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하늘과 땅을 울리는 혼의 소리
1. 사물놀이 탄생 30주년, 원조 드림팀이 다시 뭉쳤다
1978년 대학로 소극장 공간 사랑에서 김덕수, 이광수, 최종실, 김용배(작고) 4인에 의해 사물놀이가 탄생했다. 4명의 남사당패 후예들이 전통과 현대의 접목을 시도한 이 때의 공연은 대단한 실험이자 도전이었다. 관중들은 환호하고 감격하였으며, 일부 관객들은 눈물을 흘렸다. 민속학자 심우성은 장구, 북, 징, 꽹과리 4가지 악기로 구성된 이 공연에 ‘사물(四物)놀이’라 이름 붙였으며, 이후 사물놀이는 전세계에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으로 자리잡는다.
91년까지 전세계 1백 여 개국에서 6백회 이상 공연한 전설적인 기록을 가진 원년멤버 김덕수, 이광수, 최종실은 김용배 탈퇴 이후 사물놀이패에 최초로 합류하여 활동한 남기문과 함께 2008년, 사물놀이 탄생 30주년을 맞이하는 역사적인 기념 공연을 갖는다.
길잡이를 시작으로 삼도설장구가락, 삼도농악가락, 판굿, 명인 개인놀이 등을 선보이게 될 30주년 기념공연은 20세기 한국음악의 새로운 장르를 만들었던 사물놀이가 21세기에 다시 한번 발돋음하는 소중한 자리가 될 것이다.
2. 사물놀이, 한류의 1세대 선두주자
사물놀이는 이미 1980년대부터 세계에서 붐을 일으킨 ‘한류 1세대’라고 할 수 있다.
1982년 미국 달라스에서 개최된 ‘82 세계타악인대회(PASIC)에서 세계 타악계에 사물놀이의 존재를 알리고, 1984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세계 타악연주자들의 축제인 ‘슈퍼커션(SUPERCUSSION)’과 ‘월드 드럼 페스티벌(World Drum Festival)’ 등의 무대에서 사물놀이의 화려한 가락을 선보이면서 세계 음악계를 뒤흔들었다. 1983년부터는 지금 동아시아 지역에서 일고 있는 한류 열풍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인기를 세계적으로 누리게 되면서 LA, 뉴욕, 도쿄, 베를린 등 전세계적으로 사물놀이 캠프가 세워지고 대영백과사전에는 '사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이라는 뜻의 '사물노리안(samulnorian)'이라는 신조어가 등록되기에 이른다.
사물놀이는 지금도 다른 나라의 타악기와의 교류는 물론, 월드 뮤직이나 재즈, 힙합 등 장르를 초월하여 활발히 교류하면서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으며, 타악 퍼포먼스 ‘난타’와 ‘도깨비 스톰’ 등의 원류가 되기도 했다. 또한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컨텐츠 사물놀이는 올림픽 월드컵 등 중요한 행사엔 언제나 빠지지 않고 국민과 함께 하고 있다.
3. 세계가 사랑한 거장들, 두드림과 함께한 감동 인생
김덕수, 이광수, 최종실, 남기문 모두 남사당과 같은 전문연희패 집안에서 태어난 선천적인 예인이었고, 아버지를 비롯한 여러 명인들에게서 어려서부터 음악을 배웠으며, 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이미 데뷔무대를 가진 베테랑들이다. 4~5세 무렵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어깨 위에서 무동으로 남사당판에 입문한 이들은 어려서부터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현장을 익힌 예인이다. 이렇게 선천적인 예인의 핏줄을 타고났으며 어려서 소위 ‘영재교육’을 받은 이들이 사물놀이라는 전무후무한 음악갈래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은 너무나 필연적인 역사적 인연이었다.
이들은 수백번의 공연을 통해 사물놀이를 전세계에 알리며 한국 대표 음악으로 자리잡게 만들었으며, 현재는 후배 양성에 힘쓰고 있다.

줄거리

1부 - 길잡이, 비나리, 삼도설장구가락, 삼도농악가락
2부 - 판굿, 명인 개인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