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주부들의 라이프사이클에 맞춘 낮공연
주부들은 그 누구보다도 문화생활을 꿈꾸지만 당장 눈앞에 닥쳐오는 일상사들을 처리하다 보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게 하루 하루를 허무하게 보내고 만다. 주부들이 향유할 수 있는 문화적 공간과 시간은 부족하다. 왜냐면 주부들에겐 아이들이 학교나 학원에서 돌아오고 남편이 회사에서 돌아오는 저녁 시간이 가장 바쁜데, 거의 모든 공연이나 문화행사는 바로 그 저녁 시간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주부들의 라이프싸이클(Life Cycle)은 직장인이나 학생들의 미혼자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이에 본 공연은 주부들이 가장 여유 있는 시간대인 낮 시간을 활용하여 공연과 문학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기획되었다.
보통 주부들은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모임을 갖거나 친구들과 약속을 하는데, 이러한 외출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점심 전, 차 한 잔과 함께 공연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문학을 들려주다
배우가 소설을 읽어준다. 같은 책도 언제 어디서 누가 읽어주는가에 따라 느낌과 감동이 달라진다. 따라서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배우’가 소설을 읽어 준다는 것은 단순한 낭독의 차원만은 아니다.
본 공연은 소설을 경험하는 새로운 방식, 새로운 차원을 제시하며, 작가와 관객, 그리고 무대 연출과 배우가 함께 소통하면서 문학을 개인적 경험에 머무르지 않고 생각과 의견을 공유하는 장으로 나아가게 하고자 한다.
커피와 소설을 극장에서 즐기다
본 낭독 공연은 핸드드립 커피 전문점 豆林(가배두림)이 후원한다. 가배두림은 수준 높은 문화·예술과 대중이 소통할 수 있도록 꾸준히 돕고 지원해 온 기업으로, 이번 ‘배우가 읽어주는 소설’에서는 극장을 찾는 관객들에게 최고급 커피를 전문 바리스타의 핸드드립으로 대접한다.
책 한권을 펼쳐 들 때 향기로운 차 한 잔은 빠질 수 없는 동반자다. 12월, 한 해를 보내는 쓸쓸함과 새로운 해를 맞는 설렘 속에서 배우가 읽어주는 소설을 들으며 맛보는 뜨겁고 진한 커피의 향은 아마도 우리를 풍요로운 성찰로 이끌지 않을까.
차 한 잔 값의 관람료
주부들에게는 문화생활의 비용도 중요하다. 가정의 재정을 책임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본 공연은 관람료를 7,000원으로 책정하여 누구든지 편한 마음으로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한다.
위험한 독서
나를 읽어봐, 주저하지 말고 나를 읽어봐
김경욱의 <위험한 독서>를 고르다
책장 가득 보물처럼 애지중지하던 책들을 모두 내다버렸다는 친구가 있었다. 이유는 ‘진짜로 살고 싶어서’라 했다. 어쩌면 만용이거나 세상의 모든 책을 읽을 수 없기에 다다른 자포자기거나······, 그렇게 넘겨짚었지만 비슷한 욕구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독서는 현실과 도피 그 중간의 아슬아슬한 줄타기인지도 모른다. 삶을, 그리고 사람을 읽어내기 위해서, 라고 말하며 책을 펼쳐들지만 내가 책 속에서 읽은 것은 정말 무엇이었을까? 무엇을 읽기 위해 우린 책을 읽고 또 읽고 계속해서 읽고 있는 걸까?
소설 <위험한 독서>에서는 사람이 책을 읽고 책이 사람을 읽고 사람이 사람을 읽는다는 차원이 마치 쫓고 쫓기는 게임처럼 진행된다. 동시대적 삶의 패턴을 예리하게 포섭하면서도 독서라는 소재를 통해 묵직한 사유의 깊이를 함께 끌고 가는 이 소설의 미덕은 무엇보다도 재밌다는 것이다. 호기심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누가 뭐래도 이야기란 ‘도대체 어떻게 끝이 날까?’를 궁금해 하며 읽는 맛이 아니던가? 그래서 독서는 위험하다.
<위험한 독서> 어떤 소설일까?
‘나’는 독서치료사이다. 의사가 환자를 진단하고 처방하듯 ‘나’는 피상담자의 심리상태를 체크한 뒤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추천한다. 자신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밥벌레라며, 어떤 책을 읽으면 칠 년 사귄 남자친구를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을지를 묻던 당신. 서툴게 번역된 책처럼 문장이 아리송하고 문맥은 요령부득이던, 여러모로 읽어내기 쉽지 않던 당신이 어느새 ‘나’에게 속삭인다. ‘나를 읽어봐. 주저하지 말고 나를 읽어봐.’라고.
