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연극 [레디메이드, 경계]는 채만식의 소설 [레디메이드 인생 (1934)]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입니다. 예술가의 정체성과 인간 창조성의 자리를 기술이 잠식해가는 아주 가까운 미래,
혹은 오늘. 이 작품은 한 화가의 무너짐을 통해 묻습니다.
예술은 무엇이고, 예술가는 누구인가?
AI가 감정을 계산하고 이미지를 생성하는 시대. 그 세계 속에서 인간은 여전히 붓을 들 자격이
있는가? 빈 캔버스 앞에서 고립된 채 삶과 창작 모두에서 흔들리는 화가 P의 여정을 따라가며,
이 연극은 인간만이 품을 수 있는 감정의 진폭과 실패의 시간을 바라봅니다.
[레디메이드 인생] - 대량 생산되었지만 어디에도 쓰이지 않는, 소외된 존재의 비유는 오늘날
예술가뿐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일지 모릅니다.
연극 [레디메이드, 경계] - 완벽함을 추구하는 기술의 시대에도 여전히 부서지고 흔들리는
인간이야말로 진정한 창조의 주체임을 믿습니다.
무대 바닥을 바둑판처럼 설계하고, 인물의 동선을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제4국
수순에 따라 구성함으로써 기계의 예측을 벗어난 인간만이 둘 수 있는 신의 한 수가 발화되는
순간을 연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합니다.
기계는 멈추지 않고 이미지를 생성하지만, 오직 인간만이 멈춰 설 수 있고, 실패할 수 있으며,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 연극은 그 불완전한 선 하나에서 다시 시작되는 예술의 가능성을 무대 위에 펼쳐보입니다.

줄거리

AI가 예술을 복제하는 시대
감정은 상품이 되었고, 창작은 시스템의 계산 안으로 들어갔다.
화가 P는 더 이상 그릴 수 없다.
공모전 탈락, 밀린 고지서, 책임지지 못한 아이.
모든 것이 무너진 자리에서, 그는 빈 캔버스 앞에 멈춰 선다.
붓을 들고 있지만 그릴 수 없고, 살기 위해 그림을 그려야 했지만, 그릴수록 생의 의미는 흐려져
간다.
이제 그는 묻는다.
예술가란, 더 이상 창작을 할 수 없을 때에도 여전히 예술가일 수 있는가.
연극 [레디메이드, 경계]는
한 인간이 창작자로서의 자신을 지우고 다시 그리는 과정을 따라간다.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단 하나. 불완전한 선 위에서 예술은 다시 시작된다.
마치 오래 전, 시대에 밀려 '기성품 인생'이 된 한 사내의 이야기처럼.
무대 위 또 한 사람의 삶이 조용히 경계에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