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공연제작사 (유)쇼노트와 패티김의 소속사 ㈜아이예스컴은 오는 2005년 10월 21일부터 23일까지 충무아트홀 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디바 패티김의 콘서트 ‘객석으로…’를 공연한다. 이번 공연에서 그녀는 또 어떤 모습을 선사할 것인지 벌써부터 반세기를 그녀와 함께 한 팬들의 가슴에는 설레임이 가득하다.
객석으로...
대한민국 대중음악과 함께 지내온 지난 46년, 오랜 세월 주옥 같은 노래로 우리나라 최고의 국민가수로 존경과 사랑을 받아온 패티김. 이제 그녀가 객석으로 서서히 다가온다. 그간 세종문화회관, 올림픽 공원 잔디마당, 심지어는 뉴욕 카네기 콘서트홀 등의 초대형 공연장에서 수천, 수만 명의 관객을 대상으로한 대형 공연을 선사했던 그녀가 오는 10월 ‘객석으로... ’ 라는 컨셉으로 처음으로 800석 규모의 작은 공연장 충무아트홀에서 새로운 팬들과 만나 노래와 숨소리까지 같이 호흡하며 함께 즐기고 추억을 만드는 공연을 할 계획이다.
패티김이 이번 콘서트를 선 보일 곳은 서울 중구 신당동에 위치한 ‘충무아트홀’. 지난 3월 중구문화재단이 건립하여 새로 개관한 클래식, 팝, 뮤지컬 공연장이다. 극장 개관 이후 “슈투트가르트 페가소스 현악4중주단”, 팝의 여왕 “수잔 베가”, “에드왈도 페르난데즈”, 세계 최고의 댄스 뮤지컬 “포에버 탱고”, “김덕수”, “이정식” 등 최고의 아티스트들이 이미 충무아트홀 무대에서 환호와 갈채를 받았으며, 충무아트홀은 세계적 아티스트들로부터 완벽한 음향과 세계적 수준의 내장재, 우아하면서도 격조 있는 공연장으로 설립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충무아트홀의 강점은 바로 최적의 관극을 위한 최적의 사이즈다.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이 여타의 대형 공연장을 제쳐두고 충무아트홀을 찾은 데에는 바로 공연하기에 가장 좋다는 800석 전후 규모의 공연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패티김 역시 이러한 점에 기초하여 이번 공연의 컨셉을 착안하였다.
패티김은 충무아트홀 공연을 통해 그 동안 좀처럼 갖기 힘들었던 관객과의 밀도 있는 교감을 창출할 계획이다. 충무아트홀의 경우 객석 어느 곳에서도 무대가 가까울 뿐 아니라 육성으로 말하는 소리도 객석 끝까지 잘 전달 되어 기존의 야외 공연이나 초대형 극장과 달리 보컬리스트의 표정 뿐 아니라 눈동자의 움직임까지도 생생하게 전달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패티김은 이번 무대의 특성을 잘 살려 좀더 어쿠스틱한 사운드와 멜랑콜리한 보컬라인으로 올드팬들의 감성을 사로잡아 열정적인 무대로 또 다시 팬들에게 감동을 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또한 기존의 초대형 공연장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색다른 연출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되 패티김의 팬이라면 결코 놓쳐서는 안될 멋진 공연이 될 것이다.
규모에 맞는 공연을 위해...
패티김은 이번 공연을 위해 특별히 티켓 가격마저도 인하하는 결단을 내렸다. 매번 그녀의 콘서트는 15만원을 호가하는 고가의 콘서트였다. 초대형 무대와 스팩터클, 수백명의 스탭들이 달라붙어야만 제작할 수 있는 공연이었기에 어쩔 수 없는 가격이었다. 하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클래식 전문 공연장의 특성상 완벽한 음향시설과 아늑한 객석, 그리고 공연장 자체만으로도 이미 완벽한 충무아트홀 자체가 제작비 절감의 커다란 요인이 되었다. 패티김 자신 역시 공연을 통한 돈 욕심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버린 지 오래다.