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
마지막 일 년은 참으로 아까운 시절이었다.
세월의 흐름이 빠른 물살처럼 느껴지고 자주자주 시간이 빛났다.
여덟 개의 모자에는 그 빛나는 시간의 추억이 있다.
나만이 아는.
박완서의 <여덟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을 고르다
모든 생명은 죽음을 맞이한다. 모든 인생은 죽음으로 귀결된다. 그렇지만 우리는 쉽게 그 사실을 잊는다. 사별이라는 어쩔 수 없는 이별을 맞이할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 삶 속에 내재되어 있는 ‘죽음’을 인식하고 어쩔 줄 몰라 하게 된다.
박완서의 단편소설《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은 소설가 박완서 선생이 수십 년을 같이 지내온 인생의 반려자를 잃은 이야기를 과장없이 담담하게 전해주는 감동적인 작품이다. 죽음을 선고받고 그 어떤 수선스러운 저항을 하기보다는 그동안 지내온 일상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어했다는 남편의 이야기는 죽음을 눈앞에 둔 인간의 너무나 범상하면서도 가장 비범한 저항이 아닐까 한다.
배우의 깨끗하고 절제된 낭독과 그 목소리에 얹혀질 음악이며 이미지들은 배우자와의 사별을 통해 슬픈 감정과 센티멘탈한 감상을 자아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 내재되어 있는 죽음을 새삼스러이 느끼고 그 죽음과 맞닿아 있는 우리의 삶을 성찰하는 시간으로 이끄는 것이 되었으면 한다.
천지간
슬픔이 슬픔을 알아보고 사랑이 사랑을 알아보듯
죽음 또한 죽음과 만나면 별 수 없이
서로를 알아보게 마련인가 보다
윤대녕의 <천지간>을 고르다
이 소설은 무겁다. 이 소설이 우리를 끄는 힘은 재미난 줄거리도 흥미로운 인물도 아니다. 누구나의 가슴 속 가장 깊숙한 곳에 가라앉힌 어두움이 어떤 자력에 의해 일렁이는 까닭이다. 천지간이라는 제목처럼, 이 소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하늘과 땅 사이의 그 무엇이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천지간 사람이 한번 들고 나는데 무슨 자취가 있을까?’ 아무 자취가 없을지언정, 아니 그 아무 자취가 없음으로 인해 천지간, 하늘과 땅 사이는 더 강렬하다.
대 바람 소리
아침 10시, 짙은 화장에 옷단장을 한 여든 한 살의 오동례 여사가
어디론가 향한다.
그녀는 매일 어디로 가는 걸까?
문순태의 <대 바람 소리>를 고르다
이 소설은 문순태 작가가 55년 만에 귀향하여 무등산 뒷자락에 자리 잡은 ‘생오지’ 마을에서 창작한 작품집 <생오지 뜸부기>에 실려 있다. 이 작품집에 실린 여덟 편의 소설이 모두 다정하게 다가왔지만, 그 중에서도 어느 날 여든한 살의 오동례 여사의 마음속에 피어난 사랑은 몹시도 간절하고 사랑스러웠다.
소설 <대 바람 소리>는 특히 작가가 언급한 ‘소리풍경(사운드스케이프)’가 선연하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산업사회를 거치면서 눈에 보이는 풍경, 즉 ‘랜드스케이프’에만 신경을 썼지, ‘소리풍경’(사운드스케이프)에는 무심했다. 생명 가진 것들이 가장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공간은 자연의 소리가 70% 이상 보존되어 있는 곳이라야 한다. 그러나 지금 도시는 기계음이 점령해버려 자연의 소리인 ‘사운드스케이프’ 공간이 줄어들었다. 내가 살고 있는 ‘생오지’는 아직 오염되지 않은 ‘소리풍경’의 세상이다. <생오지 뜸부기>는 자연의 소리가 옴씰하게 살아 있는 건강한 생명의 공간을 소설로 형상화한 작품들이다. 앞으로도 나는 문명의 고속 변화 속에서 사라져간 옛것의 원형을 복원하고 생명이 갖고 있는 본디 모습을 되찾기 위한 작업을 계속할 생각이다.‘
우리 마음 속 오래된 그리움 같은 그 어떤 속삭임이 깊은 울림으로, 소리풍경으로 선돌극장에 가득하길 꿈꾸어 본다
주부들은 그 누구보다도 문화생활을 꿈꾸지만 당장 눈앞에 닥쳐오는 일상사들을 처리하다 보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게 하루 하루를 허무하게 보내고 만다. 주부들이 향유할 수 있는 문화적 공간과 시간은 부족하다. 왜냐면 주부들에겐 아이들이 학교나 학원에서 돌아오고 남편이 회사에서 돌아오는 저녁 시간이 가장 바쁜데, 거의 모든 공연이나 문화행사는 바로 그 저녁 시간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주부들의 라이프싸이클(Life Cycle)은 직장인이나 학생들의 미혼자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이에 본 공연은 주부들이 가장 여유 있는 시간대인 낮 시간을 활용하여 공연과 문학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기획되었다.
