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기획 의도

1) 2000년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가오 싱젠의 국내 첫 초연작
소설 <영혼의 산>으로 “보편적 타당성과 날카로운 통찰, 언어적 독창성으로 가득찬 작품을 통해 중국 소설과 드라마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는 극찬을 받으면서 200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가오싱 젠의 작품 [저승]이 국내 초연으로 무대에 올려진다. 인간의 어리석음과 이승은 물론 저승에서도 억압받는 여성의 운명을 통해 개인의 이기심과 인간 세상과 마찬가지로 어리석고 권위적인 저승 세계를 담담하게 때로는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는 이 작품은 문화대혁명과 톈안먼 사건 등 중국 현대사의 굴곡을 헤쳐 오면서 소설과 희곡을 통해 일관되게 개인의 자유와 독립을 옹호하며 사회주의의 규율에 도전해 온 작가의 삶과 철학이 투영되어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2) 민간풍습과 연희에 대한 무대 구현 탐구
<장자>에 나오는 호접몽 이야기의 주인 장주(莊周)가 아내를 희롱하는 이야기를 소재로 한 경극 <관을 부수다> 와 저승을 배경으로 한 경극 <저승으로 찾아가다>를 토대로 구성된 이 작품 [저승] 을 통해 민간풍습과 연희가 어떻게 무대 구현화되었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아울러, 이 무대 구현화 방법에 있어서 중국, 한국의 교집합을 찾고자 한다.


공연 특징

1. 개인과 사회 (집단) 의 갈등
‘사회(집단) 의 폭력성 및 부조리함과 약자로서의 개인’을 말하며, 이는 작품을 통해 정치문제로 혹은 여성 문제로 작품에 투영하고 있다. [저승]에서도 이 점은 마찬가지여서 [저승]은 <장자>에 나오는 호접몽 이야기의 주인공 장주(莊周)가 아내를 희롱하는 이야기를 소재로 인간의 어리석음과 이승은 물론 저승에서도 억압당하는 여성의 운명을 다루고 있다. 또한 이 작품에서는 인간 세상과 마찬가지로 어리석고 권위적인 저승 세계를 싸잡아 비판하고 있음으로써 사회(집단) 의 폭력성 및 부조리함에 대해서 준엄하게 비판하고 있다.

2. 관조를 통한 균형
가오 싱젠의 연극론은 신체와 언어, ‘삼중 연기’ ‘ 중성적 배우’ 등 균형적 시각에 기반한다. 이 균형적 시각은 선종 및 도교 사상과 연계되며 작품 외적 연극론뿐 아니라 작품 내적 주제 의식에도 영향을 미쳐, 자아 참구적인 작품으로 등장하게 된다.

3. 민간 풍습과 연희
가오 싱젠은 1983년 장강 유역 1500Km 를 여행하며 1년간 민간 풍습과 전통연희, 제의 의식등을 접하게 된다. 그리고 연극의 본원적 정신을 찾는 과정으로 서양 연극을 참조하였다. [저승] 또한 앞 단락은 <장자>에 나오는 호접몽 이야기의 주인공 장주(莊周)가 아내를 희롱하는 이야기를 소재로 한 경극 <관을 부수다>와 유사한 내용으로 그리고 뒤 단락은 저승으로 배경으로 한 경극 <저승으로 찾아가다>과 유사한 내용으로, 저승에 간 아내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지만, 이 세상과 마찬가지로 죄악과 권위에 물들어 있는 저승에서도 그녀의 억울함을 풀지 못하고 연옥에 떨어져 고통을 받는 내용을 다룸으로써 구체적 민간 연예가 직접적으로 구현되고 있다.


연출 의도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요지경 이야기.
이 작품은 경계를 넘나든다. 이승과 저승.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의 연기론. 등이 아슬아슬하게 넘나들고 부딪쳐 충돌하고 어긋나 미끄러진다.
사람들은 삶에 지치고 힘들 때마다 현실이 아닌 위로의 다른 세계를 상상해왔다. 그곳은 현실의 고통이 없는 곳이기도 하고, 현실보다 더 지독한 고통이 심신을 괴롭히는 세계이기도 했다. 앞의 세계는 천국, 천상, 무릉도원, 이데아 등으로 불리고, 뒤 세계는 지옥, 저승, 연옥이라고 명명해 왔다. 사람들은 이 상상의 세계를 상징의 세계로 만들기도 하였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 세계를 현실과 일치시켜 삶의 거울로 삼기도 하였다. 이 작품은 바로 이 서로 다른 이름으로 명명된 세계가 서로 분리된 별개의 세계가 아니라, 두 세계가 별반 다르지 않은 경계가 희미해진 하나의 세계. 더 엄밀히 말하자면 그 두 세계의 경계에서 위태한 줄타기를 하며 좌와 우. 상하를 번갈아 보여준다. 무대와 음악은 이러한 주제의식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로 구성될 것이다. 그리고 가오싱젠의 작품을 한국에 소개한다는 입장을 견지하면서, 작가가 추구했던 연극의 정신과 특징을 살려 한국관객에게 친숙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첫째 작품의 주제인 ‘인간의 어리석음과 이승은 물론 저승에서도 억압당하는 여성의 운명’을 현대적 시각으로 전달하고자 한다. 둘째 가오싱젠의 연기론에 대한 연구와 실천행위를 통해 동양 연극의 전통과 현재에 대한 탐구를 진행하고자 한다. 셋째, 민간풍습과 연희에 대한 무대 구현에 있어 중국, 한국의 교집합을 찾고자 하며 이를 통해 아시아를 넘어 세계 보편적인 정서와 무대미학으로 발전시키고자 할 것이다. 빈 무대 위에서 스무 명이 넘는 배우들이 대도구와 연기술을 기반으로 한 채움과 비움을 통해 보다 확장된 세계를 인식시키는 공간으로 선보이고자 한다.

줄거리

도를 닦던 장주가 갑자기 아름다운 아내가 혹 정숙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회의가 들어 산을 내려와 죽었다는 소식과 함께 상여를 보내고서 자신은 초나라 귀공자로 변장하여 아내를 유혹한다. 오래 독수공방하던 아내는 남편의 죽음을 애도하다가 그녀를 위로하는 귀공자에게 마음이 끌린다. 그 귀공자는 갑자기 죽을 병에 걸렸다며 갓 죽은 자의 뇌수를 먹으면 낫는다고 한다. 아내는 산 사람을 살리기 위해 남편의 관을 깨려는데, 살아있는 장주가 관에서 나오며 그녀를 음탕한 여인으로 규정한다. 아내는 믿었던 남편의 황당한 자작극에 통분하면서 들고 있던 도끼로 스스로를 내리친다. 극중의 코러스는 관객의 입장에서 계속 장주의 어리석음을 나무라며 불장난 하다간 자기도 타 죽는다는 경고를 보내지만, 장주는 아랑곳없이 자신의 생각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아내를 벼랑 끝으로 밀어내 죽음으로 몰고 간다. 저승사자를 따라 저승에 간 아내는 여러 경로를 통해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지만, 이 세상과 마찬가지로 죄악과 권위에 물들어 있는 저승에서도 그녀의 억울함을 풀지 못하고 연옥에 떨어져 고통을 받는다. 공정한 재판관도 없고 민간 신앙에서 최고의 권위를 지니는 염라대왕조차 눈도 어둡고 판단력도 없는 늙은이일 뿐이며, 마고와 우레신까지 모두 부패하고 잔혹하며 인정이 없다. 결국 혀를 잘리고 연옥에 떨어진 아내는 온갖 고통을 겪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