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혜화동 1번지 5기동인 봄 페스티벌
“나는 나르시시스트다”
나르시시즘
나르시시즘(Narcissism, 자기애自己愛)은 자신의 외모, 능력과 같은 어떤 이유로 자신이 뛰어나다고 믿거나 사랑하는 자기 중심성을 말한다.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 물에 빠져 죽은 나르키소스와 연관해 독일의 P.네케가 만든 용어이며, 이후 프로이트가 정신분석 개념으로 확립하여 리비도가 자기 자신한테 향해진 상태, 즉 자기 자신이 관심의 대상이 되는 상태로 규정했다. 이것은 보통 인격적인 장애증상으로 자기의 신체에 대하여 성적 흥분을 느끼거나, 자신을 완벽한 사람으로 여기면서 환상 속에서 만족을 얻는다. 또한, 남의 칭찬을 갈구하는 자기애성 성격장애로 자신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끌어내리고 질투한다.
나는 나르시시스트다!
지금 한국 사회는 자기 중심적인 사고가 팽배하며, 타인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 동시대를 설명할 수 있는 가장 큰 키워드는 ‘개인의 만족’이 최고의 가치라는 점이다. 이번 페스티벌에서는 나르키소스라는 신화적 메타포를 통하여 이러한 내용을 확장시키려고 한다. 수면에 비친 자기 모습을 들여다보는 나르키소스처럼 자기응시행위를 통하여, 나 아닌 타자 역시 동일한 인격 주체라고 생각하는 자기 반성의 시간을 만들어보고자 한다.
또한, 나르시시즘을 통해 사회를 바라보는 것뿐만이 아니라, 지금 이곳에서 예술을 하고 있는 우리 스스로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자 한다. 우리는 왜 예술을 하는가. 우리 역시 자기애에 도취되어 표현할 방법으로 예술을 선택한 것인가. 순전히 개인적인 나르시시즘 안에서 우리는 어떤 식으로 연극 행위라는 공동의 작업과 방향을 모색할 수 있을까, 등등의 연극 작업자로서의 원론적인 질문 역시 이 기회를 통해서 해보고자 한다. 혜화동 1번지 5기동인의 첫 번째 문을 여는 페스티벌에서의 나르시시즘은 이렇게 예술을 하고 있는 극히 개인적인 우리로부터 시작하여, 사회와 시대를 어떻게 바라볼지 탐색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배신>
플래시 백 구조
연극 <배신>의 가장 큰 특징은 영화의 플래시 백처럼 극이 거꾸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데 있다. 한 중산층의 삼각관계, 혼외정사, 불륜이 다소 진부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첫 장면부터 모든 것을 알고 보는 관객은 결말로 갈수록 등장인물이 젊어지는 것을 보게 된다. 작품이 진행함에 따라 배신을 추적하는 게 아니라, 배신의 사이사이에 고여있는 나르시시즘의 우물을 발견하는 것이다. 배신의 저변에는 이기심과 자기합리화가 깔려 있는데, 결국 그 배신이라는 행위는 자신에게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부조리 같지만, 오히려 이것이 현실일 것이다. 신화에서 나르키소스가 우물을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비극은 시작된다. 연극 <배신>에서도 나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나르시시즘의 비극성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거울, 우리 스스로를 들여다볼 수 있는 도구
다양한 영상과 매체를 사용하는 김제민 연출이 이번에는 헤롤드 핀터의 <배신>을 올린다. 이번 공연에서는 가장 큰 매체로써 ‘거울’을 이용할 것이다. 다양한 실험이 가능한 매체이면서, 또한 나르키소스의 자기 응시 과정을 메타포로 이용할 수 있다. 이러한 매체의 사용이 어떻게 하면 관객과의 소통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고, 설득력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실험할 계획이다.
