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명동예술극장과 극단 미추가 세계 초연으로 올리는
정의신의 신작 <적도 아래의 맥베스>
한?일 양국 연극계가 가장 주목하는 인물 중 한 명인 재일교포 극작가 겸 연출가 정의신. 극단 신주쿠료잔파쿠(新宿梁山泊)의 창립멤버로 <천년의 고독>, <인어전설> 등의 수작들을 발표, 일본 연극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그는 이후 연극뿐 아니라 영화(<달은 어느 쪽에서 뜨는가>, <피와 뼈> 등), TV 드라마(<제비꽃이 필 무렵>NHK, <신기한 이야기>후지TV 등)를 넘나들며 팔방미인의 저력을 과시한다. 테아트르상, 기시다쿠니오 희곡상, 일본 아카데미 최우수각본상, 블루리본 작품상, 아시아태평양영화제 최우수각본상 등 지금껏 그가 수상한 상만 해도 이루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특히 2008년 일본 신국립극장과 서울 예술의 전당 공동제작으로 그가 각본?연출을 맡았던 <야끼니꾸 드래곤>은 요미우리연극상 대상, 기노쿠니야 연극상, 아사히 무대예술상 그랑프리 등 주요 연극대상을 휩쓸며 한국과 일본의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맥베스라는 게, 그거야...... 우리들하고 똑같아..... 마녀에게 부추김을 받아 보잘 것 없는 야심을 지니고 역적이 되어 죄를 거듭해 나가는... 그러다 마침내는 맥더프한테 때려눕히는 거야....”
재일교포 2세로서 이방인, 사회적 소수자의 정체성에 대해 깊이 고뇌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감싸안았던 그가 이번에 새롭게 내놓은 <적도 아래의 맥베스>는 일본의 태평양전쟁에 동원되어 결국 전범으로 사형대 앞에 설 수 밖에 없었던 한국인 군속(軍屬)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사형수 중 유일하게 살아남아 다른 사형수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달하고 싶어했던 주인공 춘길처럼 그도 사회의 희생양이었으나 결국 사회로부터 버림받았던 그들의 마음속 이야기를 예술적 울림으로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한다. 그는 사회적 상황이 한국인 군속들을 전범으로 내몰리게 만들었음을 보여주면서 이들을 주변의 유혹으로 비극적 최후를 맞는 ‘맥베스’에 비교한다. 그러나 극중 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이러한 파국을 그들이 자초한 것은 아닌지 의문을 남김으로써 최종판단은 관객에게 맡긴다. 무거운 주제임에도 중간중간 웃음이 나오면서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은 그의 글이 지닌 무서운 힘이다.
연극을 향한 구도자적 삶과 헌신
한국 대표 연출자 손진책, 작가 정의신을 만나다
이번 작품의 연출은 셰익스피어 비극에서 마당놀이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해왔던 손진책 연출이 맡았다. ‘뚝심의 연극인’이라 불리는 그는 가장 한국적인 소재로 세계에 통용될 수 있는 보편성을 얻기 위해 각고해왔다. 지루하고 낡은 것이라 여겨졌던 고전작품들을 ‘마당놀이’라는 새로운 형식으로 승화시켜 81년 <허생전>이후 20여 개의 마당놀이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또한 우리의 독창적인 색깔을 찾기 위해 한국적 소재인 <서울 말뚝이>, <오장군의 발톱>, <남사당의 하늘>, <한네의 승천> 등 창작극을 꾸준히 올리는가 하면, 최근에는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전통 연희 서사극으로 연출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다. 그는 해외에서도 높이 인정받는 연출가이다. 