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바닥소리』 전설의 고향보다 더 잔혹한 현실을
판타지 잔혹 소리극으로 판소리하다! ”

잔혹 소리극 [간밤 이야기]는 전래민담 [해님달님]을 바탕으로 한 판소리극이다. 언제나 안개가 끼어있는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화재사건을 시작으로 간밤의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되며, 그것을 재구성하는 인물은 날씨를 관장하는 천상의 신들로서 저마다의 관점에 따라 이야기를 재연(再演)한다.

가난하지만 부지런하게 일하며 다복하게 살아가는 한 가정에 미싱이 나타나 가족들을 위협한다. 가족들은 서로 다른 때, 다른 장소에서 미싱과 마주하며 나름대로 미싱에 맞서려 애쓴다. 그리고 신들은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지만 누구도 이들의 상황에 개입하려들지 않는다. 결국 가족은 모두 미싱에게 희생당하고 신들은 뒤늦게 눈물을 흘리며 하늘에 뜬 해와 달을 닦아낸다.

[간밤이야기]는 짜임새 있는 극음악을 판소리 어법으로 구현함으로써 형식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70여 분간 끊임없이 노래와 연주가 이어지게 함으로써 관객들은 이야기의 흐름과 음악의 흐름이 서로 어우러지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전래민담을 철저하게 재해석하는 데서 오는 원작과의 긴장은 기존의 민담을 더욱 풍성하게 수용하고, 민담 속에 있는 사람들의 원형적인 욕망을 현대의 맥락에서 발견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줄거리

어느날 아침, 청소부 복장을 한 세 명의 남녀가 간밤에 벌어진 화재사건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사건의 경위에 따라 상부에서 이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각자 담당구역에서 목격한 일을 재연하며 사건을 재구성하기 시작한다.

배경은 2009년 어느 날의 대한민국 지방 소도시. 마을에는 항상 안개가 끼어 있다. 어머니는 매일 새벽 안개 속으로 들어가 열두 고개를 넘어 재봉공장으로 출근을 한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밤이면 고갯길에 이상한 짐승이 나타난다는 소문이 돈다. 짐승은 네 발 달린 동물처럼도 보이고 말쑥한 사람처럼도 보이는데 묘한 행동으로 지나가는 사람의 정신을 쏙 빼놓는다고 한다.

고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고갯길에 들어서자 미싱이 등장한다. 어머니는 어서 집으로 돌아가 아이들에게 맛난 저녁밥을 지어주고 싶지만 미싱은 어머니에게 작업량을 채우지 않으면 고개를 지나가지 못하게 하겠다고 한다. 어머니와 미싱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열두 고개를 하나씩 넘어간다. 미싱은 점점 무리한 요구를 하고 어머니는 마침내 그것을 거부하는데, 그럼에도 미싱은 어머니가 고개를 넘어가도록 내버려 둔다.

같은 시간, 아버지는 졸음을 쫓으려 ‘조강지차’ 트럭과 노래를 불러가며 운전을 한다. 아내와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기도 하고 유명 연예인의 결혼 소식을 부러워하며 자신의 신세에 혀를 차기도 하며 유쾌하게 운전을 하는데, 느닷없이 도로 위로 안개가 몰려온다. 시야를 가린 아버지의 트럭은 결국 앞차를 들이받고 만다.

남편의 사고소식을 듣고 혼자서 오누이의 생계를 책임져야하는 어머니는 다시 미싱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모든 일이 자기 뜻대로 되자 미싱은 기분이 좋아 춤을 추고 노래를 한다. 마지막 한 고개를 남기고 어머니는 무리한 노동량을 이기지 못하고 숨을 거둔다. 미싱은 엄마와 똑같이 분장을 한 뒤 아이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간다.

미싱은 아이들에게도 똑같이 일을 시킨다. 아이들은 미싱이 엄마가 아니란 걸 알아차리지만 때는 늦었다. 미싱은 말 잘 듣고 일 잘 배우는 아이들에게 일을 시키며 점점 들뜨기 시작해서 자신이 무리하게 일하고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마침내 미싱의 모터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하며 오누이의 집은 불길에 휩싸인다. 다락으로 도망친 오누이는 하늘을 보며 동아줄을 내려달라고 기도를 하는데….

이 대목에서 청소부들 중 한 명이 그 상황에 개입했음이 밝혀진다. 어젯밤 청소부는 아이들의 절박한 외침에 자신이 갖고 있던 밧줄을 내려줬다. 오누이는 분명히 그 밧줄을 붙들었고 미싱 역시 밧줄에 매달린다. 하지만 누구도 오누이가 무사하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고, 미싱의 행방 역시 분명치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