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기획 의도
1) 핵물리학자 이휘소? 소립자물리학자 이휘소? 벤자민 휘소 리!!
<휘소, 그 휘소성>은 이휘소 박사의 삶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다. 소설로 인하여 대중에게 알려진 그의 이미지는 핵무기 개발을 통해 조국의 강대국화에 기여하려 했던 ‘핵물리학자 이휘소’ 인 반면 그의 가족들과 주변인들의 증언에 따른 그의 이미지는 연구에 전념하며 자유와 평화를 추구했던 ‘소립자물리학자 이휘소’ 이다. 두 가지로 나뉘는 그의 이미지, 하지만 이휘소 박사의 묘지명은 ‘핵물리학자 이휘소’ 도 아니고 ‘소립자물리학자 이휘소’ 도 아닌 ‘벤자민 휘소 리’ 이다. 그에게 조국은 무엇이고 과학은 무엇이었을까? ‘벤자민 휘소 리’ 는 어디에 존재했을까??
2) 고양된 명예와 상실된 신념 사이에 갈등, 명예란 무엇인가??
이휘소 박사가 대중에게 알려지게 된 것은 하나의 소설에서 시작되었다. 소설 속에서 민족과 조국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 핵무기 개발에 매진하려했던 한 비운의 과학자는 이후 국민들에게 민족적 영웅이자 역사 속 안타까운 인물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그의 가족들과 주변인은 그러한 내용이 고인이 된 이휘소 박사의 신념이 왜곡되어 명예가 훼손되었다는 주장으로 소설에 대한 소송을 제기한다. 하지만 법원의 판결은 다음과 같았다.
“피고들의 출판물로 말미암아 고 이휘소씨에 대한 평판과 명성이 오히려 높아진 것으로 판단하여 원고가 주장하는 명예훼손은 기각하는 바이다.”
과연 진정한 명예란 무엇인가??
연출 의도
“성질 보존의 법칙” 을 주장합니다 !!
모든 물질에는 그 물질이 가지는 물질만의 성질이 있습니다. 그것은 고유한 것이라 그 어떤 것도 그것을 변화시키거나 수정할 수 없습니다. 만일 인위적으로 그 물질에 힘을 가하면 그것은 파손되거나 파괴되어 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그 물질은 그 자체로 인정받을 수가 없습니다. 성질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가지는 개인의 성질을 잃어버리면 더 이상 그 인간은 존재의미가 없습니다.
한 인물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인물을 바라보며 여러 해석들을 내어 놓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닌 자신의 관점에서 바라본 타인의 해석입니다. 그러한 해석이 여러 개 더해지자 그 인물은 더 이상 인간처럼 보여지지 않습니다. 그 인물은 살아있다면 변론이라도 하여 자신의 성질을 되찾겠지만 이미 고인의 되어버린 지금 성질을 잃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입자가 되어 바라볼 수 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물질은 그 성질을 가져야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고 지켜줄 수 있는 우리의 모습을 기대해 봅니다.
작품설명
<휘소, 그 휘소성>은 이휘소 박사의 삶을 재조명한 작품이다. 세계적인 연구소 ‘페르미 연구소’에 초대 물리연구부장을 역임한 이휘소 박사는 세계 물리학의 거장으로 평가받았다. 노벨물리학상 수상이 가장 유력했던 사람 중 한명이던 이휘소 박사는 43세라는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숨지고 만다. 당시 물리학 거장의 죽음은 그 시기가 한국 및 미국, 그리고 세계의 정세상 가장 중요한 시기와 맞물리며 많은 추측을 낳았고 그러한 추측을 엮어 이후 소설화 되기에 이른다. 소설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위대한 과학자는 화려한 영웅으로 재탄생했다. 이에 유가족과 주변인들은 원치 않았던 영웅화에 거부의사를 밝혔고 영웅이라고 생각하는 소설가와 과학자로 인정받기를 원했던 가족들과의 법적 분쟁으로까지 이어졌다.
이 작품은 소설이 출판되어 베스트셀러가 되고 유가족 및 지인이 소설가를 상대로 한 법적 소송이 있기 전에 어느 하루를 보여주고 있다. 소설에 분노한 이휘소 박사의 제자와 그러한 그를 맞이하는 작가의 만남. 그 자리에서 드러나는 각자의 주장 속에 이휘소 박사는 누구의 편에 있을 것인가? 그곳에 이휘소 박사가 있는 것일까?
1) 핵물리학자 이휘소? 소립자물리학자 이휘소? 벤자민 휘소 리!!
<휘소, 그 휘소성>은 이휘소 박사의 삶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다. 소설로 인하여 대중에게 알려진 그의 이미지는 핵무기 개발을 통해 조국의 강대국화에 기여하려 했던 ‘핵물리학자 이휘소’ 인 반면 그의 가족들과 주변인들의 증언에 따른 그의 이미지는 연구에 전념하며 자유와 평화를 추구했던 ‘소립자물리학자 이휘소’ 이다. 두 가지로 나뉘는 그의 이미지, 하지만 이휘소 박사의 묘지명은 ‘핵물리학자 이휘소’ 도 아니고 ‘소립자물리학자 이휘소’ 도 아닌 ‘벤자민 휘소 리’ 이다. 그에게 조국은 무엇이고 과학은 무엇이었을까? ‘벤자민 휘소 리’ 는 어디에 존재했을까??