한국인 최초로 일본 신국립극장의 의뢰를 받아 칠레출신 작가 아리엘 돌프만의 <디 아더 사이드>를 도쿄에서 세계초연으로 올렸고, <오장군의 발톱>, <최승희>, <벽 속의 요정>을 비롯한 그의 연출작들은 해외 유수 극장과 페스티벌에 초청되어 해외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연극을 하나의 수단으로 보고 사회에 제언을 하기 위해 연극을 택했다’는 손진책 연출에게 역사적 사건에 근거한 <적도 아래의 맥베스>는 남다른 작품일 수 밖에 없다. 손진책 연출은 이 작품의 구상단계서부터 정의신 작가와 긴밀히 논의하며 작품의 연출구도를 잡아나갔다. 오랜 기간의 협업으로 이젠 몸짓만으로도 그의 의중을 파악하는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이번 작품을 위해 다시 모이면서 2008년 주요연극상을 휩쓴 그의 연출작 <열하일기만보>에 버금가는 명작의 탄생이 기대된다.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그들의 과거
태평양 전쟁에 동원된 한국인 B급 전범들의 이야기
“일본사람들이라면 주위사람들에게 아무리 매도를 당한다 해도 결국에는 ‘일본인으로서 최선을 다했다’라는 위로랄까, 자랑이랄까 체념도 있겠지요. 하지만, 우리 조선인에게 그런 위로라곤 아무것도 없습니다….”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2년 일본은 동남아시아 지역을 점령하고 연합군 포로들을 감시하기 위한 방편으로 조선에서 젊은이 3,000명을 동원하였다. 면장 월급이 55원 하던 시절에 ‘2년 계약에 월급 50원’이라는 조건이었고, ‘경성일보’와 ‘매일신문’ 은 연일 젊은이들의 태평양 전쟁 참전을 선창하는 형국이었다. 생활고로 또는 강제동원으로 모인 이들 젊은이들은 짧은 교육기간을 거친 후 태국,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일본군 기지로 보내져 포로들을 감시하였다. 동남아에서 대규모 건설공사를 진행하던 일본군은 연합군 포로들을 공사장으로 내몰았다. 일본인 군인들이 몇 없는 상황에서 상부의 명령을 받고 포로들을 동원해야 했던 것은 한국군속들이었다. 각종 풍토병과 영양실조가 포로들 사이에 만연했지만 명령이 떨어지면 어쩔 수 없이 병든 포로들을 차출해야 했다.
1945년. 일본의 항복으로 전쟁이 끝나고 한국민들이 해방의 기쁨을 만끽하던 때, 아이러니하게도 포로수용소의 상황은 뒤바뀌어 포로를 감시하던 군속들이 포로가 되고 연합군 포로들은 고발자가 되었다. 포로들과 얼굴을 맞대야 했던 한국인 군속들 중 129명은 포로들을 학대했다는 이유로 연합군에 의해 전범 처리되었고, 이 중 23명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정작 명령을 내렸던 최고위층 전범들은 엄밀한 수사와 재판을 받았지만 군속들은 그런 과정도 없이 복수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두 개의 유명한 심리학 실험은 과연 이들이 처한 상황을 무시하고 ‘비열한 매국노’로 치부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1. 1961년 예일대학의 심리학 교수 스탠리 밀그램(S. Milgram)은 나치 전범인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보고 다음과 같은 실험을 진행하였다. ‘학습능력실험’인줄 알고 실험참가를 신청한 일반인들은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역을 맡게 된다. 유리를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 앉은 학생은 실은 배우다. 배우는 선생역을 맡은 참가자에게 자신이 ‘심장질환’이 있음을 미리 알린다. 참가자들은 학생에게 일련의 단어를 알려준 뒤 기억하지 못할 경우 전자충격을 주라는 밀그램 교수의 말을 듣는다. 틀리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가해지는 전기충격은 커지는데(학생역할의 배우는 실제로 전기충격을 받지 않지만 전기충격을 받고 괴로워하는 척한다), 참가자들이 배우의 비명을 듣고 실험을 멈추려 하면 밀그램 박사는 ‘계속해도 된다’고 독려한다. 이런 식으로 실험은 계속되고 결과는 놀랍게도 참가자중 65%가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최대충격치인 450 볼트까지 충격을 가했다.
