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우리는 무엇을 욕망하고 있습니까?
행복의 조건이란 무엇입니까?
사회적 맥락과 동시대성을 추구하며, 새로운 무대언어를 창조하는 젊은 공연예술집단 크리에이티브 VaQi(연출 이경성)는 이 시대의 징후들을 포착한다.
그 징후란 각종 TV, 신문 등에서 오고 내리는 각종 뉴스와 사건 그리고 광고의 이면들 속에서 보이는 우리시대의 욕망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몇 년 전 서울의 한 지역에서 보험금을 노리고 방화사건을 벌여 가족을 살해했던 한 청소년의 이야기에서부터 출발한다.
크리에이티브 바키의 "강남의 역사-우리들의 스펙 태클 대서사시"는 이 시대의 초상에 대한 질문이다.
우리는 어디에 살고 있으며, 우리는 무엇을 욕망하고 있는가?
이런 욕망의 끝에는 ‘남’으로 상정되는 그들만의 서사가 아닌 바로 ‘나’에 대한 ‘우리’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크리에이티브VaQi는 지난 4개월간 방화사건에 대한 추적, 사건 발생지역 리서치와 연구를 바탕으로 ‘공간의 서사’를 끄집어내었다.
극단적인 선택으로 보였던 ‘방화사건’ 이면에 담긴 진실한 삶의 모습 그리고 지역 주민들과의 인터뷰와 대담을 실행하면서, 세상의 가치와 욕망이 말하는 ‘가난과 부유’함으로의 잣대가 아닌 크리에이티브 VaQi만의 시각으로 공간 읽기와 행복의 조건들에 대한 이야기를 끄집어 내었다.
그것은 욕망을 부추기는 사회 시스템 속에서 그것을 읽어내고 실천하려는 주체적인 시선이다.
이를 위해 〈움직이는 평상, 지금 만나러 갑니다〉,〈강남음유시인〉,〈강북-강남간 지하철 퍼포먼스〉 등을 수행적으로 실행하면서 작품을 창작해 나가고 있다.
작품에서는 크리에이티브 VaQi가 강북 지역을 리서치하고 인터뷰하며 만났던 지역의 주민들이 직접 출연해(회당 1회/총 5~7인)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관객들에게 들여 줄 예정이다.
기획의도
과거 연극이 가장 활발하게 사회적으로 참여했던 시기에 극장은 ‘불온한’공간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모이게’하는 공간이었다.
그럼으로써 극장이, 또 연극이 이 사회에서의 어떤 식으로든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의 극장은 위의 두 가지 기능을 조화롭게 수행하지 못한다.
연극이, 그리고 극장이 오늘 여기에서 수행할 수 있는, 또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크리에이티브 VaQi는 약 4개월간의 리서치와 워크샵, 스터디 등을 진부하지만 가장 본질적인 질문에 대해 고민해 왔다.
2010년 면목동에서 한 중학생이 집에 불을 질러 가족들을 살해했다. 이유는 보험금을 타 강남에서 ‘뽀대나게’ 살고 싶어서였다.
그는 가족 따위는 필요 없었다고 말했다. 미디어는 어느 패륜아의 끔찍한 범죄 정도로 이 사건을 다뤘고 사람들은 “아휴 끔찍해~”의 반응을 보이곤 말았다.
그렇게 이 사건은 잊혀졌다.
우리는 이러한 일들이 발생하고 아무런 반향 없이 잊혀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또 언론인 홍세화의 말을 빌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줍니다.
‘여러분, 부자되세요~!’라는 카피문구가 공공영역에 버젓이 걸려도 그 누구하나 의를 제기하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다.
사회적 맥락을 짚고 리서치를 통해 공연 언어를 만들어내는 크리에이티브 VaQi의 작가들은 앞서 언급한 사건을 하나의 ‘징후’라고 포착하였다.
그리고 과연 그 사건을 한 개인의 도덕적 패륜으로만 몰아갈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던졌다.
물증은 없고 심증만이 존재한다.
각자 자신들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들의 지형도 안 어딘가에 그 사건도 위치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들만 스펙타클로 존재 할 뿐, 실제의 것에는 점점 더 다가가기 어려워진다.
우리는 약 4개월 간 스터디를 동반한 도시 속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들 들어보는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우리가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안에 있다면 그분들의 말 어딘가에 사건의 본질도 닿아있다고 생각했다.
작가에 의해 지어진 말은 없다.
우리네 삶의 실제 ‘말’들이 여기의 공간에서 흩날려지는 모양새들을 바라보고 재배치하였다. 그것은 때로는 누군가의 인터뷰로, 한 밤의 라디오 방송으로 또는 혼잣말로, 대화로 표현되어 진다.
어떤 말은 전달되고 어떤 말은 왜곡되며 어떤 말은 그저 사라진다. 그리고 그 말들이 체 채우지 못하는 빈틈들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게 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빽빽한 그물망을 그려가지만 채 긋지 못하는 선들이 생기고 그 사이의 빈틈이 형성 된다.
배우들은 무대 위에서 누군가의 말을 관객에게 전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것은 연극이다.
