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상드린느 로쉬의 <아홉 소녀들>(2011)은 일반적으로 보는 전통적인 희곡의 형태가 아니다. 등장인물의 이름, 나이, 직업, 국적이 드러나지 않고, 제목에서 나타나는 ‘소녀’라는 것 외에는 구체적인 정체성도 지시되어 있지 않다. 이들은 초/중/고등학생 나이로 설정해도 가능하다. 인물 이름 없이 대사의 앞에 중간 줄’-‘만으로 구분하고 있어서 누가, 누구에게 말하는지 알기 어려운 희곡이어서 더 많은 창의력이 요구되는 작품이다.
극중의 ‘시간’ 역시 제시되어 있지 않지만 여러 날 또는 특정한 어느 날이 될 수 도 있는 ‘픽션적인 시간’이다. ‘공간’에 대해서도 지시된 바 없지만 어린 시절 아이들이 모여 놀며 파워 게임을 하고 사회를 느끼는 학교 운동장 같은 공간이 될 수도 있겠다.
<아홉 소녀들>의 테마는 어린 시절, 여성, 성폭력, 왕따, 차별, 인종 차별, 동성애, 난민 문제 등이다. 이 작품은 각각의 상황들을 모은 조각들로 불균형한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는 희곡의 서문에서 이 작품을 재즈처럼 자유롭게 해석해서 연주해달라고 밝히고 있다. 때문에 혼자, 둘, 셋… 아홉까지 각각 같이 연주할 수 있는 악보처럼 소리가 만들어지고 움직임이 만들어질 수 있다. 신체 움직임이 쓰여진 지문은 이 작품의 부제처럼 ‘push and pull’ 즉 ‘밀고 당기기’이다.
성인들의 폭력은 이미 어린 시절, 아동이나 미성년들끼리의 폭력에서 그 근원을 찾아볼 수 있다고들 한다. 처음엔 어린아이들의 순진한 놀이같이 보이기도 하지만 갈수록 위험 경고 신호 같은 아동 폭력(잔인성)의 문제를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이 작품 속의 익명의 인물들은 크는 것이 두렵고, 너무 마초적인 사회에서 여자가 되는 것이 두렵다. 아이들의 프리즘을 통과해서 나온 각각의 이야기는 우리 성인 자신이 들어있는 현실 세계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녀들만의 고유한 세계는 다시 지어내고 다시 놀이로 들어가면서 게임, 환상, 악몽 같은 이야기가 혼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