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연출의도
인간이 세상에 나왔다가 100년을 살다가 죽어도 잠든 날, 병든 날, 걱정근심 다 제하면
단 사십도 못 산다는데, 억압과 수탈의 식민지 시대부터 핸드폰 하나면 다 되는 세상까지,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는 이 땅을 살아온 어르신이 생을 마감한다.
대체 이분의 삶은 잠든 날, 병든 날, 걱정근심 다 제하면 몇 년이나 옳게 편히 살다 가는 것일까.
그래도 이 어른, 죽는 날까지 명줄 긴 내가 죄인이라며, 싸우지 말어라, 옳게 살어라
젊은이 끌어안고, 다독이신다.

그러나 우리는 어르신에 대한 관심도, 경의도 없다.
우리가 지금 이 땅에 서 있는 것이 아주 당연하다는 듯, 그 시절 이 땅을 지켜온,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는 역사보다 귀찮은 존재마저 되어버렸다.
한국 근현대사의 산증인, 우리 어르신들의 ‘삶’을 통해, 우리의‘이기와 어리석음을 보고,
그분들의 ‘관용과 사랑’, 개인보다는 전체를 생각하는 마음을 배워,
이제 하나둘 인생을 마감하는 어르신들의 넋을 함께 위로하는 시간이 되어야겠다.


작가의도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은 2010년, 각종 사진전과 기념사업이 추진되고 있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을 비롯,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관심 밖의 일일 뿐이다. 초,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어떤 설문조사에서는 상당수가 ‘한국전쟁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다’고 대답했으며, 통일에 대한 의견을 묻자 ‘관심 없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 이기주의가 만연하는 2010년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입식으로 과거의 아픈 기억을 이야기 하는 것은 소모적이지 않은가하는 생각을 했다. 그 시절의 삶을 가슴에 담아둔 채 묵묵히 생을 지탱해 온, 전쟁의 한 귀퉁이에 서 있다가 맥없이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내몰린 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전쟁이 적어도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내 가족, 내 나라의 일이었다는 것을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
더불어 핵가족마저 해체되고 가전제품도 일인용이라야 잘 팔리는 요즘, 무언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채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넌지시 자신의 발자취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그런 여유를 주는 작품이 되어주기를 소망해본다.

줄거리

진주의 집성촌인 대각리.
마을의 최장수 노인 도문이 급작스레 숨을 거두고, 사라졌던 그의 일기장이 발견되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파출소장 용식은 일기장의 내용을 토대로 살해동기가 있는 용의자를 색출하고, 도문의 아들 창섭과 마을의 문제아 태호가 용의선상에 오른다. 그러나 강도 사건 한 번 없었던 대각리에서 일생을 살아온 마을 주민들과 용식에게 살인 사건은 영화 속 일처럼 막연하고 남의 일 같기만 하다. 사건의 진상은 좀처럼 풀리지 않고, 일기를 통해 드러난 도문의 과거와 외로움을 알아주는 이는 치매를 앓는 태호의 할머니, 막딸 뿐이다. 결국 박노인 살인사건의 수사는 흐지부지 일단락되고, 사람들은 도문의 원혼과 마을의 안녕을 기리는 푸닥거리를 치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