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살고 싶어. 미치도록…… 미치도록 살고싶어. 메이린”

연결된 세계 안에서 무용함 속의 의미를 길어올리는 이야기.

실직과 파산 이후 빈곤층으로 추락하여 안락한 세상으로부터 신도시의 편의점이라는 변방으로 떠밀려난 미영과 친구의 죽음 이후 부재를 견디며 정처없이 타국을 떠도는 메이린. 서있을 바닥을 한 순간에 잃은 두 사람은 ‘세상 끝에 버려진 거울’처럼 닮아있다. 조해진의 단편소설 <산책자의 행복>을 원작으로 하는 이 작품은 멀리 떨어진 두 사람이 서로에게 던지는 사유와 질문의 대화를 교차로 보여준다.

생존과 상실의 고통 속에서 ‘살아있다는 감각’을 찾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철학, 산책, 그리고 이 세계의 누군가들과 닿아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과 같은 것들. 시간의 틈새, 빈공간, 사이의 지극히 사적인 몸짓들. 어쩌면 무용하다고 여겨지는 것들. 그런 것들이 그 죽음 같은 시간을 지나는 데 힘이 될 수 있을까. 언듯 무력해 보이는 ‘간헐적으로 반짝이는 타전’의 방식일지라도 연결되어 있다면, 우리는 무용함 속에서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까.

줄거리

“살아있을 땐 살아있다는 감각에 충실하면 좋겠구나…”
그때 라오슈는 말했고, 저는 들었습니다.

밤 12시의 편의점, 미영이 야간 알바를 하고 있다. 철학과 통폐합으로 대학에서 밀려난 후 어머니의 병원비를 감당하지 못해 기초생활수급자가 된 미영은, 매일 밤 이 곳에서 자신이 했던 철학자들의 말이 비루하게 죽어가는 것을 지켜본다. 한편 강사 시절 친구의 죽음을 겪으며 ‘부재’의 고통을 호소하던 중국인 제자 메이린은 타국에서 꾸준히 메일을 보내온다. 미영은 예전의 자신을 떠올리게 하는 메이린의 편지가 고통스러워 답장하지 못하면서도 매순간 그녀에게 쓸 편지의 첫 문장을 머릿속으로 고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