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창단 12주년을 맞은 ‘제12언어연극스튜디오’
올해로 12주년을 맞은 ‘제12언어연극스튜디오’는 창단이래, 한국어에 대한 감각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문학성과 연극성 사이에서 새로운 수사학을 탐구하고 있는 극단이다. 또, 문학 텍스트의 공연화, 일련의 과학연극 시리즈, 해외 연극인과의 공동작업 등 다른 장르, 다른 분야, 다른 문화권과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도 꾸준히 시도하고 있다.
이번에 공연되는 연극 ‘소설가 구보氏와 경성사람들’은 이러한 제12언어연극스튜디오의 방향성을 잘 반영하는 작품이다. 본 작품의 주인공이자 ‘천변풍경’, ‘소설가 구보씨의 1일’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구보 박태원은 서울 사람들의 생활상과 그들의 말씨까지 가장 리얼하게 담아낸 작가로 평가받는다. 그런 정감 있고 리듬감 넘치는 서울의 옛말을 되살려 표현하기 위해, 본 작품은 그 희곡에서부터 국어학의 연구 성과 및 여러 자료를 바탕으로 세밀한 재현을 시도했다.

극작가이자 연출가 ‘성기웅’의 ‘구보씨 연작’
이 작품은 제12언어연극스튜디오의 대표인 성기웅이 10여 년 간, 연속적으로 발표한 ‘구보씨 연작 시리즈’ 중 첫 번째 작품이다. ‘소설가 구보氏와 경성사람들’의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성기웅은 그동안 구보 박태원, 이상 등 예술가들을 다룬 연극 ‘깃븐우리절믄날’, ‘소설가 구보씨의 1일’, ‘20세기 건담기建談記’ 등을 통해 1930년대 경성(서울)의 모습과 당대의 언어를 집중적으로 탐구하여 당대의 생활상을 무대 위에 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 시작이 된 이 작품은 서울사람들의 생활상과 그들의 말씨를 리얼하게 담아낸 작가로 평가받는 소설가 ‘박태원’이 1933년 경성의 거리를 거닐다가 발견한 사람들을 보여줌으로 일제강점기라는 정치적 질곡 속에서도 서구로부터 새로운 근대 문물과 도시 문화가 유입되며 역동적인 변화가 일어나던 당대의 모습을 무대 위에서 보여준다.

구보 박태원의 생가인 ‘공애당 약국’ 자리에서 올리는 연극
이 작품의 공연장인 CKL스테이지가 자리잡고 있는 한국관광공사 건물은 이 연극의 주인공 구보 박태원의 생가이자 연극의 주요 배경이 되는 ‘공애당 약국’이 있던 바로 그 자리에 들어서있다. 공애당 약국 건물의 2층 방에서 소설 창작에 몰두하는 젊은 소설가 구보 박태원을 그리며 동시에 당시 그 일대 청계천변의 풍속을 담아내는 이 연극을 바로 그 자리에서 공연하는 것은 관객들에게 남다른 감흥을 자아낼 것이다.

줄거리

1930년대 전반, 서울이 경성이라 불리던 시절
이 도시의 남북을 가르며 흐르는 청계천에도 살얼음이 얼고, 그런 탓에 개천가 빨래터엔 아낙들도 한산하며, 전차가 오가는 광교 아래엔 거지 깍정이들이 목을 잔뜩 움츠린 채 허연 눈동자만을 꿈뻑이고 앉은 어느 겨울날, 조선 문단의 샛별 소설가 구보씨는 늘 그렇듯 해가 중천에 이르고서야 광교 옆 다옥정 7번지 공애당약국 2층의 자기 방에서 잠을 깬다. 벗어둔 안경을 집어쓰고 앉은뱅이 책상 위의 어지러운 원고뭉치를 들여다보기 시작하던 구보씨는 이내 펜을 들어 새로운 소설 작품의 창작에 골몰한다.
언제나처럼 오후가 되면 우리의 소설가 구보 씨는 한 권의 창작노트를 옆구리에 끼고 또 모자도 쓰지 않은 맨머리 바람에 멋진 단장을 짚으며 집을 나설 것이다. 우리는 그런 구보씨의 발길을 쫓아 경성 산책을 떠난다. 이제 구보씨는 하루가 다르게 변모해가는 대도회지 경성에서 생활(生活)하는 딱한 사람들을 만난다. 우리는 연극 <소설가 구보氏와 경성사람들>을 통해 오늘 하루 구보 씨의 노트를 어지러이 채울 명랑하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한, 더러는 싱겁기도 한 창작 메모들을 엿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