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기억의 향연, 빛처럼 스며들고, 공기처럼 녹아드는 그 집.
상주국수집


<기획의도>

국립극단의 첫 공동제작 작품 _극단 동과 협업

국립극단이 재단법인 출범 이래 첫 공동제작 공연을 올린다. <비밀경찰> <떼레즈 라캥> <내가 죽어 누워있을 때>등으로 확실한 작품세계를 보여준 극단 동(대표 강량원)과 공동 협업 작업이다. 국립극단은 앞으로도 연극계의 단단한 토양을 다지고, 연출 및 배우들이 작품에 더욱 집중 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마련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민간 극단이 홀로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에 힘을 합쳐 더욱 완성도 높은 작품 개발에 힘을 쏟고자 한다.

극단 동과의 공동 기획, 제작 작품인 <상주국수집>은 바로 그 첫 시작이다.
앞으로도 국립극단은 다양한 성격을 지닌 예술단체와 예술가와의 공동 협업 작품을 통해 연극을 흐름을 주도하고, 진정한 현장성 있는 작품을 만들어 내려 한다.

이 시대, 연극의 역할을 고민한다.

연극 평론가 장성희는 극단 동의 <재현 100년 전展> 공연 당시 이런 평을 한 적이 있다.

“과연 연극의 실재는 어디 있는가? 일상의 시늉.
그 하이퍼리얼리티가 리얼리티를 지배하는 시대, 희곡 텍스트가 담아내는 리얼리티 또한 희박해진 요즘 치열한 자기 대면 속에서 연극의 실재를 찾고자 하는
극단 '동'의 탐구심은 매우 귀한 것임에 틀림없다. ”

2~3년 사이, 극단 동의 연극이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연극의 실존에 관한 질문과
탐색을 멈추지 않는다는 점이다. 극단 동은 오랜 시간동안 자신들의 메소드 구축을 위해 노력해 왔다. 오랜 시간을 통한 공동작업과 창작을 통해 완성된 작품을 선보이며, 예술 창작 작업의 장인적 자세로 임해왔다.

국립극단은 “진정한 연극성”과“이 시대 연극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고 이를 담기 위한 작품을 만들고 있다. <상주국수집>은 국립극단과 극단 동의 연극 만들기의 고민과 방법을 공유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공연특징>

과거의 기억은 현재의 행동을 지배한다.
-20년 전 탈영한 아들이 집으로 오던 날, 오직 하루만 기억하는 어머니

<상주국수집>은 경북 상주의 모녀가 사는 국수집을 배경으로 한다. 길쭉한 면을 뽑고, 말리고, 자르고 포장해서 파는 소규모 국수집. 이곳은 이들 모녀에게 추억과 기억, 그리고 사랑과 상처가 혼재하는 곳이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는 모든 기억을 떠내 보내고 산다. 그녀가 기억하는 것은 오직 20년 전의 단 하루, 군대에서 탈영한 아들이 집에 오길 기다리는 날이다.
이미 자살한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 그녀의 기억은 쓰라리고 잔인한 삶의 사건 속 한복판에 멈춰져 있다. 그리고 어떻게든 어머니의 기억을 되돌리고, 현재를 돌아보게 하고 싶은 딸이 있다. 딸은 과거의 기억과 현재 속에서 삶의 슬픔을 지니고 산다.

<상주 국수집>은 너무 깊은 상처로 인해 치매가 걸려서도 지워버릴 수 없는 기억을 안고 사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다. 역행한 시간을 현재라 믿고 살아가는 어머니와 현재를 살지만 바래지지 않는 과거를 바라보고 사는 딸. 그들의 모습은 왠지 비틀려져 있고, 왜곡되어 있다. 잊혀 지거나, 시간의 흔적 속에 흐려졌으면 좋았을 기억들.
그러나 과거는 현재처럼 살아나 우리 옆에 앉아 다시 그 생명을 얻으려한다.
<상주 국주집>은 과거의 기억이 인간의 현재의 삶을 지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느림의 미학 속, 일필휘지로 그어지는 감정의 소요(騷擾)를 만난다!