“나는 나르시시스트다”
나르시시즘
나르시시즘(Narcissism, 자기애自己愛)은 자신의 외모, 능력과 같은 어떤 이유로 자신이 뛰어나다고 믿거나 사랑하는 자기 중심성을 말한다.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 물에 빠져 죽은 나르키소스와 연관해 독일의 P.네케가 만든 용어이며, 이후 프로이트가 정신분석 개념으로 확립하여 리비도가 자기 자신한테 향해진 상태, 즉 자기 자신이 관심의 대상이 되는 상태로 규정했다. 이것은 보통 인격적인 장애증상으로 자기의 신체에 대하여 성적 흥분을 느끼거나, 자신을 완벽한 사람으로 여기면서 환상 속에서 만족을 얻는다. 또한, 남의 칭찬을 갈구하는 자기애성 성격장애로 자신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끌어내리고 질투한다.
나는 나르시시스트다!
지금 한국 사회는 자기 중심적인 사고가 팽배하며, 타인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 동시대를 설명할 수 있는 가장 큰 키워드는 ‘개인의 만족’이 최고의 가치라는 점이다. 이번 페스티벌에서는 나르키소스라는 신화적 메타포를 통하여 이러한 내용을 확장시키려고 한다. 수면에 비친 자기 모습을 들여다보는 나르키소스처럼 자기응시행위를 통하여, 나 아닌 타자 역시 동일한 인격 주체라고 생각하는 자기 반성의 시간을 만들어보고자 한다.
또한, 나르시시즘을 통해 사회를 바라보는 것뿐만이 아니라, 지금 이곳에서 예술을 하고 있는 우리 스스로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자 한다. 우리는 왜 예술을 하는가. 우리 역시 자기애에 도취되어 표현할 방법으로 예술을 선택한 것인가. 순전히 개인적인 나르시시즘 안에서 우리는 어떤 식으로 연극 행위라는 공동의 작업과 방향을 모색할 수 있을까, 등등의 연극 작업자로서의 원론적인 질문 역시 이 기회를 통해서 해보고자 한다. 혜화동 1번지 5기동인의 첫 번째 문을 여는 페스티벌에서의 나르시시즘은 이렇게 예술을 하고 있는 극히 개인적인 우리로부터 시작하여, 사회와 시대를 어떻게 바라볼지 탐색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배신>
플래시 백 구조
연극 <배신>의 가장 큰 특징은 영화의 플래시 백처럼 극이 거꾸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데 있다. 한 중산층의 삼각관계, 혼외정사, 불륜이 다소 진부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첫 장면부터 모든 것을 알고 보는 관객은 결말로 갈수록 등장인물이 젊어지는 것을 보게 된다. 작품이 진행함에 따라 배신을 추적하는 게 아니라, 배신의 사이사이에 고여있는 나르시시즘의 우물을 발견하는 것이다. 배신의 저변에는 이기심과 자기합리화가 깔려 있는데, 결국 그 배신이라는 행위는 자신에게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부조리 같지만, 오히려 이것이 현실일 것이다. 신화에서 나르키소스가 우물을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비극은 시작된다. 연극 <배신>에서도 나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나르시시즘의 비극성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거울, 우리 스스로를 들여다볼 수 있는 도구
다양한 영상과 매체를 사용하는 김제민 연출이 이번에는 헤롤드 핀터의 <배신>을 올린다. 이번 공연에서는 가장 큰 매체로써 ‘거울’을 이용할 것이다. 다양한 실험이 가능한 매체이면서, 또한 나르키소스의 자기 응시 과정을 메타포로 이용할 수 있다. 이러한 매체의 사용이 어떻게 하면 관객과의 소통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고, 설득력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실험할 계획이다.
줄거리
연극 <배신>은 등장인물 로버트, 제리, 엠마의 삼각관계, 혼외정사, 불륜을 소재로 한다. 제리와 엠마는 7년 동안 밀회를 즐겼던 불륜의 관계이고, 엠마와 로버트는 부부관계이다. 공교롭게도 제리와 로버트는 결혼식에서 들러리를 할 만큼 아주 절친한 친구 사이이다. 아주 오랜 시간 이들의 불편한 삼각관계는 지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