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20 년이 지났습니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첫 음반을 발매한지도 어느덧 20년이 지났다. 안타깝게도 노찾사에 대한 대중의 기억은 희미해져만 가고, 이젠 노찾사라는 이름은 (故)김광석, 안치환, 권진원 등 이곳을 거쳐간 솔로가수들에 의해 가끔씩 그 이름이 회자되곤 한다. 소위 ‘386가요’, ‘Oldies But Goodies'의 단골메뉴가 되어 해마다 오뉴월이면 라디오작가의 선곡표에서나 그 이름을 찾아볼 수 있게 되어 버렸다. 하지만, 80년대란 척박한 지층위에 자유와 민주를 외치던 국민들의
열망을 함께한 노찾사의 아름다운 노래들은 여전히 유효하다.


10 년만에 무대에 섰습니다.


1987년 10월‘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첫 공연, 그 뜨거운 공감의 현장을 기억한다. 이 후 13회의 정기공연과 그 외 수많은 초청 공연을 통해 노찾사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교감하며 무대에서 노래했다. 자유와 평등으로, 때론 여권신장과 청소년을 위해, 신개발지역의 버림받은 사람을 위해....... 그렇게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노찾사는 무대는 관객들의 진심 어린 박수와 열기속에 10주년 기념 공연을 끝으로 그 행보를 잠시 멈추게 된다.


이제 다시 시작입니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 20주년 기념 콘서트는 자축행사가 아니다. 이 무대는 잠시 멈춰있던 노찾사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공식적인 컴백무대이다. 노찾사의 공연을 보며 함께 노래했던 수많은 관객들, 노찾사의 음악을 들으며 거친 세상에 조금이라도 힘을 얻었던 더 많은 사람들,..... 노찾사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 그 이름처럼 아름다운 노래를 찾기 위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보다 살기 좋은 세상을 위해, 더 정의롭고 아름다운 세상을 향해 10년간 멈춰두었던 그 발걸음을 다시 옮기려 한다.


1987년 10월 어느날 종로5가에 자리 잡은 ‘기독교백주년기념관’에서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첫번째 공연이 열렸을 때 관객들이 보여준 뜨거운 반응은 우리 모두의 상상을 뛰어 넘는 것이었다.
공연 시작 몇 시간 전부터 몰려든 관객들은 공연 내내 진심어린 박수를 보내주었고 일부 관객은 노래를 함께 부르며 눈물을 펑펑 쏟기도 했다. 이후 노찾사의 역사는 바로 그 순간 관객들과 함께 확인했던 정서적 일체감, 오랜 억압과 투쟁의 세월을 지나 저 6월 항쟁의 빛나는 함성을 통해 이제 막 열리기 시작한 자유의 공기와 승리의 신념이 빚어낸 그 뜨거운 공감으로부터 시작된다. 그것은 노찾사 자체에 대한 것이었기보다는 노찾사의 노래들이 근거하고 있던 80년대의 지난한 역사, 그 속을 함께 헤쳐 나온 모두의 삶에 대한 기꺼운 상찬이었다.


- 김창남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노래는 결국 문화산업의 이윤동기를 위해 속절없이 소모되는 음향의 인스턴트 식품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면 출세지상주의에 자신의 예술적 영혼을 저당잡혀 버린 어린 우상들의 다양한 재능 중의 하나로 전락해 버린 것인가? 노찾사는 이러한 환멸에 대해 응답할 책무가 있는 한국대중음악의 몇 안 되는 생존자 중의 일 인이다.


- 강헌 (대중음악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