#2. 1971년 스탠포드 대학의 심리학교수 필립 짐바르도(P. Zimbardo)는 학부생 24명을 선발하여 임의로 두 그룹으로 나눈 뒤, 한 그룹은 죄수집단, 한 그룹은 교도관 집단으로 가상의 교도소에서 생활하게 하였다. 그러자 사흘도 안 되어 교도관을 맡은 집단의 학생들이 권위적 태도를 보이면서 실험은 예정보다 빠른 6일만에 중단되었다.
한국인 전범들은 그 어느 곳에도 마음을 둘 수 없는 어둠의 존재들이다. 동족인 한국인들에게는 ‘일본의 앞잡이’라는 오명을 듣고, 일본인들에게는 쓰다 버릴 수 있는 ‘일회용품’같은 존재로 여겨졌다. 일본에 사는 한국계 작가로서 정의신은 무대를 통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조국에서도 일본에서도 버림받은 그들의 잊혀진 과거를 되살려 우리에게 제국주의적 시스템, 전쟁이 야기한 비극을 말하고자 한다.
환상의 연기호흡, 앙상블의 힘을 보여주다
극단 미추의 작품들을 통해 꾸준히 내공을 쌓아왔던 12명의 배우들이 본 작품을 통해 진정한 앙상블의 힘을 보여준다. 어쩔 수 없이 ‘대본영’을 위해 전쟁을 수행했지만 진심으로 속죄하는 일본인 군조 쿠로다, 배우가 되고자 했지만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된 낭만주의자 남성, 야비한 겁쟁이 야마카타, 자신이 처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순수한 청년 문평, 진실을 전하고자 취소위기에 몰린 촬영을 자비로 속개하는 오카다 등 극의 주요인물들이 노련한 배우들의 유연한 완급조절로 1947년의 싱가폴 형무소와 2010년의 논프라닥역의 시공간을 자연스럽게 오간다. 또한, 극단 미추 출신으로 국립극단 단원으로 활동하며 < 테러리스트 햄릿>으로 대한민국연극대상 연기상을 수상한 바 있는 저력의 서상원이 오랜만에 미추 배우들과 한 무대에 올라 분노에 찬 젊은 춘길과 세월을 통해 달관한 늙은 춘길의 모습을 모두 보여준다.
정의신의 신작 <적도 아래의 맥베스>
한?일 양국 연극계가 가장 주목하는 인물 중 한 명인 재일교포 극작가 겸 연출가 정의신. 극단 신주쿠료잔파쿠(新宿梁山泊)의 창립멤버로 <천년의 고독>, <인어전설> 등의 수작들을 발표, 일본 연극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그는 이후 연극뿐 아니라 영화(<달은 어느 쪽에서 뜨는가>, <피와 뼈> 등), TV 드라마(<제비꽃이 필 무렵>NHK, <신기한 이야기>후지TV 등)를 넘나들며 팔방미인의 저력을 과시한다. 테아트르상, 기시다쿠니오 희곡상, 일본 아카데미 최우수각본상, 블루리본 작품상, 아시아태평양영화제 최우수각본상 등 지금껏 그가 수상한 상만 해도 이루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특히 2008년 일본 신국립극장과 서울 예술의 전당 공동제작으로 그가 각본?연출을 맡았던 <야끼니꾸 드래곤>은 요미우리연극상 대상, 기노쿠니야 연극상, 아사히 무대예술상 그랑프리 등 주요 연극대상을 휩쓸며 한국과 일본의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맥베스라는 게, 그거야...... 우리들하고 똑같아..... 마녀에게 부추김을 받아 보잘 것 없는 야심을 지니고 역적이 되어 죄를 거듭해 나가는... 그러다 마침내는 맥더프한테 때려눕히는 거야....”
