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기획의도
이 시대의 젊은 작가와 연출가가 만난다
이번 <단편소설입체낭독극장>은 김연수, 김애란, 김미월의 작품을 무대에 선보인다. 1970년대 이후 출생한 젊은 한국 작가의 작품을 다룸으로써 이전의 낭독 공연과 차별성을 가지고자 한다. 이들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연출가들 역시 성기웅, 추민주, 김한내가 맡아 젊은 감각과 작품의 완성도 모두를 기대하게 한다. 언어와 시대성에 대한 뛰어난 관찰과 묘사로 주목 받는 성기웅, 뮤지컬 <빨래>를 통해 한국창작 뮤지컬의 성공사례를 보여준 추민주, 2009년 CJ영 페스티벌의 1위 수상 및 2011년 혜화동1번지 5기 동인으로 선정된 김한내 등 이들이 만들어내는 문학작품이 어떻게 눈 앞에 펼쳐질지 기대를 모으게 한다.
문학작품, 무대에서 보고 느끼기
<단편소설입체낭독극장>은 기존의 낭독 공연의 틀에서 벗어나 낭독과 연극이 직접적으로 만날 수 있게끔 한다. 소설 문학이 가지고 있는 문장은 그대로 살리면서 시청각적인 요소를 가져와 소설 문장을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닌 보고, 듣고, 느낄 수 있게 만들고자 한다. 또한, 단편 소설 전체를 각색 없이 낭독함으로써 소설에 대한 소개뿐만이 아닌 관객을 새로운 상상력의 세계로 안내할 것이다.
입체낭독을 통한 문학의 청각화, 시각화 구현
<단편소설입체낭독극장>은 전체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입체낭독’을 통해 문학의 시각화 및 청각화 하는 작업을 선보인다. 이는 문학작품에 대한 신선한 접근을 비롯하여 연극 창작 방법의 다양성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할 시도가 될 것이다.
상상보다 더 큰 상상
기존의 문학 작품들은 재생산 혹은 각색과 가공이라는 이름으로 변형되어 무대에 올려졌었다. 이것은 문학 작품이 가지고 있는 문장을 읽는 재미와 상상력의 자극보다는 무대 위의 현장성에 더욱 집중을 한 작업들이었다. <단편소설입체낭독극장>은 가공 없이 전문을 읽음으로써 문장을 읽는 재미를 놓치지 않음과 동시에 연극성까지 살릴 계획이다. 독자 혹은 관객을 만나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분야의 만남은 문학성과 연극성 둘 다 잃지 않으며, 관객에게는 또 다른 상상의 무대를 만나게 할 것이다.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이하, 농담)>은 배우 두 명이 보면대에 소설을 놓고 낭독하는 방식이지만, 문학성에 공연성을 더해 소설을 눈으로만 읽을 때와는 다른 새로운 발견을 이끌어 내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고자 한다.
<농담>은 1인칭 시점으로 쓰여진 소설이다. 기본적으로는 남자배우가 ‘나’의 역할을 맡아 주된 낭독자가 된다. 하지만 어떤 문장들은 전처인 여자배우가 읽으면서 교차 낭독하게끔 한다. 또한, 여자배우는 본인이 한 말 외에 ‘나’와 전처가 공유하는 기억, 느낌, 감정 등의 문장도 읽으면서 소설 문장의 서브텍스트인 ‘전처’의 목소리를 형상화시킨다. 이것은 한 가지 목소리가 아닌 여러 가지의 목소리로 울림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읽기 방식은 현재와 회상이 동시에 드러나 입체적인 공간을 만나게 할 것이다.
<농담> 원작에서 따라다니는 북촌의 사진을 실제로 찍어 영상으로 관객에게 보여줄 계획이다. 또한, 소설 속 ‘나’의 지도 역시 재현하여 보여줄 것이다. 이것은 관객이 상상으로만 따라다닌 소설 속 ‘나’와 ‘전처’의 행적을 함께 따라다니며 그들과 함께 산책하는 기쁨을 선사할 것이다.
<칼자국>
<칼자국>은 칼국수 집을 하면서 나를 키워온 어머니가 25년 전에 산 칼로 나를 먹이고, 가족을 이끌어 온 이야기이다. 이렇게 어미와 새끼에 관한 마음 짠한 이야기가 무대 위에 펼쳐진다.
