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우동 한 그릇>, 18차 앵콜 공연 돌입!
전국적으로 번지는 감동 한 그릇의 바람~ 지난 2003년부터 시작된 <우동 한 그릇>이 끝없는 형식실험의 진화를 거듭하면서 18차 공연에 돌입합니다. 이렇게 연극‘우동 한 그릇’이 그동안 15만명 이상의 관객들로부터 열렬한 호응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원작 소설인 단편 「우동 한 그릇」을 일체의 각색 없이 원문 그대로 풍성하고 짜임새 있는 실험극(劇)으로 올렸다는 것과 배우들이 따뜻하고 진실 된 앙상블 연기를 보여준 데에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 최초의 ‘소설 보여주기’!
새로운 형식 실험의 재미를 선사한다. 모든 희곡들은 배우들의 대사와 지문으로만 구성되어 있습니다.물론 마임이나 무용극 형태의 공연도 있습니다만 대종을 이루는 것은 아무래도 대화극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21세기는 혼합장르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장르 간의 벽을 허무는 이런 “cross-over" 의 공연물들이 곳곳에서 흥행몰이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희곡이 함축과 생략을 생명으로 한다면 이번의 ‘우동 한 그릇’은 오히려 지문까지 친절하게 제공하면서 거기에 동작을 입혀 보여줍니다. 이런 컨셉은 지난 2002년도 LG 아트센터에서 공연되어 우리에게 새로운 감흥을 불러 일으켰던 모스크바 청년극장의 ‘검은 수사’와의 만남에서 확신을 갖고 출발하게 됐습니다. ‘검은 수사’와 ‘우동 한 그릇’은 소설의 희곡화를 위한 일체의 첨삭 과정 없이 원문 그대로 공연하는 형식을 취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컨셉의 공연입니다. 한마디로 소설을 읽어주는 Fiction Live라는 형태에다 연극적 행위를 보탠 ‘소설 보여주기’라는 말이 이번 공연에 더 적합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모든 사람이 즐길 수 있는 국민 연극
가족극의 전범(典範)으로 보여주고 싶은 작품! ‘우동 한 그릇’은 새로운 형식 실험을 보여주는 동시에 국민정신 건강에도 엄청난 엔돌핀을 솟게 해 줄 유익한 작품입니다. 우리말로 하자면 “배려” 라는 뜻을 가진 ‘기쿠바리’의 상인정신, 그리고 세 모자의 희생적인 가족애가 점점 각박해져 가는 우리들에게 희망과 감동의 눈물을 줍니다. 또, 그를 통해 인간만이 희망이며 아무리 힘들어도 세상이란 살 만한 곳 임을 말해 주는 작품이 바로 ‘우동 한 그릇’ 입니다. 쉽고, 재미있고, 감동이 있는 작품! - 이점이 바로 국민연극으로서의 ‘우동 한 그릇’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MBC, KBS 선정, 감동의 추천도서!
<우동 한 그릇>은 가난에 찌든 시대를 살았던 어른과 가난을 모르고 살아온 신세대들이 함께 느낄 수 있는 눈물과 감동의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이미 MBC '행복한 책읽기‘ KBS 'TV,책을 말하다’에 소개되었으며 문화관광부 책읽기 운동 추천도서에 선정되는 등 이미 작품의 우수성을 인정 받았다. 이번 공연 <우동 한 그릇>은 감격에 주렸던 현대인에게 따뜻한 '우동 한 그릇‘을 선사하여 마음속 깊이 감동의 전율을 선사 할 것이다.

다 큰 어른을 울린 눈물의 연극!
<우동 한 그릇>은 ‘울지 않고 배길 수 있는 가를 시험하기 위해서라도 한번 읽어보라’ 고 일본 경제 신문이 추천한 바 있듯이, 수많은 공감의 에피소드를 만들어 내면서 하나의 신화가 되고 있다. 특히 지난 89년 2월 일본 국회의 예산 심의 위원회 회의실에서 벌어진 이야기는 유명하다. 질문에 나선 공명당의 오쿠보 의원은 난데없이 얇은 책 한권을 꺼내어 읽기 시작했다. 이야기가 반쯤 진행되자 여기저기서 손수건을 꺼내 훌쩍이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나더니 끝날 무렵에는 온통 울음바다가 되었다. 그 책이 바로 <우동 한 그릇>이었다.

일본의 기쿠바리, 상인정신이 전하는 따뜻한 마음!
<우동 한 그릇>은 “한 그릇의 메밀 국수”란 원제의 우리나라 번역판으로 잔잔한 감동 뿐만 아니라 일본인의 ‘상인 정신’을 배울 수 있다. 한 그릇을 주문한 세 모자에게 주인은 ‘반덩이’의 우동을 얹어 주었다. 왜 ‘반덩이’일까? 전직 문화부 장관인 이어령 교수는 ‘일본인의 상인정신’이란 글에 바로 이 이야기를 전재하면서, 세 모자에게 150엔을 받고 우동 1인분에 반덩이를 더 얹어 주는 그 정신, 상도(商道)에 어긋나지 않으면서도 인정이 살아있는 상인의 정신이 바로 일본을 경제 대국으로 이끈 정신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섣달 그믐날이면 우동을 먹는 풍습을 지킴으로써 남편 없이 키우는 아들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려고 했던 과부는, 바로 일본인의 상인 정신에 힘입어서 미래의 성공을 기약할 수 있었던 것이다. 모두를 살리는 ‘상도(常道)’ 바로 그것이 일본의 힘이며, 더불어 우리의 경제를 되살릴 수 있는 정신이기도 하다.또 이렇게 손님을 배려하는 상인의 마음은 일본의 “기쿠바리”라고 할 수 있는 데, 이것을 우리 말로 하자면 배려에 가깝고, 실질적인 뉘앙스로는 눈치에 가까운 말이다. 이 눈치라는 말은 일본의 경우에는 자발적으로 자기 쪽에서 신경을 써주는 적극적인 윤리 범주에 들어가는 말이다. 쉽게 말하면 장사하는 사람들이 손님에게 물건을 팔 때의 서비스 정신 그리고 물건을 만드는 장인이 그것을 사용하는 소비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기쿠바리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줄거리

한 그릇의 우동으로 힘과 용기를 얻었던 세 모자,
추억의 우동집, <북해정>에 다시 찾아 오다


<북해정>이라는 작은 우동 집은 해마다 12월 마지막날이 되면 손님들로 붐빈다. 가게가 문을 닫을 무렵 그곳에 남루한 차림의 세 모자가 들어와서 단 한 그릇의 우동으로 배를 채우고 간다. 그 후에도 12월 마지막 날이 되면 세 모자는 <북해정>을 찾고, 다정하고 따뜻한 그들의 모습에 주인은 보이지 않는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 다음 해 12월 마지막날, 주인은 우동을 먹으러 올 세 모자를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지만 그들은 나타나지 않았고 이후 몇 년이 지나도 그들은 <북해정>에 다시 오지 않았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들 모자를 기다리는 주인은 그들의 자리를 언제나 비워뒀고 이러한 사연은 단골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다. 그저 추억으로 세 모자에 대한 기억이 남겨질 무렵, 그들은 다시 우동 집에 나타난다. 두 아들은 장성한 청년의 모습으로, 그리고 엄마는 제법 말쑥해진 모습으로...이제 그들은 한 그릇의 우동이 아닌, 떳떳한 세 그릇의 우동을 시켜 놓는다. 그리고 우동집 주인이 베풀어 주었던 따뜻한 배려와 마음에 대해 고마움을 전한다. 그렇게 <북해정>의 섣달 그믐은 훈훈함으로 젖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