결국 최후의 혜택은 패티김의 팬들에게 돌아갔다. 이번 공연에서는 최고의 자리인 로얄석도 10만원을 넘지 않는 9만원에 책정되었다. 또한 팬들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하여 6만원 석과 4만원 석을 갖추는 센스도 잊지 않았다. 이제 그간 패티김의 공연을 보고 싶었지만 망설임 끝에 결국 고개를 떨구곤 했던 모든 이들이 패티김과 함께 웃고 울고 즐길 수 있다. 그녀와의 동거는 이제부터 시작인 것이다.
최초의…’라는 타이틀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국민적인 도전가수 패티김
올해로 데뷔 46년을 맞이하는 패티김은 1938년 생, 올해 68세의 나이가 되었다. 그녀의 기록을 살펴보자면 언뜻 눈에 띄는 것만으로도 한국 최초의 스탠더드 팝 가수, 국내 최초의 창작뮤지컬 ‘살짜기 옵서예(68)’의 출연, 당시 대중가수들에게는 꿈의 무대였던 세종문화회관에서의 첫 대중가수로서의 공연(78), 또 한국의 대중 음악을 세계무대에 알리는 한국 대중음악인 최초의 뉴욕 ‘카네기 콘서트홀’,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에서의 공연 등이 있을 정도로 그녀의 음악 역사는 빼곡하다. 그야말로 그녀는 명실공히 한국 최고의 디바이자 남녀를 불문하고 최고의 보컬리스트라 아니할 수 없다.
從心의 인생 길에 不惑을 노래하다
만년에 공자(孔子)는 《논어(論語)》〈위정편(爲政篇)〉에서 이렇게 회고하였다. \"나는 나이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吾十有五而志于學), 서른에 뜻이 확고하게 섰으며(三十而立), 마흔에는 미혹되지 않았고(四十而不惑), 쉰에는 하늘의 명을 깨달아 알게 되었으며(五十而知天命), 예순에는 남의 말을 듣기만 하면 곧 그 이치를 깨달아 이해하게 되었고(六十而耳順), 일흔이 되어서는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공자의 말을 빌어 말하자면 그녀는 46년을 함께 해온 노래만으로도 불혹(不惑)의 나이를 훌쩍 넘겼으며, 걸어온 인생길로 보면 이순(耳順)을 넘어 종심(從心)을 향해가고 있다.
성인의 말은 역시나 어긋남이 없는 것인가, 패티김의 노래 인생을 살펴보면 반 세기 동안 유행과 조류의 유혹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그녀만의 음악을 지켜온 것을 알 수 있다. 소위 ‘트로트’ 가수로 대변되던 동료 스타들이 대부분의 무대를 차지하고, 이내 민주화 운동과 함께 찾아온 포크 열풍, 그리고 80년대 초반의 발라드 열풍에 이에 댄스와 랩, 그리고 힙합까지 대한민국 대중가요 한 자락에는 변치 않는 그녀만의 한국식 스탠다드 팝이 자리 잡고 있었다. 또 그러한 그녀의 음악성은 대중들의 마음 속 깊이 파고 들어 ‘가요’와 ‘가곡’의 의미 구분을 허물기까지 이르렀으며, 대중들뿐 아니라 음악가들, 동료 가수들, 공연 및 방송 관계자들이 가장 존경하는 가수로 그 자신을 만들어 내기에 한치의 부족함도 없었다.
이제 종심(從心)을 바라보는 그녀. 인생의 마지막 순간마저도 무대 위에서 마감하고 싶다는 그 말처럼 이제 그녀의 인생은 무엇을 하던 그녀가 추구하는 음악과 가치관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미 1992년 국제사회 복지단체 ‘SOROPTIMIST’ 가입을 시작으로 에이즈예방재단 홍보이사, 여성단체연합 후원회장, 서울시 홍보대사 등 사회환원을 위한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는 것 역시 그러한 그녀의 행보를 보여주고 있음에 다름 아니다.
2005년 가을, 70년 대한민국 가요사의 46년을 지켜온 한국 가요계의 거목, 영원한 가을의 연인 패티김의 콘서트 <패티김과 함께 이 가을을... ‘객석으로’>가 이처럼 기다려 지는 것은 그녀의 음악과 노래,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의 있는 모습 그대로가 너무나도 아름답기 때문이 아닐까. 언제까지고 그녀의 노래와 함께 숨쉴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은 그녀를 사랑하는 모든 팬들의 진정한 바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