<칼자국>의 ‘나’는 어머니를 칼자국 소리와 함께 칼이 만들어낸 소리, 냄새, 맛 등과 함께 기억한다. 이번 <칼자국> 역시 작가가 소설에서 표현한 것처럼 어머니가 남기고 간 온갖 냄새와 소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나’와 함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고자 한다. 도마 위의 칼자국 소리, 바지락 씻는 소리, 배추에 소금 절이는 소리 등 청각적인 이미지와 무대 위의 실재하는 음식들이 만들어낸 후각적 시각적 이미지가 무대 위에 입체적으로 펼쳐진다.
<칼자국>은 ‘나’가 어미로부터 무언가를 열심히 받아먹던 시절인 전반부와 ‘나’가 어미의 장례식장을 찾아가는 후반부로 나뉜다. 전반부와 후반부는 각각 나이든 배우와 젊은 배우가 나눠서 읽을 예정이다. 각각 상대방이 낭독을 할 때는 옆에서 음식들과 함께 리듬감 있는 공연을 만들 계획이다.
<서울동굴가이드>
<서울 동굴 가이드>는 내러티브의 극적인 구사가 아닌 연쇄적 이미지의 담담한 나열을 통해 전개된다. ‘인공 동굴’과 ‘고시원’, 그리고 꽉 막혀버린 ‘소화기관’ 의 이미지를 중첩시킴으로써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집단적 유토피아를 실현할 가능성을 좌절 당한 세대의 개인 낙원에서의 탈출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시각적이지만 다분히 개념적으로 엮여있는 이미지들을 무대 위에서 극단적으로 표현한다. 예를 들어, 무대 위엔 소장(小腸)을 연상시키는, 그러나 입구와 출구가 맞붙은 비닐하우스가 지어져 있고(혹은 극이 전개되는 동안 지어지고), 고시촌의 살림살이들이 그 안을 거칠게 채우면서 이 공간을 동굴로 보이게 한다. 이러한 설정은 고시원과 동굴의 개념적 연관성을 시각적 동일성으로 표현함으로써, 작품이 던지는 질문에 감각적으로 더욱 강력한 근거를 제공할 것이다.
또한, 극이 전개되면서 고시원을 드나드는 사람들과 그들의 세간이 쌓여가고 포르노비디오에서 나오는 음성과 영상, 쏟아져서 흩어지는 수면제들이 이 공간을 채우면서 동굴은 점점 막혀 소화불량의 상태가 되고 외부의 공기가 차단된 이 동굴 안에서 배우들의 입김이 비닐막에 어리며 호흡곤란이 시각화되어 나타난다. 좁고 출구가 없는 비닐하우스가 사람과 물건, 소리와 영상의 밀도가 자아내는 에너지로 가득 찼을 때, ‘탈출해야 할까?’라는 질문은 소설에서보다 더 큰 절실함으로 관객에게 다가갈 것이다.
이 시대의 젊은 작가와 연출가가 만난다
이번 <단편소설입체낭독극장>은 김연수, 김애란, 김미월의 작품을 무대에 선보인다. 1970년대 이후 출생한 젊은 한국 작가의 작품을 다룸으로써 이전의 낭독 공연과 차별성을 가지고자 한다. 이들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연출가들 역시 성기웅, 추민주, 김한내가 맡아 젊은 감각과 작품의 완성도 모두를 기대하게 한다. 언어와 시대성에 대한 뛰어난 관찰과 묘사로 주목 받는 성기웅, 뮤지컬 <빨래>를 통해 한국창작 뮤지컬의 성공사례를 보여준 추민주, 2009년 CJ영 페스티벌의 1위 수상 및 2011년 혜화동1번지 5기 동인으로 선정된 김한내 등 이들이 만들어내는 문학작품이 어떻게 눈 앞에 펼쳐질지 기대를 모으게 한다.
문학작품, 무대에서 보고 느끼기
<단편소설입체낭독극장>은 기존의 낭독 공연의 틀에서 벗어나 낭독과 연극이 직접적으로 만날 수 있게끔 한다. 소설 문학이 가지고 있는 문장은 그대로 살리면서 시청각적인 요소를 가져와 소설 문장을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닌 보고, 듣고, 느낄 수 있게 만들고자 한다. 또한, 단편 소설 전체를 각색 없이 낭독함으로써 소설에 대한 소개뿐만이 아닌 관객을 새로운 상상력의 세계로 안내할 것이다.
