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
내 안의 파랑새를 찾아 떠나는 여행, 오랫동안 흔적이 남는 연극
“엄마 김붙들, 아빠 이출식 그리고, 선호 그 녀석을 다시 만나러 갑니다.”

2005년 7월, 예술의전당 공연 이후 4년이 흘렀습니다.
유오성도, 강신일도, 안석환도, 봉준호 감독도 울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시 보고 싶은 공연으로 기억합니다.

‘눈먼 아비…’ 그 감동의 흔적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웃음 뒤에 삶의 절박함과 비극이 뒤따르면서도, 그 소박한 사랑으로 다시 감동을 준다. 실로 오랜만에 가족의 의미를 일깨운 보기 드문 수작(秀作)이다. (평론가 이미원) 

경주의 사투리를 잘 살린 언어와 감상에 빠지지 않으면서 담담하게 그러나, 연극적으로 논리 정연하게 극을 구성한 솜씨가 놀랍다. (평론가 김윤철) 

신파적이면서도 심금을 웃기(?)는 올 한해 기억에 남는 작품, 절박한 상황에 처한 우리네 삶을 웃음을 섞어 처절하게 그려낸 감동 극이다 (평론가 김승현)


엄마랑 평생 처음으로 연극 보러 가는 날
“사는게 힘드냐”,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고향얘기 질펀하게 하고 싶은 날
오랜만에 아침식탁에 마주앉은 아버지와 몇마디 나눌 말이 없을 때

부족하고 평범치 않은 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이란 의미를 되짚어 보고,
그 가족이란 의미 이면에 아비에서 아비로 이어오는 ‘핏줄’의 의미와 ‘생명
근원’에 대한 질문을 던져본다.


이해 하나. - ’눈 먼 아비…’는 울리려고 작정한 신파가 아니다.!!!

이렇게 불행한 가족이 없다. 정신지체 아버지, 신체장애 어머니, 소아암을 앓는 아들 선호. 이들이 풀어놓는 남다른 가족애는 눈물겹다. 그래서 자칫 신파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연극은 관객들을 계속 울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징글징글한 이야기들을 유쾌함과 폭소로 감싸면서, 사이두기, 거리두기를 해서 이야기 자체에 메이지 않고, 그 이상의 울림을 만들었다.
소리 죽여 울다가도 관객들은 함께 박장대소를 한다. ‘붙들이’라는 우스꽝스런 엄마 이름의 유래를 아들에게 이야기하는 대목처럼 아픔을 토해내는 장면도 ‘삶’의 고단함을 잊은 천진함으로 마무리된다.
마음 약한 관객들은 손수건을 준비해야겠지만, 한바탕 배꼽잡고, 웃을 각오도 단단히 하시길.


이해 두울. ? ‘눈 먼 아비…’는 세대를 뛰어 넘는 연극이다.!

눈먼 아비…’는 12살 선호네 가족의 이야기이지만, 아동극은 아니다.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겪고 있어 부모님이 마냥 싫은 고등학생, 부모님의 뒷모습이 너무 작아보이는 사회초년생, 이제 막 첫 아들을 둔 부모와 그 부모가 함께 봐야 하는 공연이다.


연극 ‘눈먼 아비에게…’는 세대와 세대를 잇는 연극이다. 세상의 잣대로 보면 모자라고, 부족하지만, 억척스러운 엄마 김붙들과 무뚝뚝하지만, 속정 깊은 아빠 이출식은 우리가 잊고 사는 ‘부모’를 한꺼번에 느끼게 한다.

경주 강동면 유금리를 무대로 펼쳐지는 연극 ‘눈먼 아비에게…’는 고향친구와 질펀한 수다를 나누는 듯 편안하다. 내용은 절절하지만, 더운 여름날 소나기 내리고 난 잠시, 한 편의 수묵담채화를 보는 듯하다. 경주의 구수한 사투리와 공연 사이사이 파고드는 박희원의 애잔하고, 정겨운 노래는 극의 흐름을 부드럽게 함은 물론, 관객들을 각자의 고향으로 안내한다. 소박하고, 정겨우며 여백을 가진 깊은 사색의 이야기가 있는 한 편의 민화 속으로 말이다.


희극의 옷을 입힌 비극

이 드라마는 비극이다. 이야기 자체는 구질구질 하고 징글징글 하다.
이 드라마의 비극성은 희극을 통해 찾기로 한다. 사이 두기 거리 두기를 한다. 슬픔과 기쁨은 그 상반에 있으므로 폭은 최대치다. 허나 그 극점은 통하고 있다. 이 상반이 갖는 크기와 결국 한 점에서 만나서 에너지를 배가하는 점에 주목한다. 찌들고 뒤틀린 이야기를 유쾌함과 폭소로 감싸면서 거리두기, 사이두기를 해서 이 이야기 자체에 메이지 않고 그 이상의 울림이 있기를 기대한다.

간결함의 여백

이야기의 구조는 단순하고 명확하다. 그래서 극 전반의 에너지도 단순화 간결화에 주력한다. 그 간결함에는 여백의 공간을 충분히 두기로 한다. 그 여백은 관객의 몫이다. 누르고 눌러 만든 여백의 공간은 이 드라마의 주제 중 혈육, 핏줄이라는 인간 근원의 원초적인 물음에 맞닿게 한다.

향토적인 정서 접근

이 드라마의 비극성이 갖는 형식이 희극과 단순함의 여백 그리고 향토색이다. 향토적이란 인간의 내면과 아주 가까이 있다. 특정 지역의 사투리가 갖는 힘은 그 지역의 향토와 그 지역 사람의 정서를 훌륭하게 반영하고 있다. 그것은 결국 보편적인, 인간 누구나의 정서와도 맥을 같이한다.

정확한 인물 찾기와 리얼리즘

이 극의 인물들은 지방색이 강하고 특이한 삶을 살고 있다. 지방색과 특이한 삶은 관객의 유입을 용이하게 못하는 부분이 있다. 허나 정확한 인물 찾기가 이뤄졌을 때는 엄청난 흡입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적인 인물이 물 흐르듯이 흐르는 섬세한 일상에 놓여 리얼리티를 배가 한다. 인물 찾기 중에는 선행되어야 할 것이 완벽한 사투리다. 그것은 말의 의미를 모호하게 하는 단점을 가지고 있지만 완벽하다면 말(소리)이 가지고 있는 이상의 의미를 전달하리라 생각한다. .

한편의 민화를 보는 듯

이상의 것들을 용해하여 소박하고 정겨우며 여백을 가진 친근하면서 깊은 사색의 이야기가 있는
민화를 보는 느낌의 드라마가 되기를 기대한다.

줄거리

14살의 소아암을 앓고 있는 선호의 부모는 정신적, 육체적 장애를 갖고 있다.
그래서 선호는 부모에게 있어 삶의 안내자이다. 선호의 암이 재발하면서 수술비문제 등이 얽혀 그들을 돕고 있던 지근의 큰댁과 선호의 이모도 각각의 이유로 그들의 곁을 떠난다.
물에 빠져 일찍 죽은 선호의 누이에게 선호를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선호의 엄마를 지켜보는 선호의 아빠는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다고 깨닫고 자신을 가장 사랑했던 아버지, 허나 자신에게 장애의 허울을 입힌 아버지께 빌어보지만 뜻 되로 되지 않자 스스로 농약을 마셔 죽은 자로 아들을 살리고 또한 죽어 구천을 맴돌고 있다고 생각한 딸의 극락왕생의 염원도 숨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