재일교포 2세로서 이방인, 사회적 소수자의 정체성에 대해 깊이 고뇌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감싸안았던 그가 이번에 새롭게 내놓은 <적도 아래의 맥베스>는 일본의 태평양전쟁에 동원되어 결국 전범으로 사형대 앞에 설 수 밖에 없었던 한국인 군속(軍屬)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사형수 중 유일하게 살아남아 다른 사형수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달하고 싶어했던 주인공 춘길처럼 그도 사회의 희생양이었으나 결국 사회로부터 버림받았던 그들의 마음속 이야기를 예술적 울림으로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한다. 그는 사회적 상황이 한국인 군속들을 전범으로 내몰리게 만들었음을 보여주면서 이들을 주변의 유혹으로 비극적 최후를 맞는 ‘맥베스’에 비교한다. 그러나 극중 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이러한 파국을 그들이 자초한 것은 아닌지 의문을 남김으로써 최종판단은 관객에게 맡긴다. 무거운 주제임에도 중간중간 웃음이 나오면서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은 그의 글이 지닌 무서운 힘이다.
연극을 향한 구도자적 삶과 헌신
한국 대표 연출자 손진책, 작가 정의신을 만나다
이번 작품의 연출은 셰익스피어 비극에서 마당놀이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해왔던 손진책 연출이 맡았다. ‘뚝심의 연극인’이라 불리는 그는 가장 한국적인 소재로 세계에 통용될 수 있는 보편성을 얻기 위해 각고해왔다. 지루하고 낡은 것이라 여겨졌던 고전작품들을 ‘마당놀이’라는 새로운 형식으로 승화시켜 81년 <허생전>이후 20여 개의 마당놀이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또한 우리의 독창적인 색깔을 찾기 위해 한국적 소재인 <서울 말뚝이>, <오장군의 발톱>, <남사당의 하늘>, <한네의 승천> 등 창작극을 꾸준히 올리는가 하면, 최근에는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전통 연희 서사극으로 연출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다. 그는 해외에서도 높이 인정받는 연출가이다. 한국인 최초로 일본 신국립극장의 의뢰를 받아 칠레출신 작가 아리엘 돌프만의 <디 아더 사이드>를 도쿄에서 세계초연으로 올렸고, <오장군의 발톱>, <최승희>, <벽 속의 요정>을 비롯한 그의 연출작들은 해외 유수 극장과 페스티벌에 초청되어 해외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연극을 하나의 수단으로 보고 사회에 제언을 하기 위해 연극을 택했다’는 손진책 연출에게 역사적 사건에 근거한 <적도 아래의 맥베스>는 남다른 작품일 수 밖에 없다. 손진책 연출은 이 작품의 구상단계서부터 정의신 작가와 긴밀히 논의하며 작품의 연출구도를 잡아나갔다. 오랜 기간의 협업으로 이젠 몸짓만으로도 그의 의중을 파악하는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이번 작품을 위해 다시 모이면서 2008년 주요연극상을 휩쓴 그의 연출작 <열하일기만보>에 버금가는 명작의 탄생이 기대된다.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그들의 과거
태평양 전쟁에 동원된 한국인 B급 전범들의 이야기
“일본사람들이라면 주위사람들에게 아무리 매도를 당한다 해도 결국에는 ‘일본인으로서 최선을 다했다’라는 위로랄까, 자랑이랄까 체념도 있겠지요. 하지만, 우리 조선인에게 그런 위로라곤 아무것도 없습니다….”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2년 일본은 동남아시아 지역을 점령하고 연합군 포로들을 감시하기 위한 방편으로 조선에서 젊은이 3,000명을 동원하였다. 면장 월급이 55원 하던 시절에 ‘2년 계약에 월급 50원’이라는 조건이었고, ‘경성일보’와 ‘매일신문’ 은 연일 젊은이들의 태평양 전쟁 참전을 선창하는 형국이었다. 생활고로 또는 강제동원으로 모인 이들 젊은이들은 짧은 교육기간을 거친 후 태국,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일본군 기지로 보내져 포로들을 감시하였다. 동남아에서 대규모 건설공사를 진행하던 일본군은 연합군 포로들을 공사장으로 내몰았다. 일본인 군인들이 몇 없는 상황에서 상부의 명령을 받고 포로들을 동원해야 했던 것은 한국군속들이었다. 각종 풍토병과 영양실조가 포로들 사이에 만연했지만 명령이 떨어지면 어쩔 수 없이 병든 포로들을 차출해야 했다.