입체낭독을 통한 문학의 청각화, 시각화 구현
<단편소설입체낭독극장>은 전체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입체낭독’을 통해 문학의 시각화 및 청각화 하는 작업을 선보인다. 이는 문학작품에 대한 신선한 접근을 비롯하여 연극 창작 방법의 다양성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할 시도가 될 것이다.
상상보다 더 큰 상상
기존의 문학 작품들은 재생산 혹은 각색과 가공이라는 이름으로 변형되어 무대에 올려졌었다. 이것은 문학 작품이 가지고 있는 문장을 읽는 재미와 상상력의 자극보다는 무대 위의 현장성에 더욱 집중을 한 작업들이었다. <단편소설입체낭독극장>은 가공 없이 전문을 읽음으로써 문장을 읽는 재미를 놓치지 않음과 동시에 연극성까지 살릴 계획이다. 독자 혹은 관객을 만나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분야의 만남은 문학성과 연극성 둘 다 잃지 않으며, 관객에게는 또 다른 상상의 무대를 만나게 할 것이다.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이하, 농담)>은 배우 두 명이 보면대에 소설을 놓고 낭독하는 방식이지만, 문학성에 공연성을 더해 소설을 눈으로만 읽을 때와는 다른 새로운 발견을 이끌어 내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고자 한다.
<농담>은 1인칭 시점으로 쓰여진 소설이다. 기본적으로는 남자배우가 ‘나’의 역할을 맡아 주된 낭독자가 된다. 하지만 어떤 문장들은 전처인 여자배우가 읽으면서 교차 낭독하게끔 한다. 또한, 여자배우는 본인이 한 말 외에 ‘나’와 전처가 공유하는 기억, 느낌, 감정 등의 문장도 읽으면서 소설 문장의 서브텍스트인 ‘전처’의 목소리를 형상화시킨다. 이것은 한 가지 목소리가 아닌 여러 가지의 목소리로 울림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읽기 방식은 현재와 회상이 동시에 드러나 입체적인 공간을 만나게 할 것이다.
<농담> 원작에서 따라다니는 북촌의 사진을 실제로 찍어 영상으로 관객에게 보여줄 계획이다. 또한, 소설 속 ‘나’의 지도 역시 재현하여 보여줄 것이다. 이것은 관객이 상상으로만 따라다닌 소설 속 ‘나’와 ‘전처’의 행적을 함께 따라다니며 그들과 함께 산책하는 기쁨을 선사할 것이다.
<칼자국>
<칼자국>은 칼국수 집을 하면서 나를 키워온 어머니가 25년 전에 산 칼로 나를 먹이고, 가족을 이끌어 온 이야기이다. 이렇게 어미와 새끼에 관한 마음 짠한 이야기가 무대 위에 펼쳐진다.
<칼자국>의 ‘나’는 어머니를 칼자국 소리와 함께 칼이 만들어낸 소리, 냄새, 맛 등과 함께 기억한다. 이번 <칼자국> 역시 작가가 소설에서 표현한 것처럼 어머니가 남기고 간 온갖 냄새와 소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나’와 함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고자 한다. 도마 위의 칼자국 소리, 바지락 씻는 소리, 배추에 소금 절이는 소리 등 청각적인 이미지와 무대 위의 실재하는 음식들이 만들어낸 후각적 시각적 이미지가 무대 위에 입체적으로 펼쳐진다.
<칼자국>은 ‘나’가 어미로부터 무언가를 열심히 받아먹던 시절인 전반부와 ‘나’가 어미의 장례식장을 찾아가는 후반부로 나뉜다. 전반부와 후반부는 각각 나이든 배우와 젊은 배우가 나눠서 읽을 예정이다. 각각 상대방이 낭독을 할 때는 옆에서 음식들과 함께 리듬감 있는 공연을 만들 계획이다.
