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고향은 참 잔인합니다. 감추고 싶은 초라함을 단숨에 간파하고. 걱정이라는 이름으로 바닥까지 내려간 자존감을 기어이 헤집어 놓습니다. 변하지 않는 친구들의 순수함은 고맙기보다 거북했고 부모님의 깊어진 주름은 미안함보다 내 무능력을 증명하는 낙인처럼 느껴졌습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늘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떠나온 사람이 돌아갈 자격이 있는지. 머무른 사람들 앞에서 잘 살고 있는 척을 얼마나 더 해야 하는지.
이 극은 화려만 서울의 조명 아래서 썩어가는 껍데기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동시에. 발버둥 쳐도 제자리인 것 같은 고향 땅에서 서로의 살점을 떼어주며 버티는 진짜 사람들에 대만 기록입니다 성장이란 위로 향하는 사다리를 오르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서 있는 이 축축하고 축하고 비린 땅을 비로소 껴안는 것입니다.
무리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이 이야기가 그 날카롭고 민망한 순간을 함께 통과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줄거리

서울에서 잘나가는 무역회사 대표 민재가 20년 만에 고향을 찾는다. 구겨짐 없는 명품 수트, 매끈한 서울 표준어. 동창들 눈엔 여전이 성공의 아이콘이다. 그러나 껍데기 속 진심은 처참하다. 회사는 부도, 아내는 이혼 서류, 주머니엔 톨게이트 비용조차 없다
장례식장엔 그 시절 그대로인 친구들이 모인다. 술주정뱅이, 브로커, 장례식장에서 보험을 파는 여자, 꽃 알레르기인 줄 모르고 꽃다발 들고 고백하는 남자
구질구질한 이들 앞에서 민재의 포장지는 한 겹씩 찢겨 나간다. 그토록 혐오했던 연도의 비린 점이. 실은 자신을 살게 할 유일한 숨구멍이었다.
완벽한 허구가 죽고 비참한 진심이 태어나는 순간 인생에서 가장 끔찍하고도 성스러운 성장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