2) 고양된 명예와 상실된 신념 사이에 갈등, 명예란 무엇인가??
이휘소 박사가 대중에게 알려지게 된 것은 하나의 소설에서 시작되었다. 소설 속에서 민족과 조국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 핵무기 개발에 매진하려했던 한 비운의 과학자는 이후 국민들에게 민족적 영웅이자 역사 속 안타까운 인물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그의 가족들과 주변인은 그러한 내용이 고인이 된 이휘소 박사의 신념이 왜곡되어 명예가 훼손되었다는 주장으로 소설에 대한 소송을 제기한다. 하지만 법원의 판결은 다음과 같았다.
“피고들의 출판물로 말미암아 고 이휘소씨에 대한 평판과 명성이 오히려 높아진 것으로 판단하여 원고가 주장하는 명예훼손은 기각하는 바이다.”
과연 진정한 명예란 무엇인가??
연출 의도
“성질 보존의 법칙” 을 주장합니다 !!
모든 물질에는 그 물질이 가지는 물질만의 성질이 있습니다. 그것은 고유한 것이라 그 어떤 것도 그것을 변화시키거나 수정할 수 없습니다. 만일 인위적으로 그 물질에 힘을 가하면 그것은 파손되거나 파괴되어 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그 물질은 그 자체로 인정받을 수가 없습니다. 성질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가지는 개인의 성질을 잃어버리면 더 이상 그 인간은 존재의미가 없습니다.
한 인물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인물을 바라보며 여러 해석들을 내어 놓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닌 자신의 관점에서 바라본 타인의 해석입니다. 그러한 해석이 여러 개 더해지자 그 인물은 더 이상 인간처럼 보여지지 않습니다. 그 인물은 살아있다면 변론이라도 하여 자신의 성질을 되찾겠지만 이미 고인의 되어버린 지금 성질을 잃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입자가 되어 바라볼 수 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물질은 그 성질을 가져야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고 지켜줄 수 있는 우리의 모습을 기대해 봅니다.
작품설명
<휘소, 그 휘소성>은 이휘소 박사의 삶을 재조명한 작품이다. 세계적인 연구소 ‘페르미 연구소’에 초대 물리연구부장을 역임한 이휘소 박사는 세계 물리학의 거장으로 평가받았다. 노벨물리학상 수상이 가장 유력했던 사람 중 한명이던 이휘소 박사는 43세라는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숨지고 만다. 당시 물리학 거장의 죽음은 그 시기가 한국 및 미국, 그리고 세계의 정세상 가장 중요한 시기와 맞물리며 많은 추측을 낳았고 그러한 추측을 엮어 이후 소설화 되기에 이른다. 소설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위대한 과학자는 화려한 영웅으로 재탄생했다. 이에 유가족과 주변인들은 원치 않았던 영웅화에 거부의사를 밝혔고 영웅이라고 생각하는 소설가와 과학자로 인정받기를 원했던 가족들과의 법적 분쟁으로까지 이어졌다.
이 작품은 소설이 출판되어 베스트셀러가 되고 유가족 및 지인이 소설가를 상대로 한 법적 소송이 있기 전에 어느 하루를 보여주고 있다. 소설에 분노한 이휘소 박사의 제자와 그러한 그를 맞이하는 작가의 만남. 그 자리에서 드러나는 각자의 주장 속에 이휘소 박사는 누구의 편에 있을 것인가? 그곳에 이휘소 박사가 있는 것일까?
줄거리
휘소 박사를 다룬 소설이 베스트셀러로 등극하여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는 문혁기 작가의 집에 한 손님이 등장한다. 그는 이휘소 박사의 제자인 최성현 교수. 그의 방문 목적은 소설에 나타난 이휘소 박사의 왜곡된 모습을 바로잡아 자신이 봐왔던 이휘소 박사의 모습으로 되돌려 달라는 것이다.
두 사람은 각자가 생각하는 이휘소 박사의 모습을 그려내기도 하고 설명하기도 한다. 과학적인 설전부터 정치에 관한 설전, 그리고 세상의 진실과 오해가지 모든 것을 거론하며 서로를 설득하려 하지만 진실의 검증이라는 과학자와 허구의 표현이라는 소설가인 두 사람의 다른 직업적 특징처럼 둘의 사고는 명확히 다르기에 쉽지가 않다.
두 사람의 논쟁 속에 존재하는 이휘소 박사는 그런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자신에 대한 고찰을 하기 시작하고 자신의 과학적 이론을 통해 존재를 설명하고자 한다.
두 사람은 각자가 생각하는 이휘소 박사의 모습을 그려내기도 하고 설명하기도 한다. 과학적인 설전부터 정치에 관한 설전, 그리고 세상의 진실과 오해가지 모든 것을 거론하며 서로를 설득하려 하지만 진실의 검증이라는 과학자와 허구의 표현이라는 소설가인 두 사람의 다른 직업적 특징처럼 둘의 사고는 명확히 다르기에 쉽지가 않다.
두 사람의 논쟁 속에 존재하는 이휘소 박사는 그런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자신에 대한 고찰을 하기 시작하고 자신의 과학적 이론을 통해 존재를 설명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