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보이첵’을 현대적 제의의 시공간으로 끌어들이다!

제의는 신을 향한 찬양과 기원의 행위인 동시에 인간 스스로의 반성과 고백의 시간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적 의미의 제의가 벌어지는 시간이 될 것이다. 혼돈스럽고 치유불능의 지경에 이른 인간사회의 비극적 현실을 神(?)께 고백하고 반성하는 시간을 갖고자 하는 것이다.
제의는 행위자와 관람자 사이의 공간적 구분이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둘 모두의 시선은 하나가 되어 하늘을 향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살인자! 보이첵은 객석과 무대의 구분이 없는 열린 공간에서 벌이는 한바탕 ‘보이첵 놀이’가 될 것이다. 관객들은 배우들 가까이서 함께 호흡하며, 배우들이 행위 하는 인물들의 정서를 필터 없이 흡수해 일체화하는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연출의도

‘보이첵’은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밑바닥 민중의 현실, 소통이 단절된 인간관계의 부조리, 인간이 지닌 동물적 욕망과 도덕적 관습의 갈등, 문명의 진보에 따른 인간 소외현상, 꿈과 현실의 괴리에서 오는 절망, 더 나아가서는 인간 존재가치에 대한 비판적 담론 등, 인간사회에서 야기되는 다양하고도 근본적인 문제들에 진지한 시선을 던지고 있는 작품이다. 인간이 실존하는 한 시대와 지역을 초월해 늘 제기될 수밖에 없는 문제의식들일 것이다.
어제보다는 내일의 모든 것이 더 빠르고 가볍게 변모해가고, 감각적이고 순간적인 즐거움들이 이 땅에 발 딛고 살아가는 인간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시간의 가증스런 무게감을 잊게 만드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망각하고 외면한다고 해서 ‘보이첵’에 담긴 실존적 문제들이 해소되거나 치유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앙금처럼 농도 짙게 쌓이고 쌓여, 어느 순간 활화산처럼 폭발해 분노의 용암으로 인간사회를 싹 쓸어버릴 지도 모를 일이다.
힘들더라도, 귀찮더라도, 지겹더라도, 누군가는 뒤돌아봐야 할 문제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진실이기 때문에. 이번 ‘보이첵’ 공연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위에 언급한 문제들에 대한 진지한 사유와 담론의 장이 열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줄거리

모두가 돈, 돈 때문입니다.
돈 없는 놈은 도덕이고 뭐고 자식새끼도 그런 식으로 밖에 가질 수가 없는 거죠!
보이첵은 가난하고 천한 신분의 말단 군인이다.
그에게는 사랑하지만 결혼식조차 올릴 수 없었던 마리와 세례를 받지 못해 사생아라 손가락질 받는 자식이 있다.
그럴수록 보이첵은 가족과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돈이라고 믿으며, 마리와 아이를 부양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던진다.
그러나 군대의 월급을 받고, 중대장의 면도를 해주며 일당을 받고, 의사의 실험도구가 되어 완두콩으로 끼니를 연명하며 돈을 모아도… 그의 삶은 늘 가난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게다가 이런 상황들은 시간이 갈수록 그의 몸과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고, 사랑하는 가족과도 멀어지게 하며 그의 목을 조여 온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에게 단하나 남은 희망, 마리마저 주체할 수 없는 욕망으로 외도를 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끝내 보이첵은 사랑하는 마리를 죽이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