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 2007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2관왕 ! 전 세계가 극찬한 Physical Theatre, 사다리움직임연구소의 미래지향적인 무대언어 !
<보이첵>, <두문사이>, <타이피스트> 등의 작품을 통해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독특한 무대언어로 마니아를 확보하고 있는 사다리움직임연구소는 2005년 스위스 무멘산츠, 일본 도토리 아트페스티벌, 2006년 미모스 페스티벌 초청에 이어 2007년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대표작 <보이첵>으로 참가하여 피지컬 씨어터(Physical Theatre)의 메카, 오로라노바 공연을 매진시키며 전 세계에서 모인 2천여 개의 공연작품 중 단연 두각을 나타냈다.
사다리움직임연구소의 <보이첵>은 헤럴드紙의 평론가들이 선정하는 “헤럴드 엔젤 어워드(The Herald Angel Awards)”와 토털씨어터 베스트 피지컬(Best Physical) 부문의 수상을 비롯, 영국 BBC 방송에서 선정하는 올해의 에딘버러 프린지 Top 10에 선정되는 등, 마샬아츠(Martial Arts)에 한정되었던 기존의 한국 신체극을 뛰어넘는 매력적인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해럴드紙의 메리 브래넌은 8월 7일자 리뷰에서 별5개의 평점과 함께 "정말 미친 짓은 이 작품(보이첵)을 놓치는 것이다...(중략) ... 작품은 시각적으로 주제를 놀랍게 환기 시키고 있다. 훌륭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하루를 시작하고 싶다면, 문화의 오아시스인 오로라노바에서 하루를 보내보자.“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스코츠맨紙의 조이스 맥밀란은 “시각적인 스토리텔링의 생생함과 아름다움이 아르헨티나 작곡가인 아스트로 피아졸라의 음악과 한데 어우러져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감동적”이라는 평으로 한국에서 온 이 작은 극단을 주목했다.
사다리움직임연구소의 일련의 작업들이 최근 세계 연극계의 각광을 받고 있는 오브제, 이미지, 움직임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으며 <보이첵>으로 그 가능성을 검증받았다면, 이제 <장님들>은 우리 연극의 지평을 전 세계에 넓히는 차세대 작품이 될 것이다.
▣ 노벨문학상 수상에 빛나는 대표적인 상징주의 작가 메테를링크의 ‘침묵의 희곡’ <장님들>이 ‘ 역동의 무대’로 재창조된다 !
동화적 환상기법을 사용하여 삶과 죽음, 고통과 행복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시하는 동화극 <파랑새 L’Oiseau Bleu>(1908)의 작가 모리스 메테를링크의 희곡 <장님들>이 오는 10월 2일부터 6일까지 남산 드라마센터에서 사다리움직임연구소의 독특한 무대언어로 재탄생된다.
시각을 잃은 사람들, 그들은 진정 이 세계를 보지 못하는 것일까. 그들은 시각을 제외한 청각, 후각, 촉각, 미각 그리고 육감을 통해, 눈으로 보는 자들보다 더욱 섬세하게 세상을 보고 있지 않을까.
사다리움직임연구소는 일련의 구축된 공간, 즉 각각의 독립된 장면들에서 신체가 경험하는 인상(impression)을 끌어내고, 이것을 Mimage(Mime+Image)를 통해 움직임, 인물, 장면, 무대장치의 역동성을 추출해내는 극적 과정을 탐미해왔으며, <보이첵>, <벚나무동산>에 이어 <장님들>은 사다리움직임연구소의 독특한 미마쥬(Mimage)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아름다운 무대를 선보이게 될 것이다.
또한 연극 <장님들>은 일련의 공간 그리고 장면들에서 경험하는 인상(impression)을 섬세하게 끌어내어 12명 배우들의 신체를 통해 보다 역동적으로 무대 위에 드러내면서 오감과 심리, 상징에 대한 움직임의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다.

줄거리

오래된 숲, 칠흑 같은 어둠, 그보다 더 어두운 장님들의 두 눈 -
본능적인 감각만이 그들의 생존을 결정한다.....
별이 가득한 심연의 하늘. 그 아래 아득히 오래된 숲.
그 숲 안에, 나무에 기대어 주검으로 영원을 응시하는 한명의 신부와, 앞을 보지 못하는 각각 6명의 장님 남녀가 고립되어 있다. 이 12명의 장님들은, 선천적장님이거나, 오래전 눈이 먼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곳으로 자신들을 인도한 신부가 자신들에게서 멀어진 것을 느끼며 신부를 기다린다.
사방 분간 할 수 없는 내외의 어둠 속, 깊은 불안함이 엄습하는 것은, 그 숲에 덩그러니 남겨진 자신들의 처지에 대한 불확실한 미래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 장님들은 기다리라는 신부님의 말을 상기하며, 곧 그가 돌아 올 것이라는 믿음의 줄기를 놓지 않는다.
장님들은 그들만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상황과 공간, 그리고 존재를 확인하려한다.
대화를 통해 각자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들을 둘러싼 공간의 소리와 냄새, 그리고 몇몇은 아득한 기억 속에서 보았던 시간에 대한 기억과 본능적인 감각들을 동원해 자신들이 어디에 있는지를 인지하고 확인한다.
하지만 신부가 어디로 갔는지, 언제 오는지, 언제 왔던 곳으로 데려갈 수 있는지에 대한 불투명한 미래가 그들을 불안하게 한다. 또한 숲의 온갖 소리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어떻게 해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이 공간에 처한 자신들의 환경을 걱정하며 지금 자신들에게 일어난 사건들에 대해 이해를 하려고 애를 쓴다.
길고 두려운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고, 앞을 보지 못하는 답답함이 예민한 무게로 밀려오는 가운데, 이들에게 한 가닥 희망을 주는 한 마리의 개가 나타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