1945년. 일본의 항복으로 전쟁이 끝나고 한국민들이 해방의 기쁨을 만끽하던 때, 아이러니하게도 포로수용소의 상황은 뒤바뀌어 포로를 감시하던 군속들이 포로가 되고 연합군 포로들은 고발자가 되었다. 포로들과 얼굴을 맞대야 했던 한국인 군속들 중 129명은 포로들을 학대했다는 이유로 연합군에 의해 전범 처리되었고, 이 중 23명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정작 명령을 내렸던 최고위층 전범들은 엄밀한 수사와 재판을 받았지만 군속들은 그런 과정도 없이 복수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두 개의 유명한 심리학 실험은 과연 이들이 처한 상황을 무시하고 ‘비열한 매국노’로 치부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1. 1961년 예일대학의 심리학 교수 스탠리 밀그램(S. Milgram)은 나치 전범인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보고 다음과 같은 실험을 진행하였다. ‘학습능력실험’인줄 알고 실험참가를 신청한 일반인들은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역을 맡게 된다. 유리를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 앉은 학생은 실은 배우다. 배우는 선생역을 맡은 참가자에게 자신이 ‘심장질환’이 있음을 미리 알린다. 참가자들은 학생에게 일련의 단어를 알려준 뒤 기억하지 못할 경우 전자충격을 주라는 밀그램 교수의 말을 듣는다. 틀리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가해지는 전기충격은 커지는데(학생역할의 배우는 실제로 전기충격을 받지 않지만 전기충격을 받고 괴로워하는 척한다), 참가자들이 배우의 비명을 듣고 실험을 멈추려 하면 밀그램 박사는 ‘계속해도 된다’고 독려한다. 이런 식으로 실험은 계속되고 결과는 놀랍게도 참가자중 65%가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최대충격치인 450 볼트까지 충격을 가했다.
#2. 1971년 스탠포드 대학의 심리학교수 필립 짐바르도(P. Zimbardo)는 학부생 24명을 선발하여 임의로 두 그룹으로 나눈 뒤, 한 그룹은 죄수집단, 한 그룹은 교도관 집단으로 가상의 교도소에서 생활하게 하였다. 그러자 사흘도 안 되어 교도관을 맡은 집단의 학생들이 권위적 태도를 보이면서 실험은 예정보다 빠른 6일만에 중단되었다.
한국인 전범들은 그 어느 곳에도 마음을 둘 수 없는 어둠의 존재들이다. 동족인 한국인들에게는 ‘일본의 앞잡이’라는 오명을 듣고, 일본인들에게는 쓰다 버릴 수 있는 ‘일회용품’같은 존재로 여겨졌다. 일본에 사는 한국계 작가로서 정의신은 무대를 통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조국에서도 일본에서도 버림받은 그들의 잊혀진 과거를 되살려 우리에게 제국주의적 시스템, 전쟁이 야기한 비극을 말하고자 한다.
환상의 연기호흡, 앙상블의 힘을 보여주다
극단 미추의 작품들을 통해 꾸준히 내공을 쌓아왔던 12명의 배우들이 본 작품을 통해 진정한 앙상블의 힘을 보여준다. 어쩔 수 없이 ‘대본영’을 위해 전쟁을 수행했지만 진심으로 속죄하는 일본인 군조 쿠로다, 배우가 되고자 했지만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된 낭만주의자 남성, 야비한 겁쟁이 야마카타, 자신이 처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순수한 청년 문평, 진실을 전하고자 취소위기에 몰린 촬영을 자비로 속개하는 오카다 등 극의 주요인물들이 노련한 배우들의 유연한 완급조절로 1947년의 싱가폴 형무소와 2010년의 논프라닥역의 시공간을 자연스럽게 오간다. 또한, 극단 미추 출신으로 국립극단 단원으로 활동하며 < 테러리스트 햄릿>으로 대한민국연극대상 연기상을 수상한 바 있는 저력의 서상원이 오랜만에 미추 배우들과 한 무대에 올라 분노에 찬 젊은 춘길과 세월을 통해 달관한 늙은 춘길의 모습을 모두 보여준다.
