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작가 노트_ <생과부 위자료 청구 소송>을 각색하며

엄인희의 희곡 <생과부 위자료 청구 소송>은 ‘성’이라는 파격적인 소재를 통해 기업과 제도, 노동 사회가 개인의 삶을 어떻게 침식하는가를 드러낸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성은 사적 욕망이 아니라 생산성과 효율 앞에서 소진되는 인간, 기업에 의해 침해당한 개인의 삶을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언어다. 유현정은 침묵을 강요받던 시대에 처음으로 말하기 시작한 인물이며, 재판정은 개인을 다시 침묵시키는 구조로 작동한다.
이번 각색은 1990년대의 질문을 2020년대의 구조 안에서 다시 묻는 작업이다. 겉으로는 사회가 변한 것처럼 보인다. 여성 판사가 등장하고 젠더 감수성도 제도화된 시대에 산다. 그러나 여전히 질문이 남는다.
‘사회는 정말 변했는가, 아니면 책임을 회피하는 방식만 세련되어졌을 뿐인가?’
이에 원작의 ‘성’이라는 포장지를 유지하되, 문제의 핵심이 개인이 아닌 구조임을 더 분명히 드러내고자 했다. 유현정은 개인이 과해서가 아니라 시스템이 감당하지 못하는 질문을 던지기 때문에 불편한 인물이다. 사회는 여전히 노동과 돌봄, 젠더 갈등의 결과를 개인의 선택과 태도로 환원한다.
이 작품의 갈등은 여성과 남성의 대립이 아니라, 말하는 개인과 책임지지 않는 시스템의 문제다. 원작의 구조와 대사는 최대한 유지하며, 시대가 변해도 사회의 태도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드러내고자 했다.
이 각색을 통해 각색한 작가는 관객에게 묻는다.
나는 이 재판에서 누구의 태도로 앉아 있는가?
언제부터 우리는 개인의 삶이 무너진 이유를 개인에게 묻는 데 익숙해졌는가?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왜 삶은 여전히 개인의 책임으로 남는가?
 

줄거리

유현정은 남편의 회사인 일조만 그룹을 상대로 생과부 위자료 청구 소송을 제기한다. 회사가 남편을 지나치게 일하게 만들어 정상적인 부부 생활조차 불가능하게 만들었다는 이유다. 언론은 그녀를 희대의 색녀로 소비하고 법정은 그녀의 성생활을 낱낱이 심문한다. 그러나 유현정이 말하고 싶은 것은 따로 있다. 이 소송은 정말 SEX에 대한 소송일까? 대체 우리는 언제부터 일을 위해 사랑을 포기하게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