<서울동굴가이드>
<서울 동굴 가이드>는 내러티브의 극적인 구사가 아닌 연쇄적 이미지의 담담한 나열을 통해 전개된다. ‘인공 동굴’과 ‘고시원’, 그리고 꽉 막혀버린 ‘소화기관’ 의 이미지를 중첩시킴으로써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집단적 유토피아를 실현할 가능성을 좌절 당한 세대의 개인 낙원에서의 탈출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시각적이지만 다분히 개념적으로 엮여있는 이미지들을 무대 위에서 극단적으로 표현한다. 예를 들어, 무대 위엔 소장(小腸)을 연상시키는, 그러나 입구와 출구가 맞붙은 비닐하우스가 지어져 있고(혹은 극이 전개되는 동안 지어지고), 고시촌의 살림살이들이 그 안을 거칠게 채우면서 이 공간을 동굴로 보이게 한다. 이러한 설정은 고시원과 동굴의 개념적 연관성을 시각적 동일성으로 표현함으로써, 작품이 던지는 질문에 감각적으로 더욱 강력한 근거를 제공할 것이다.
또한, 극이 전개되면서 고시원을 드나드는 사람들과 그들의 세간이 쌓여가고 포르노비디오에서 나오는 음성과 영상, 쏟아져서 흩어지는 수면제들이 이 공간을 채우면서 동굴은 점점 막혀 소화불량의 상태가 되고 외부의 공기가 차단된 이 동굴 안에서 배우들의 입김이 비닐막에 어리며 호흡곤란이 시각화되어 나타난다. 좁고 출구가 없는 비닐하우스가 사람과 물건, 소리와 영상의 밀도가 자아내는 에너지로 가득 찼을 때, ‘탈출해야 할까?’라는 질문은 소설에서보다 더 큰 절실함으로 관객에게 다가갈 것이다.
줄거리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
‘나’는 6월 중순의 어느 날, 지하철에서 1년 전에 이혼한 전처를 우연히 만나 함께 북촌(삼청동, 가회동, 재동 든) 인근을 거닐게 된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지만, 그 이야기는 서로 조금씩 어긋나거나 겉돌거나 한다. 그런 끝에 전처는 그 동네 어딘가에서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얼마 후, ‘나’는 인근의 지도를 한 장 사서 그날 전처와 함께 걸었던 길의 궤적을 따라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오래 전 그 동네에 살았던 연암 박지원의 이야기 등 갖가지 상념에 사로잡힌다. 지도에 그날의 행로를 선으로 그어놓고 보니, 그날 전처를 만났던 일도, 그날 전처가 ‘나’를 끌고 다녔던 그 코스도 ‘우연’에 불과한 일이면서도 또 이미 과거의 ‘필연’으로 굳어져버린 일이 되었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칼자국>
<칼자국>의 ‘나’는 어머니를 칼자국으로 기억한다. 그 칼이 만들어내는 소리, 맛, 냄새들로 어머니를 기억한다. 어머니는 성격 좋은 아버지와 결혼을 하고서는 가족의 생계를 이끌기 위해 읍내 시장에 칼국수 가게를 연다. ‘나’는 어릴 적부터 학교를 파하고 집에 돌아오면 손에 늘 칼을 들고 있는 어머니를 도와주어야 했다. 그리하여 ‘나’는 칼보다 더 강한 어머니의 생활력을 늘 보고 자라게 되었다. 읍내 분위기가 그랬듯이 아버지는 바람도 잘 피웠고, 어머니는 점점 더 강한 여자가 되어갔다. ‘나’는 자라서 서울에 있는 대학을 들어가고,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였다. 그리고 어머니의 부음 소식을 듣게 되고, 남편과 함께 내려간다. 임신과 피곤 때문에 아무 것도 못 먹던 ‘나’는 장례식장을 나와 혼자 집에 가서 어머니의 마지막 체취를 느끼던 중, 어머니가 평생 쓰던 칼로 맛있게 사과를 깎아 먹는다. <칼자국>은 그렇게 어미와 자식에 대한 이야기이다.
