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브레히트는 동시대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 가능성의 흔적들은 그의 고단한 삶과 그 여정 속에서 태어난 작품들 곳곳에서도 발견됩니다. 테아터라움 철학하는 몸의 이번 작품은 넓게 흩뿌려진 브레히트의 편린들을 패치워크(patchwork 크고 작은 헝겊 조각을 모아서 연결한 작품 또는 기법)의 형태와 방식으로 새롭게 구성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연극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우리 삶의 부조리와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을 살피고자 합니다.
줄거리
나는 배우이다. 그리고 베르톨트 브레히트이다. 나는 1898년 2월 10일 독일의 아우스트부르크에서 태어났다. 혼자 있을 무렵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당시 그 사람은 1913년 5월 24일, 오스트리아 비인에서 독일의 뮌헨으로 이사를 했다. 이듬해 1914년 8월, 나는 16살이 되었고 제1차세계대전이 발발했다. 1917년,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징집을 피하기 위해 뮌헨대학교 의대에 입학을 하였다. 1918년, 나는 20살에 첫 희곡-텍스트 <바알>을 완성했고, 이 작품으로 1922년에 클라이스트 상을 받았다. 1923년 11월, 그 사람은 뮌헨에서 쿠데타를 주도하다가 감옥에 들어갔다. 1924년, 그 사람은 그곳에서 『나의 투쟁』을 집필했고, 이듬해 1권을 출판했다. 나는 글을 쓰는 것만으론 여전히 먹고 살기 힘들었다. 1928년, 나는 <서푼짜리 오페라>의 성공으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이 시작됐고, 곧바로 배우 헬레네 바이겔과 결혼을 하였다. 1929년, 그 사람은 세계 경제대공황의 위기가 본격화되자 새로운 지도자로 추대되었다. 1930년, 나는 <마하고니 시의 번영과 몰락>을 완성하였다. 1933년 1월 30일, 그 사람은 마침내 독일의 수상이 되었다. 그 다음 날 나는 바로 덴마크로 망명하였다. 1933년 5월 10일, 그 사람은 나의 모든 책을 모아서 불 태웠다. 1938년, 나는 덴마크에서 <갈릴레이의 생애>를 쓰기 시작하였다. 1939년, 나는 제2차세계대전의 시작과 함께 스웨덴으로 피신하였다. 전쟁은 끝났지만 매카시즘이 나타났다. 1947년, 나는 미국을 떠나 스위스 취리히에 도착하여 서독 입국을 위한 심사를 받았다. 결국 거부되었다. 나는 프라하를 거쳐 동베를린에 안착하였다.
나는 다시 서울이다. 나는 대학로에 있다. 나는 관객 앞에 서있다. 그들은 마스크를 낀 채 나를 보고 있다. 나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이다. 나는 배우이다. 이제 연극은 모두 끝났다.
나는 다시 서울이다. 나는 대학로에 있다. 나는 관객 앞에 서있다. 그들은 마스크를 낀 채 나를 보고 있다. 나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이다. 나는 배우이다. 이제 연극은 모두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