<상주 국수집>은 느림의 미학을 보여준다. 짧고 간결한 대화. 공기와도 같은 움직임.
작품은 움직이는 동양화 같다. 굵고 가는 선이 공존하며, 여백의 미를 가진 한 폭의 그림.
그러나 동양화는 중요한 어느 순간, 힘과 역동성을 지닌 일필휘지를 그어야만 완성되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공연 또한 이처럼 느림과 시적 대화를 추구하지만 그 무엇보다 명확한 감정과 힘을 지닌다.
강량원 연출이 직접 대본을 쓴 <상주 국수집>은 말의 소리와 몸의 움직임이 만들어 내는 미묘한 충돌에 집중한다. 직접적이고 속사포와 같이 쏟아지는 이야기에 익숙한 관객은
<상주 국수집>을 통해 이야기 표현의 새로운 관점과 느낌을 만나게 될 것이다.
하나하나 자세히 귀를 기울이고, 들어봐야 하는 작품. 그러나 작고 세밀한 말과 움직임 속에 큰 감동이 있는 작품. 느리기에 아름답고, 리듬감이 살아 있는 연극을 만난다.

“몸말” 그 깊은 의미를 찾아서.
-한편의 시 같은 상주 방언.

극단 동은 이미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를 통해 간도(間島) -함경북도 방언을 사용한바 있다. 이번 공연은 경북 상주 지역 방언을 사용한다. 이를 위해 지역 도청의 도움을 얻어 사투리 지도 및 녹취 본을 받아 더욱 완성도 높은 방언을 구사하고 있다.

강량원 연출이 지역 방언에 깊은 관심을 갖고 집중하는 이유는“몸말”을 사용한다는 개념 때문이다. 몸말은 자신의 정서, 마음, 행동과 일체화된 100% 자신의 언어를 찾기 위한 과정이다. 이는 곧 한국 말, 한국의 정서를 찾기 위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현재 많은 번역극, 완벽하지 못한 한국말의 사용은 곧 우리가 타인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상주 국수집>은 상주 방언을 사용함으로서, 좀 더 살아있는 지역의 정서는 물론, 방언에 대한 고정적인 인식을 벗어나 이것이 연극적 언어로 살아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처음엔 낯선 상주 방언도, 공연의 흐름에 따라 국수결처럼 맛깔스럽게 다가온다.


<창작 의도>

“매순간 현재화 되는 기억들이 배우의 몸으로 되살아나는
풍경을 무대화 하고 싶다”_작, 연출 강량원

정우영의 시 <살구꽃 그림자>를 읽고 ‘49년 전에 베어진 오래된 살구나무’가 화창한 봄날 형형색색의 꽃들 속에 검은 그림자로 어른어른 떠올랐다. 그렇게 지워지지 않고 매순간 현재화되는 기억들이 배우의 몸으로 되살아나는 풍경을 무대화하고 싶었다.

가장 자연스럽지 못한 죽음의 장소를 선택하여 태어나고 소멸하는 것을 생명체 본연의 소유로 돌려주고 싶었다. 덧붙여 작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세상에서 가장 느린 음악이라는 우리의 ‘가곡’의 시 같기도 하고 노래 같기도 한 가락을 리듬으로 삼고 싶기도 했다.

줄거리

“그날, 기억을 한 개씩 한 개씩 지워가는 거라네”
어느 날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병원에서 외박을 받아 나온다. 거의 10개월 째 두문불출해 왔던 어머니였다. 딸은 어머니가 가까운 기억들을 하나씩 몸에서 떠나보내고 기억의 최종 정착지 ? 그것만 떠나가면 이승의 삶을 다하는 가장 쓰라린 기억-을 만나기 위해서 온 것이라는 걸 눈치 챈다.

어머니는 20년 전 군대에서 탈영한 아들을 기다리기 위해서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어머니의 정신을 되돌려 놓으려고 애를 쓰면서 딸도 점차 그 날 그 기억에 사로잡혀간다. 그날 어머니는 아들을 신고했고 딸은 그것을 종용했다. 결국 귀대한 후 아들은 자살했다.

어머니는 아들을 다시 만난다. 진짜 만난 것인지 환상인지 굳이 따질 필요는 없다. 우리의 몸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만나는 자리니까. 드디어 어머니는 함께 하지 못한 아들의 죽음을 함께 함으로써 드디어 아들의 죽음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딸은 홀로 남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