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작품의 기획의도
우리는 현재 국내·외적으로 많은 혼란과 갈등이 치솟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개인의 갈등, 단체의 갈등을 넘어 온갖 종류의 혐오, 분란들은 전염병처럼 퍼져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갈등 속에서 1년을 훌쩍 넘게 이어진 코로나 19의 잦은 확산으로 인해 코로나 블루라 불리는 우울감과 무기력까지 느끼고 있는 시민들께, 보편적 공감대와 휴머니즘의 깊이를 느끼게 해주는 윤조병 작가의 특징이 특히 잘 드러난 작품 ‘농토’를 통해 시민들이 함께 공감하고 이해하며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시간을 제공하고자 한다.
제작 배경
‘갑질논란’. 이제는 “아 또 저런 일이 있었어?”라며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버리게 되는 뉴스거리가 되었다. ‘갑질’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사회적 갈등은 이제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우리 삶에서 회자되고 있으며, 특별하게 보도되고 알려지던 것도 잠시…이제 다시 자연스런 사회의 한 부분으로 회귀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온갖 종류의 갑질이 만연한 시대. 어쩌면 농토에서 보여지고 있는 양반과 노비의 갈등이 이러한 ‘갑질’의 시작이 아니었나 조심스레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다. 신분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양반과 노비. 인간의 평등이 존재하지 않았던 그 시대상을 윤조병 작가는 희극적으로 꼬집어내었고 비판했다. 그 비판이 매력적이었기에 농토라는 작품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고, 신분이 없어진 현대 사회에 여전히 신분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지구상의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것을 ‘농토’라는 작품을 통해 작게나마 소리를 내고 싶었다.
작품의 특징
작가 윤조병의 작품 세계를 들여다보면 농촌극, 광산촌극, 어촌극을 통해 사회와 인간의 도덕적인 관계를 꾸준히 탐색해왔다고 생각한다. 이는 사회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농토’라는 작품이 탄생된 지 근 30년이 지났지만, 현대 사회가 가지고 있는 사회 문제와 30여년 전의 사회문제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고 판단되고 생각되었기에 그 시대를 겪었던 어르신들과 그 시대에 태어난 X세대, 그리고 그 시대를 전혀 모르는 밀레니엄 세대의 관객들이 사회문제를 희극적으로 꼬집어낸 ‘농토’라는 작품을 통해 각기 다른 세대 각기 다른 생각으로 비판하고, 때로는 동조하고, 때로는 부정하는 꽤 괜찮은 공연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상업위주의 공연들이 만연한 현 공연계에 정말 연극답고 연극다운 공연 한 편을 관객들에게 선물하고 싶다.
우리는 현재 국내·외적으로 많은 혼란과 갈등이 치솟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개인의 갈등, 단체의 갈등을 넘어 온갖 종류의 혐오, 분란들은 전염병처럼 퍼져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갈등 속에서 1년을 훌쩍 넘게 이어진 코로나 19의 잦은 확산으로 인해 코로나 블루라 불리는 우울감과 무기력까지 느끼고 있는 시민들께, 보편적 공감대와 휴머니즘의 깊이를 느끼게 해주는 윤조병 작가의 특징이 특히 잘 드러난 작품 ‘농토’를 통해 시민들이 함께 공감하고 이해하며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시간을 제공하고자 한다.
제작 배경
‘갑질논란’. 이제는 “아 또 저런 일이 있었어?”라며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버리게 되는 뉴스거리가 되었다. ‘갑질’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사회적 갈등은 이제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우리 삶에서 회자되고 있으며, 특별하게 보도되고 알려지던 것도 잠시…이제 다시 자연스런 사회의 한 부분으로 회귀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온갖 종류의 갑질이 만연한 시대. 어쩌면 농토에서 보여지고 있는 양반과 노비의 갈등이 이러한 ‘갑질’의 시작이 아니었나 조심스레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다. 신분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양반과 노비. 인간의 평등이 존재하지 않았던 그 시대상을 윤조병 작가는 희극적으로 꼬집어내었고 비판했다. 그 비판이 매력적이었기에 농토라는 작품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고, 신분이 없어진 현대 사회에 여전히 신분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지구상의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것을 ‘농토’라는 작품을 통해 작게나마 소리를 내고 싶었다.
작품의 특징
작가 윤조병의 작품 세계를 들여다보면 농촌극, 광산촌극, 어촌극을 통해 사회와 인간의 도덕적인 관계를 꾸준히 탐색해왔다고 생각한다. 이는 사회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농토’라는 작품이 탄생된 지 근 30년이 지났지만, 현대 사회가 가지고 있는 사회 문제와 30여년 전의 사회문제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고 판단되고 생각되었기에 그 시대를 겪었던 어르신들과 그 시대에 태어난 X세대, 그리고 그 시대를 전혀 모르는 밀레니엄 세대의 관객들이 사회문제를 희극적으로 꼬집어낸 ‘농토’라는 작품을 통해 각기 다른 세대 각기 다른 생각으로 비판하고, 때로는 동조하고, 때로는 부정하는 꽤 괜찮은 공연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상업위주의 공연들이 만연한 현 공연계에 정말 연극답고 연극다운 공연 한 편을 관객들에게 선물하고 싶다.