행복의 조건이란 무엇입니까?
사회적 맥락과 동시대성을 추구하며, 새로운 무대언어를 창조하는 젊은 공연예술집단 크리에이티브 VaQi(연출 이경성)는 이 시대의 징후들을 포착한다.
그 징후란 각종 TV, 신문 등에서 오고 내리는 각종 뉴스와 사건 그리고 광고의 이면들 속에서 보이는 우리시대의 욕망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몇 년 전 서울의 한 지역에서 보험금을 노리고 방화사건을 벌여 가족을 살해했던 한 청소년의 이야기에서부터 출발한다.
크리에이티브 바키의 "강남의 역사-우리들의 스펙 태클 대서사시"는 이 시대의 초상에 대한 질문이다.
우리는 어디에 살고 있으며, 우리는 무엇을 욕망하고 있는가?
이런 욕망의 끝에는 ‘남’으로 상정되는 그들만의 서사가 아닌 바로 ‘나’에 대한 ‘우리’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크리에이티브VaQi는 지난 4개월간 방화사건에 대한 추적, 사건 발생지역 리서치와 연구를 바탕으로 ‘공간의 서사’를 끄집어내었다.
극단적인 선택으로 보였던 ‘방화사건’ 이면에 담긴 진실한 삶의 모습 그리고 지역 주민들과의 인터뷰와 대담을 실행하면서, 세상의 가치와 욕망이 말하는 ‘가난과 부유’함으로의 잣대가 아닌 크리에이티브 VaQi만의 시각으로 공간 읽기와 행복의 조건들에 대한 이야기를 끄집어 내었다.
그것은 욕망을 부추기는 사회 시스템 속에서 그것을 읽어내고 실천하려는 주체적인 시선이다.
이를 위해 〈움직이는 평상, 지금 만나러 갑니다〉,〈강남음유시인〉,〈강북-강남간 지하철 퍼포먼스〉 등을 수행적으로 실행하면서 작품을 창작해 나가고 있다.
작품에서는 크리에이티브 VaQi가 강북 지역을 리서치하고 인터뷰하며 만났던 지역의 주민들이 직접 출연해(회당 1회/총 5~7인)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관객들에게 들여 줄 예정이다.
기획의도
과거 연극이 가장 활발하게 사회적으로 참여했던 시기에 극장은 ‘불온한’공간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모이게’하는 공간이었다.
그럼으로써 극장이, 또 연극이 이 사회에서의 어떤 식으로든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의 극장은 위의 두 가지 기능을 조화롭게 수행하지 못한다.
연극이, 그리고 극장이 오늘 여기에서 수행할 수 있는, 또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크리에이티브 VaQi는 약 4개월간의 리서치와 워크샵, 스터디 등을 진부하지만 가장 본질적인 질문에 대해 고민해 왔다.
2010년 면목동에서 한 중학생이 집에 불을 질러 가족들을 살해했다. 이유는 보험금을 타 강남에서 ‘뽀대나게’ 살고 싶어서였다.
그는 가족 따위는 필요 없었다고 말했다. 미디어는 어느 패륜아의 끔찍한 범죄 정도로 이 사건을 다뤘고 사람들은 “아휴 끔찍해~”의 반응을 보이곤 말았다.
그렇게 이 사건은 잊혀졌다.
우리는 이러한 일들이 발생하고 아무런 반향 없이 잊혀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또 언론인 홍세화의 말을 빌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줍니다.
‘여러분, 부자되세요~!’라는 카피문구가 공공영역에 버젓이 걸려도 그 누구하나 의를 제기하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다.
사회적 맥락을 짚고 리서치를 통해 공연 언어를 만들어내는 크리에이티브 VaQi의 작가들은 앞서 언급한 사건을 하나의 ‘징후’라고 포착하였다.
그리고 과연 그 사건을 한 개인의 도덕적 패륜으로만 몰아갈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던졌다.
물증은 없고 심증만이 존재한다.
각자 자신들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들의 지형도 안 어딘가에 그 사건도 위치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들만 스펙타클로 존재 할 뿐, 실제의 것에는 점점 더 다가가기 어려워진다.
우리는 약 4개월 간 스터디를 동반한 도시 속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들 들어보는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우리가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안에 있다면 그분들의 말 어딘가에 사건의 본질도 닿아있다고 생각했다.
작가에 의해 지어진 말은 없다.
우리네 삶의 실제 ‘말’들이 여기의 공간에서 흩날려지는 모양새들을 바라보고 재배치하였다. 그것은 때로는 누군가의 인터뷰로, 한 밤의 라디오 방송으로 또는 혼잣말로, 대화로 표현되어 진다.
어떤 말은 전달되고 어떤 말은 왜곡되며 어떤 말은 그저 사라진다. 그리고 그 말들이 체 채우지 못하는 빈틈들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게 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빽빽한 그물망을 그려가지만 채 긋지 못하는 선들이 생기고 그 사이의 빈틈이 형성 된다.
배우들은 무대 위에서 누군가의 말을 관객에게 전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것은 연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