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하나. '집'을 이야기하다
사람들의 많은 시간은 생활에 필요한 무엇을 만드는 과정과 노력으로 채워져 있다. 그 중 삶의 필수공간인 집에 들이는 관심과 노고는 다른 소품들에 들이는 관심보다 크고 다양하다. 이 연극에서는 삶의 필수공간이자 도구인 '집'을 바라보며, 집을 짓는 과정에 숨은 인류 지혜의 역사와 그 공간에서 삶을 지속하였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둘. '집'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다

대체로 드라마의 극적긴장은 인간 갈등의 극한이나 존재 욕망의 끝 지점에서 보여진다. 그러나 현실의 삶은 극적 순간보다 생활을 지속하기 위한 노력과 수고의 시간으로 더 많이 채워져 있다. 그리고 환경에 적응하기 위하여 좀 더 편리하고 효율적인 것을 구상하고 회의하는 과정은 관계의 갈등과 화해에서 오는 고민과 기쁨보다 더 의미 있는 순간을 경험하게 한다. 이 연극이 집을 바라보고 집이라는 도구의 역사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집에 얽힌 사람들의 사연과 노고 속에서 인간 존재의 한 켠에 대한 의미 있는 시선을 갖는 것이다.


셋. '집'에서 쉴 수 있을까

이 같은 이야기를 통하여 '인간에게 머물고 휴식하는 것이 가능할까'란 질문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생명을 존속하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과 그 같은 생명력의 결실체로서의 집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결국 인간은 수명이 다할 때까지 쉴 곳을 만들어야하며 그 고난의 과정과 한계 속에서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는 것이다.

줄거리

지방의 어느 시골.
차숙이네가 옛날집을 허물고 그 자리에 새 집을 짓고 있다.
집의 기초공사가 마무리 될 무렵 차숙이의 큰아들이 기초가 비뚤어진 것을 발견한다.
공사는 중단되고 땅을 바로잡으려는 와중에 차숙이네 삼남매는 옛날집이 택지가 아닌 농지위에 불법으로 지은 집이었으며 돌아가신 아버지가 군청 몰래 집을 늘려짓고 살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제 다시 새 집을 반듯하게 고쳐 지으려는데 셋째 딸이 이의를 제기한다.
새 집을 비뚤게 짓자는 것이다.
집에 대한 의미와 가치가 각자 다른 삼남매와 어머니 차숙이는 회의를 한다.

집이 이런저런 의견과 선택 속에서 점차 모양을 갖춰가는 동안 차숙이는 몸이 아파 병원에 실려 가고 집을 짓던 삼남매는 집을 계속 지어야할지 중지해야할지 망연자실해진다.
인부들은 반쯤 지어진 집을 바라보고 다음 단계의 일을 기다리고 있고 주인 잃은 집은 바람과 햇빛을 받으며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