줄거리
소 한 마리에 덤으로 붙어와 양반집 노비생활을 시작한 할버지 덤쇠, 아들 한쇠, 손자 돌쇠의 소원은 한 뙈기의 땅이라도 자신의 것을 마련하는 것이다.
행랑생활을 하는 틈틈이 대를 이어 돌산을 일구던 가족은, 마침내 돌쇠의 때에 이르러 돌산봉답을 마련한다. 그러는 동안 동학란이 일어났을 때 덤쇠가 주인을 구해주고, 대동아전쟁 때는 덤쇠의 두 아들이 주인 아들들을 대신하여 지원병으로 참전하고, 6·25 전쟁이 나자 돌쇠가 주인을 대신하여 집을 지키고 군대도 다녀온다.
이처럼 노비 3대는 난리가 날 때마다 주인을 대신하여 목숨을 바쳐가며 헌신하지만, 주인은 위기 때마다 노비문서와 구렁논 땅문서를 주었다가 위기가 지나면 다시 빼앗아 버린다. 온갖 방법으로 노비 3대를 이용한 것이다.
그런데 3대에 걸쳐 마련한 돌상봉답도 마을이 수몰지구로 정해지자, 주인은 그 돌산이 풍광지역이 된 것을 알고 별장을 짓겠다고 빼앗는다. 3대에 걸친 농토 마련의 소원이 끝내 양반의 배신으로 물거품이 된 것이다.
분노한 주민들은 돌쇠를 앞세워 주인 어른에게 복수하려 하는데…
행랑생활을 하는 틈틈이 대를 이어 돌산을 일구던 가족은, 마침내 돌쇠의 때에 이르러 돌산봉답을 마련한다. 그러는 동안 동학란이 일어났을 때 덤쇠가 주인을 구해주고, 대동아전쟁 때는 덤쇠의 두 아들이 주인 아들들을 대신하여 지원병으로 참전하고, 6·25 전쟁이 나자 돌쇠가 주인을 대신하여 집을 지키고 군대도 다녀온다.
이처럼 노비 3대는 난리가 날 때마다 주인을 대신하여 목숨을 바쳐가며 헌신하지만, 주인은 위기 때마다 노비문서와 구렁논 땅문서를 주었다가 위기가 지나면 다시 빼앗아 버린다. 온갖 방법으로 노비 3대를 이용한 것이다.
그런데 3대에 걸쳐 마련한 돌상봉답도 마을이 수몰지구로 정해지자, 주인은 그 돌산이 풍광지역이 된 것을 알고 별장을 짓겠다고 빼앗는다. 3대에 걸친 농토 마련의 소원이 끝내 양반의 배신으로 물거품이 된 것이다.
분노한 주민들은 돌쇠를 앞세워 주인 어른에게 복수하려 하는데…
캐릭터
돌쇠 | 예순 다섯 살의 농부. 삼대째 주인 어른의 노비처럼 일하고 있다.
점순네 | 마흔살쯤의 며느리. 회상 장면에서 ‘어멈점순네(시어머니)’ 역을 한다.
점순 | 스무 살 안팎의 처녀
일수 | 마을 청년. 다리를 전다.
어른 | 예순 다섯 살의 마을 어른. 회상 장면에서 ‘큰 어른(자신의 아버지)’, ‘더 큰 어른(자신의 할아버지)’ 역을 한다.
덕근 | 예순 다섯 살의 농부. 대장장이의 후손
진모 | 쉰 살 쯤의 농부
갑석 | 마흔 다섯 살 쯤의 농부
갑석의 처 | 갑석의 처
옥돌네 | 갑석의 처
상만 | 예순 다섯 살의 농부. 말을 심하게 더듬는다.
점순네 | 마흔살쯤의 며느리. 회상 장면에서 ‘어멈점순네(시어머니)’ 역을 한다.
점순 | 스무 살 안팎의 처녀
일수 | 마을 청년. 다리를 전다.
어른 | 예순 다섯 살의 마을 어른. 회상 장면에서 ‘큰 어른(자신의 아버지)’, ‘더 큰 어른(자신의 할아버지)’ 역을 한다.
덕근 | 예순 다섯 살의 농부. 대장장이의 후손
진모 | 쉰 살 쯤의 농부
갑석 | 마흔 다섯 살 쯤의 농부
갑석의 처 | 갑석의 처
옥돌네 | 갑석의 처
상만 | 예순 다섯 살의 농부. 말을 심하게 더듬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