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연말 공연 준비를 시작하면서 가을방학의 공연이란 무엇일까 새삼 생각해보게 됩니다. 거의 언제나 좌석 공연이라 음악에 맞추어 춤추기도 힘들고, 또 춤을 출 만한 곡이 있지도 않고, 무대 위를 휩쓰는 화려한 퍼포먼스가 있지도 않지요. 그런 담담한 공연을 꽤 오래 이어왔네요. 2010년부터 연말 공연을 해왔으니 몇 번 빠지기도 했지만 올해로 대략 9년째입니다. 매년 찾아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것이 고맙고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가을방학은 저희 쪽에서 만든 공식 팬카페나 sns계정도 없고 방송 활동도 거의 없는 데다가 앨범을 자주 내는 것도 아닌데요.

왜 매년 찾아주시는 걸까 생각을 해보면 아마도 함께 쌓인 시간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가을방학의 음악과 쌓은 오랜 우정 같은 거랄까요. 너무나 바쁜데도 사이사이 너무나 지루하다는 점이 신기하기까지 한 업무 속에서, 남들 다 한다는 연애와 결혼이 내 힘에는 부치지만 털어놓을 곳 하나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밤에, 혹은 가을 하늘이 높고 맑아서 문득 작은 행복이 느껴지는 점심시간에 가을방학의 음악과 함께 차곡차곡 추억을 쌓아오신 것 아닐까요. 사람 마음의 원료라는 것은 다 똑같아서, 내 마음 같은 노랫말을 듣기만 해도 나는 나보다 더 큰 무언가의 일원이고, 그래서 혼자가 아니라고 느껴지는 순간을 쌓아오신 게 아닐까요. 제가 음악에 대한 마음을 그런 식으로 쌓아왔던 것처럼요.

저는 여러분을 개인적으로는 잘 모르고 친구를 잘 만들지 못하는 사람답게 여러분과 소통도 자주 하지 않는 편이지만 찡한 마음을 가지고 여러분의 삶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좀 간지럽게 여겨지실까요. 연말 공연을 할 때마다 제일 마지막 곡쯤 되면 여러분들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여러분이 행복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득 담아서 보내곤 합니다. 그것을 여러분들이 느끼셨을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12월의 마지막 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혹은 사랑하고는 싶지만 좀처럼 잘되지 않아서 미안한 마음이 드는 스스로와 함께, 올해도 뵙겠습니다.

계피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