보통 주부들은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모임을 갖거나 친구들과 약속을 하는데, 이러한 외출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점심 전, 차 한 잔과 함께 공연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문학을 들려주다
배우가 소설을 읽어준다. 같은 책도 언제 어디서 누가 읽어주는가에 따라 느낌과 감동이 달라진다. 따라서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배우’가 소설을 읽어 준다는 것은 단순한 낭독의 차원만은 아니다.
본 공연은 소설을 경험하는 새로운 방식, 새로운 차원을 제시하며, 작가와 관객, 그리고 무대 연출과 배우가 함께 소통하면서 문학을 개인적 경험에 머무르지 않고 생각과 의견을 공유하는 장으로 나아가게 하고자 한다.
커피와 소설을 극장에서 즐기다
본 낭독 공연은 핸드드립 커피 전문점 豆林(가배두림)이 후원한다. 가배두림은 수준 높은 문화·예술과 대중이 소통할 수 있도록 꾸준히 돕고 지원해 온 기업으로, 이번 ‘배우가 읽어주는 소설’에서는 극장을 찾는 관객들에게 최고급 커피를 전문 바리스타의 핸드드립으로 대접한다.
책 한권을 펼쳐 들 때 향기로운 차 한 잔은 빠질 수 없는 동반자다. 12월, 한 해를 보내는 쓸쓸함과 새로운 해를 맞는 설렘 속에서 배우가 읽어주는 소설을 들으며 맛보는 뜨겁고 진한 커피의 향은 아마도 우리를 풍요로운 성찰로 이끌지 않을까.
차 한 잔 값의 관람료
주부들에게는 문화생활의 비용도 중요하다. 가정의 재정을 책임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본 공연은 관람료를 7,000원으로 책정하여 누구든지 편한 마음으로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한다.
위험한 독서
나를 읽어봐, 주저하지 말고 나를 읽어봐
김경욱의 <위험한 독서>를 고르다
책장 가득 보물처럼 애지중지하던 책들을 모두 내다버렸다는 친구가 있었다. 이유는 ‘진짜로 살고 싶어서’라 했다. 어쩌면 만용이거나 세상의 모든 책을 읽을 수 없기에 다다른 자포자기거나······, 그렇게 넘겨짚었지만 비슷한 욕구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독서는 현실과 도피 그 중간의 아슬아슬한 줄타기인지도 모른다. 삶을, 그리고 사람을 읽어내기 위해서, 라고 말하며 책을 펼쳐들지만 내가 책 속에서 읽은 것은 정말 무엇이었을까? 무엇을 읽기 위해 우린 책을 읽고 또 읽고 계속해서 읽고 있는 걸까?
소설 <위험한 독서>에서는 사람이 책을 읽고 책이 사람을 읽고 사람이 사람을 읽는다는 차원이 마치 쫓고 쫓기는 게임처럼 진행된다. 동시대적 삶의 패턴을 예리하게 포섭하면서도 독서라는 소재를 통해 묵직한 사유의 깊이를 함께 끌고 가는 이 소설의 미덕은 무엇보다도 재밌다는 것이다. 호기심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누가 뭐래도 이야기란 ‘도대체 어떻게 끝이 날까?’를 궁금해 하며 읽는 맛이 아니던가? 그래서 독서는 위험하다.
<위험한 독서> 어떤 소설일까?
‘나’는 독서치료사이다. 의사가 환자를 진단하고 처방하듯 ‘나’는 피상담자의 심리상태를 체크한 뒤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추천한다. 자신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밥벌레라며, 어떤 책을 읽으면 칠 년 사귄 남자친구를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을지를 묻던 당신. 서툴게 번역된 책처럼 문장이 아리송하고 문맥은 요령부득이던, 여러모로 읽어내기 쉽지 않던 당신이 어느새 ‘나’에게 속삭인다. ‘나를 읽어봐. 주저하지 말고 나를 읽어봐.’라고.