<서울동굴가이드>
‘나’는 고시원에서 산다. 고시원은 비좁은 공간이자 ‘도떼기 시장‘이며, 어두운 복도는 ’미개방의 동굴‘과 같다. 또한, ’나‘는 인공 동굴인 ’서울 동굴 탐험관‘에서 탐사복을 입고 조잡한 가짜 동굴 속으로 초등학생들을 안내하는 일을 하고 있다. 바닷가에서 죽어있는 여자의 시체를 본 것과, 대학 시절 동굴 탐사 도중에 길을 잃은 공포를 경험한 기억 때문에 ‘나’는 늘 소화불량과 호흡곤란에 시달리고 길 건너의 ’신호등 약국‘에서 늘 소화제를 사 먹는다. 나에게 소화제를 파는 약사 보조는 옆방에 살며 밤마다 신음소리를 들려준다. 나는 우연히 그 신음소리가 실제 섹스가 아닌, ’누군가를 닮은 남자‘가 나오는 포르노비디오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얼마 후 그녀는 수면제를 훔쳤다는 이유로 약국에서 쫓겨나고 고시원에서도 사라진다. 그 즈음 나의 직장인 동굴 탐험관이 위층의 전원풍 레스토랑에서 새어 나와 떨어지는 물 때문에 폐업 위기에 놓이게 된다.
‘나’는 6월 중순의 어느 날, 지하철에서 1년 전에 이혼한 전처를 우연히 만나 함께 북촌(삼청동, 가회동, 재동 든) 인근을 거닐게 된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지만, 그 이야기는 서로 조금씩 어긋나거나 겉돌거나 한다. 그런 끝에 전처는 그 동네 어딘가에서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얼마 후, ‘나’는 인근의 지도를 한 장 사서 그날 전처와 함께 걸었던 길의 궤적을 따라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오래 전 그 동네에 살았던 연암 박지원의 이야기 등 갖가지 상념에 사로잡힌다. 지도에 그날의 행로를 선으로 그어놓고 보니, 그날 전처를 만났던 일도, 그날 전처가 ‘나’를 끌고 다녔던 그 코스도 ‘우연’에 불과한 일이면서도 또 이미 과거의 ‘필연’으로 굳어져버린 일이 되었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칼자국>
<칼자국>의 ‘나’는 어머니를 칼자국으로 기억한다. 그 칼이 만들어내는 소리, 맛, 냄새들로 어머니를 기억한다. 어머니는 성격 좋은 아버지와 결혼을 하고서는 가족의 생계를 이끌기 위해 읍내 시장에 칼국수 가게를 연다. ‘나’는 어릴 적부터 학교를 파하고 집에 돌아오면 손에 늘 칼을 들고 있는 어머니를 도와주어야 했다. 그리하여 ‘나’는 칼보다 더 강한 어머니의 생활력을 늘 보고 자라게 되었다. 읍내 분위기가 그랬듯이 아버지는 바람도 잘 피웠고, 어머니는 점점 더 강한 여자가 되어갔다. ‘나’는 자라서 서울에 있는 대학을 들어가고,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였다. 그리고 어머니의 부음 소식을 듣게 되고, 남편과 함께 내려간다. 임신과 피곤 때문에 아무 것도 못 먹던 ‘나’는 장례식장을 나와 혼자 집에 가서 어머니의 마지막 체취를 느끼던 중, 어머니가 평생 쓰던 칼로 맛있게 사과를 깎아 먹는다. <칼자국>은 그렇게 어미와 자식에 대한 이야기이다.
<서울동굴가이드>
‘나’는 고시원에서 산다. 고시원은 비좁은 공간이자 ‘도떼기 시장‘이며, 어두운 복도는 ’미개방의 동굴‘과 같다. 또한, ’나‘는 인공 동굴인 ’서울 동굴 탐험관‘에서 탐사복을 입고 조잡한 가짜 동굴 속으로 초등학생들을 안내하는 일을 하고 있다. 바닷가에서 죽어있는 여자의 시체를 본 것과, 대학 시절 동굴 탐사 도중에 길을 잃은 공포를 경험한 기억 때문에 ‘나’는 늘 소화불량과 호흡곤란에 시달리고 길 건너의 ’신호등 약국‘에서 늘 소화제를 사 먹는다. 나에게 소화제를 파는 약사 보조는 옆방에 살며 밤마다 신음소리를 들려준다. 나는 우연히 그 신음소리가 실제 섹스가 아닌, ’누군가를 닮은 남자‘가 나오는 포르노비디오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얼마 후 그녀는 수면제를 훔쳤다는 이유로 약국에서 쫓겨나고 고시원에서도 사라진다. 그 즈음 나의 직장인 동굴 탐험관이 위층의 전원풍 레스토랑에서 새어 나와 떨어지는 물 때문에 폐업 위기에 놓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