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본 윌리엄스 - 탈리스 주제에 의한 환상곡
레이프 본 윌리엄스(Ralph Vaughan Williams, 1872-1958)는 이름 표기를 주의해야 할 음악가이다. 영어 이름 `Ralph`는 `랄프` 또는 `레이프`라고 읽는데, 본 윌리엄스의 둘째 아내 우르술라가 쓴 전기에 따르면 그의 이름은 `레이프`[Rayf]로 읽어야 한다.
<탈리스 주제에 의한 환상곡>은 16세기 영국 작곡가 토머스 탈리스(Thomas Tallis)가 쓴 찬송가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교회선법을 따르는 정선율(cantus firmus)과 16세기식 대위법, 아멘 종지(plagal cadence) 등으로 나타나는 고음악 양식에 영화 <반지의 제왕>에 배경음악으로 써도 어울릴 듯한 영국풍 선율이 더해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이 모든 것이 현대적인 음악 어법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본 윌리엄스 음악 양식을 이룬다. 화성과 조성 구조는 후기 낭만주의의 반음계적 어법과 통하며, 불균등하고 불규칙한 악구(phrase) 구조는 영국 음악 전통에서 유래했으면서도 20세기 초 음악사적 흐름과도 맞닿는다.
그런가 하면 작곡가가 교회 오르간 연주자였던 만큼 16~17세기 영국 오르간 소리를 흉내 낸 대목이 작품에 나타나기도 한다. 이 작품은 현악 사중주단과 현악 오케스트라, 그리고 현악 연주자 2-2-2-2-1명으로 이루어진 제2 오케스트라로 편성되어 있고, 음악학자 에드윈 에반스(Edwin Evans)를 좇자면 이것은 영국 오르간을 이루는 서로 다른 건반들(Solo, Great, Choir)에 각각 해당한다. 본 윌리엄스는 제2 오케스트라를 제1 오케스트라와 되도록 떨어트려 놓으라고 지시했는데, 이것이 오르간 음향 효과를 얼마만큼 재현할지는 연주회장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라벨 - 피아노 협주곡 G장조
라벨 피아노 협주곡 G장조는 라벨이 1929~31년 사이에 쓴 곡으로 작곡가의 후기 음악 양식이 잘 드러나 있으며, 밝고 즐거운 선율과 재즈 리듬, 화려한 음색, 바스크 지방의 민속음악적 요소 등이 특징적이다. 바스크는 스페인과 프랑스 사이에 걸쳐 있는 지방이며, 라벨은 바스크계 어머니에게서 음악적인 영감을 받은 듯하다. 음악학자 이내선은 이 작품을 두고 `그 음악적인 성격으로 보아서 바스크 광시곡[rhapsody]이라 해도 무방하다`라고 논평했다.
라벨은 관현악법의 대가로 화려한 색채를 음악에 담아내는 능력이 탁월한 작곡가였다. 이 곡에서는 프랑스 음악 양식과 스페인 음악 양식이 어우러진 음 소재가 화려한 관현악법을 만나 더욱 빛나며, 채찍과 우드블록(Wood Block), 탐탐, 트라이앵글 등 다양한 타악기가 쓰이기도 했다. 이 곡은 또한 화려한 색채가 돋보이는 만큼 악기 하나하나에 까다로운 기교를 요구한다.
라벨이 이 작품에 재즈 리듬을 사용한 일은 재즈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는 그때까지만 해도 그리 흔치 않은 일이었으며, 이것을 두고 라벨은 “재즈는 현대 작곡가에게 매우 풍부하고 생생한 영감의 원천이며 재즈에 영향 받은 미국 작곡가들이 너무도 적다는 사실이 놀랍다”라고도 했다.
이번 연주회에서는 한국에서 영재 교육을 착실히 밟고 현재 독일에서 활동 중인 젊은 피아니스트 장성 씨가 협연을 맡는다. 지휘자 구자범이 이끄는 젊은 오케스트라 경기필이 어떤 해석으로 보여주게 될지 기대 된다.
라벨 피아노 협주곡 G장조는 음악 만화·드라마로 국내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던 『노다메 칸타빌레』 (니노미야 토모코 원작, TV 드라마와 애니메이션 등으로도 알려짐) 전체 이야기에서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곡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브람스 ― 교향곡 1번 c단조 작품 68
브람스 교향곡 1번은 양식적·미학적으로 베토벤 교향곡을 계승한 작품이다. 당시에 이름난 지휘자였던 한스 폰 뷜로우는 이 작품을 두고 `베토벤 교향곡 10번`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이 말은 베토벤의 아류라는 뜻이 아니라 베토벤의 진정한 계승자라는 극찬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의 피날레 주요 주제는 베토벤 교향곡 9번 피날레 주요 주제와 닮은꼴이며, 도입부는 베토벤 교향곡 5번 제1 주제와 닮은꼴이다.
베토벤은 고전주의를 완성하고 낭만주의 시대를 열어젖힌 작곡가이며, 그 뒤로 베토벤은 후대 작곡가에게 넘을 수 없는 벽이 되었다. 따라서 베토벤을 창조적으로 계승하여 베토벤의 `후계자`라는 호칭을 얻는 일이 당시 작곡가에게 매우 중요한 과제였다. 브람스―한슬리크 진영과 바그너 진영이 파벌 싸움을 벌인 일은 널리 알려졌으며, 오늘날까지도 이와 관련한 논쟁이 일어나기도 한다.
베토벤은 고전주의를 넘어서 낭만주의 시대를 열었지만, 한편으로는 낭만주의적 선율과는 맞지 않는 모티프 변형 기법을 유산으로 남겼다. `베토벤 딜레마`를 해결하고자 작곡가마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슈베르트는 베토벤을 닮은 도입부 선율을 발전부에서 앞세워 펼쳐 나가며 베토벤을 흉내 냈다. 멘델스존은 달콤한 가락을 대위법으로 겹쳐 베토벤을 이으려 했다. 리스트와 프랑크는 모티프 원형을 중심에 놓고 주변 요소를 네트워크로 묶어 바꿔나가는 기법을 개발했고, 바그너는 리스트를 흉내 냈다. 슈만은 짧게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아이디어로 `사투`를 벌였다.
브람스는 `편법`에 매달리지 않고 정공법을 썼다. 베토벤의 모티프 변형 기법을 극한으로 발전시킨 것이 그것이며, 쇤베르크는 이것을 `발전적 변주`(developing variation)라 이름 붙였다. `모범답안`을 내놓은 브람스는 작곡 기법만 따진다면 누구나 인정할 만한 베토벤의 후계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