줄거리
2010년 여름, 태국 논프라덕역의 플랫폼에서 일본의 한 TV프로그램 외주제작사 스태프들이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촬영하고 있다. ‘죽음의 철로’라 불렸던 태국-버마간 태면철도를 배경으로 일본군 포로수용소의 감시원이었던 김춘길의 증언을 녹화하는 것이다. 1942년, 일본군에 의해서 시작되어 1년 4개월 만에 완성된 철도는 연합군의 포로와 아시아계 노동자 수 만 명의 생명을 앗아간 피비린내 나는 건설작업이었다.
일본군에 징집되어 수용소 감시원이 될 수 밖에 없었던 한국인 김춘길은 일본이 전쟁에 패한 직후 싱가포르 창기 형무소로 송환되어 다른 한국인들과 사형선고를 기다리다가 그 중 유일하게 살아남는다. 자신이 살아남은 이유는 한국인 전범들의 이야기를 이 세상에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고 믿는 김춘길은 ‘한국인 전범이 포로를 죽게 내버려두었다’는 결론을 이끌어내려는 제작사 사장 무네타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카메라 앞에 선다.
1947년 여름, 싱가폴 창기 형무소.
사형수가 모여있는 감옥 P홀은 일본인 군조(중사)나 전쟁 당시 전 부하였던 한국인 감시원 등 복잡한 멤버로 구성되어 있다. B급 전범자로 분류되어 언제 떨어질 지 모르는 사형 선고를 기다리고 있는 그들은 심한 감정기복을 보이며 불안정한 정신상태로 생활한다. 남의 나라 전쟁에 자신이 활용된 것에 대해, 명령에 의해 수행한 일로 사형대에 서야 하는 것에 대해 분개하는 춘길에게, 사형선고를 받은 남성은 이렇게 말한다.
“나도 내가 나를 사형대로 보내는 길을 선택한 거야…”
.....
“선택한 게 아니야”
“선택했어.”
“다른 길은 없었어.”
“다른 길도 있었을 거야.”
반딧불이 여기저기에서 많이 날고 있다.
죽어 간 그들의 영혼처럼 저편에서 춤추고 있다.
일본군에 징집되어 수용소 감시원이 될 수 밖에 없었던 한국인 김춘길은 일본이 전쟁에 패한 직후 싱가포르 창기 형무소로 송환되어 다른 한국인들과 사형선고를 기다리다가 그 중 유일하게 살아남는다. 자신이 살아남은 이유는 한국인 전범들의 이야기를 이 세상에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고 믿는 김춘길은 ‘한국인 전범이 포로를 죽게 내버려두었다’는 결론을 이끌어내려는 제작사 사장 무네타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카메라 앞에 선다.
1947년 여름, 싱가폴 창기 형무소.
사형수가 모여있는 감옥 P홀은 일본인 군조(중사)나 전쟁 당시 전 부하였던 한국인 감시원 등 복잡한 멤버로 구성되어 있다. B급 전범자로 분류되어 언제 떨어질 지 모르는 사형 선고를 기다리고 있는 그들은 심한 감정기복을 보이며 불안정한 정신상태로 생활한다. 남의 나라 전쟁에 자신이 활용된 것에 대해, 명령에 의해 수행한 일로 사형대에 서야 하는 것에 대해 분개하는 춘길에게, 사형선고를 받은 남성은 이렇게 말한다.
“나도 내가 나를 사형대로 보내는 길을 선택한 거야…”
.....
“선택한 게 아니야”
“선택했어.”
“다른 길은 없었어.”
“다른 길도 있었을 거야.”
반딧불이 여기저기에서 많이 날고 있다.
죽어 간 그들의 영혼처럼 저편에서 춤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