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에로 그로’의 어원인 ‘에로 그로 넌센스’는 ‘에로틱, 그로테스크, 넌센스’의 줄임말로, 일반 적으로 일본의 모더니즘 시대와 파시즘 시대 사이에 존재한 세기말적인 사조를 의미한다. ‘에로 그로 넌센스’는 식민지 조선에 빠르게 수입되었고, 당시 조선 매체들은 앞 다퉈 ‘에로 그로’를 이해하 는 것은 현대를 이해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소개했다. ‘에로 그로 넌센스’의 호기심의 대상으로 주목을 끈 존재들은 정상이라고 여겨지는 섹슈얼리티 규범을 이탈했다고 여겨지는 ‘변태성욕자’, ‘반음양(intersex)', '여장남자’, ‘동성연애자’와 같은 퀴어한 존재들이 주되었다. 낭독극 ‘에 로 그로-경성’에서 준과 재윤은 당대 경성에서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시스젠더 헤테로 섹슈얼리티라 는 정상 규범으로 설명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역사적으로 성소수자를 비하하던 ‘퀴어’라는 용어가 소수자들의 언어로 재전유 되었듯, ‘에로 그로-경성’이라는 제목을 통해 당대 경성의 퀴어한 존재 들이 가진 전복적인 의미를 재전유하고자 하였다. * 설명은 박차민정의 *설명은 박차민정의 『조선의 퀴어』(2018)를 참고하였습니다.
<에로 그로-경성>은 에로티즘을 경유해 사회적으로 ‘정상’이라고 일컬어지는 규범들로부 터 보다 자유로워질 수 있는 가능성의 장소로 나아가는 인물들의 이야기이다. 이 극은 시스젠더 헤테로 정상규범을 벗어난 몸들이 관계를 통해 욕망을 재배치하면서 자기 자신에 가까워 져 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극 속 준과 재윤은 섹슈얼한 욕망을 주고받는 과정을 통해 젠더 규범을 전복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 한다. 사회적 규범으로부터 벗어나 욕망을 새롭게 구성하고 실천하는 일은 진정한 ‘아름다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무엇이 아름다운지 규정하고자 하는 논의는 어떤 섹슈얼리티가 정상인지 도출해내는 과정과 필연적으로 맞닿아 있다. 사회가 정상으로 여기지 않는 몸인 준과 재윤이 교감하며, 자신들만의 새로운 미학을 찾아나가는 과정은 그들을 억압하 던 환경에 균열을 일으키는 일이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이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은 억압적인 질서를 깨뜨리는 용기를 낼 수 있게 만드는 중요한 장치일 것이다. 극중 배경인 경성은 일본제국의 지배와 탄압에 의해 억압당하는 장소였지만 동시에 외부의 신문물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옛 것의 질서가 흔들리기 시작하는 균열의 장소이기도 했다. 혼란스러운 시대에 불안정한 정체성을 가지고도 욕망의 끈을 놓지 않음으로써 자신들만의 미학을 찾아나가고자 하는 준과 재윤의 이야기는 경성이라는 장소가 아니라도 어느 시대에서나 동시대성을 지닐 수 있을 것이다.

줄거리

일본 지배하의 경성, 게이샤 가옥이 들어선다. 여성으로 길러진 준은 게이샤가 되고, 자신이 여자라고 생각하는 재윤을 만나게 된다. 둘은 서로 엇갈린 성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때론 그것을 가지고 놀기 도 하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아나간다.

캐릭터

| 일본 지배하의 경성, 게이샤 가옥에서 소년으로 태어나 게이샤로 길러졌다.

재윤 | 일본 지배하의 경성에서 남성으로 키워졌지만 자신을 여성이라고 생각하는 신사.

안주인 | 준을 게이샤로 키운 게이샤 가옥 안주인. 아름다움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