 플롯은 네 명의 여자들이 자신들의 고통스런 체험을 이야기하는 분절의 형식을 취하고 있어 한 편의 서사인 동시에 제의적 성격을 지닌다. <특급 호텔〉에서 여자들은 가슴에 묻어 두었던 치욕의 경험을 이야기함으로써 고통과 진실을 관객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이들의 말하기는 섬뜩한 체험으로 채워져 있지만, 시적 언어로 절제된다. 참혹한 장면 장면은 이미지로 응고되어 시각화된다. 또한 고통의 원인으로서 일본군을 원수로 몰아갔던 종래의 플롯과 달리, 여기에 등장하는 가미카제 상사는 군국주의에 희생되는 또 하나의 개인으로 그려질 뿐이다. 피해의식과 자기 연민을 극복하며 이 극은 역사에 대해 객관적인 거리감을 성취하고 있다. 정치적 측면에서 보자면 이 극은 여자들을 비극적 역사의 프로타고니스트로 세우는 한편, 잔학한 행위를 일삼은 일본 군인을 통해 일본 군국주의의 폭력성을 고발한다. 특히 요즈음처럼 세계화의 파문 속에 과거의 역사가 희미해져갈 때, 극장 무대에 오르는 위안부들의 존재와 그들에게 가해졌던 군국주의의 잔인한 죄상은 큰 공명을 얻음직하다. 부조리한 상황이 전제되어 있고 대사가 일상적이지 않으며 시적 상정으로 채워져 있어 부조리극의 가능성마저 담고 있다. 플롯이 진행될수록 네 명의 여자들이 서로 나누는 연대감은 일종의 ‘가족’의 의미로 확대된다. 무대를 마주한 관객도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나누는 가족의 일부가 될 것이다.

줄거리

2차 세계 대전시 약 20만 명의 위안부들이 있었다고 알려졌다. 그 중 80%가 집에서 끌려온 한국의 소녀들이었다. 그들은 종종 ‘위생공중변소’라고 불렸다. 전쟁이 끝난 후 많은 여자들이 일본 군인들에 의해 대량 학살되었으며, 또 많은 여자들은 반공호나 굴에 갇힌 채 폭탄이나 총알 세례로 죽었다. 또 많은 여자들은 치욕 때문에 자살로 끝을 맺었다. 이 작품은 그러한 한국의 여성들 중 금순이, 옥동이, 보배, 선희, 네 명의 이야기다. 1막에서 그들은 처참한 위안소 생활과 그들이 끌려오던 날들, 고향집에 대한 그리움들을 이야기한다. 2막에서 금순은 그곳을 탈출하지만 붙잡혀 다리가 잘리고 금순의 탈출로 옥동은 고문을 당한다. 선희는 자살을 하게 되고 보배는 사랑하는 가미카제 조종사와 이별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끝날 것 같지 않던 지옥 같은 삶은 일본의 패전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고향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들의 고통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고향을 찾는 그들의 발걸음은 그들의 삶의 보상을 위한 투쟁의 행진이 되어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