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
마지막 일 년은 참으로 아까운 시절이었다.
세월의 흐름이 빠른 물살처럼 느껴지고 자주자주 시간이 빛났다.
여덟 개의 모자에는 그 빛나는 시간의 추억이 있다.
나만이 아는.
박완서의 <여덟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을 고르다
모든 생명은 죽음을 맞이한다. 모든 인생은 죽음으로 귀결된다. 그렇지만 우리는 쉽게 그 사실을 잊는다. 사별이라는 어쩔 수 없는 이별을 맞이할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 삶 속에 내재되어 있는 ‘죽음’을 인식하고 어쩔 줄 몰라 하게 된다.
박완서의 단편소설《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은 소설가 박완서 선생이 수십 년을 같이 지내온 인생의 반려자를 잃은 이야기를 과장없이 담담하게 전해주는 감동적인 작품이다. 죽음을 선고받고 그 어떤 수선스러운 저항을 하기보다는 그동안 지내온 일상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어했다는 남편의 이야기는 죽음을 눈앞에 둔 인간의 너무나 범상하면서도 가장 비범한 저항이 아닐까 한다.
배우의 깨끗하고 절제된 낭독과 그 목소리에 얹혀질 음악이며 이미지들은 배우자와의 사별을 통해 슬픈 감정과 센티멘탈한 감상을 자아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 내재되어 있는 죽음을 새삼스러이 느끼고 그 죽음과 맞닿아 있는 우리의 삶을 성찰하는 시간으로 이끄는 것이 되었으면 한다.
천지간
슬픔이 슬픔을 알아보고 사랑이 사랑을 알아보듯
죽음 또한 죽음과 만나면 별 수 없이
서로를 알아보게 마련인가 보다
윤대녕의 <천지간>을 고르다
이 소설은 무겁다. 이 소설이 우리를 끄는 힘은 재미난 줄거리도 흥미로운 인물도 아니다. 누구나의 가슴 속 가장 깊숙한 곳에 가라앉힌 어두움이 어떤 자력에 의해 일렁이는 까닭이다. 천지간이라는 제목처럼, 이 소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하늘과 땅 사이의 그 무엇이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천지간 사람이 한번 들고 나는데 무슨 자취가 있을까?’ 아무 자취가 없을지언정, 아니 그 아무 자취가 없음으로 인해 천지간, 하늘과 땅 사이는 더 강렬하다.
대 바람 소리
아침 10시, 짙은 화장에 옷단장을 한 여든 한 살의 오동례 여사가
어디론가 향한다.
그녀는 매일 어디로 가는 걸까?
문순태의 <대 바람 소리>를 고르다
이 소설은 문순태 작가가 55년 만에 귀향하여 무등산 뒷자락에 자리 잡은 ‘생오지’ 마을에서 창작한 작품집 <생오지 뜸부기>에 실려 있다. 이 작품집에 실린 여덟 편의 소설이 모두 다정하게 다가왔지만, 그 중에서도 어느 날 여든한 살의 오동례 여사의 마음속에 피어난 사랑은 몹시도 간절하고 사랑스러웠다.
소설 <대 바람 소리>는 특히 작가가 언급한 ‘소리풍경(사운드스케이프)’가 선연하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산업사회를 거치면서 눈에 보이는 풍경, 즉 ‘랜드스케이프’에만 신경을 썼지, ‘소리풍경’(사운드스케이프)에는 무심했다. 생명 가진 것들이 가장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공간은 자연의 소리가 70% 이상 보존되어 있는 곳이라야 한다. 그러나 지금 도시는 기계음이 점령해버려 자연의 소리인 ‘사운드스케이프’ 공간이 줄어들었다. 내가 살고 있는 ‘생오지’는 아직 오염되지 않은 ‘소리풍경’의 세상이다. <생오지 뜸부기>는 자연의 소리가 옴씰하게 살아 있는 건강한 생명의 공간을 소설로 형상화한 작품들이다. 앞으로도 나는 문명의 고속 변화 속에서 사라져간 옛것의 원형을 복원하고 생명이 갖고 있는 본디 모습을 되찾기 위한 작업을 계속할 생각이다.‘
우리 마음 속 오래된 그리움 같은 그 어떤 속삭임이 깊은 울림으로, 소리풍경으로 선돌극장에 가득하길 꿈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