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KBS교향악단 제596회 정기연주회
겨울을 그리는 시벨리우스
최근 유럽의 음악계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음악가로서
폭넓게 인정받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이자벨 파우스트
유럽 음악계를 이끌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중 한사람인 이자벨 파우스트는 섬세함과 비르투오시티 그리고 음악에의 열정으로 청중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바이올리니스트 중 한사람으로서 시벨리우스의 유일한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합니다.
시벨리우스의 유일한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
이 작품은 독주 바이올린이 표현하는 현란함보다는 솔로와 교향악단이 함께 어우러져 자아내는 신비로운 환상의 세계가 매력적인 곡으로서 늦가을의 삭막함을 북유럽의 거장 시벨리우스의 매혹적인 바이올린 선율로 채워드립니다.

줄거리

슈만 만프레드 서곡 작품115

R. A. Schumann "Manfred Overture, Op.115


슈만은 낭만주의자답게 꿈과 현실이 내면에서 충돌하며 거기서 나오는 상상력이 그를 자극하였다. 그의 많은 작품들은 낭만주의 특유의 문학적 상상력과 음악이 결합한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 그도 분명한 표제음악 지지자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음악의 고전적 가치에 대해서도 애정의 끈을 놓지 않았다. 바흐나 모차르트에게서 성취된 순음악적 자산들을 무시하는 것도 참을 수 없었다. 표제음악에서는 지나치게 음악을 문학의 시녀로 만들 우려가 있었다. 이런 갈등의 해소를 위해 고민하던 슈만이었지만 낭만주의의 선구자들을 향한 그의 애정은 변함이 없었다. 바이런이나 하이네와 같은 시인이자 자신들의 이념을 위해 행동하던 낭만주의자들을 동경하였다. 그의 <만프레드> 서곡은 바이런에 바치는 슈만의 애정인 셈이다.

<만프레드>는 바이런의 장대한 극시(드라마를 위한 시)이다. 길을 찾고 구원을 얻기 위해 방황하다 죄와 악행을 저지르며 나락으로 떨어지는 비극적 인물 만프레드의 편력기이다. 슈만은 방대한 이 시를 서곡으로 만들어낸다. 슈만의 아버지는 작은 책방을 운영하는 일종의 책벌레적인 인물이었으며 바이런의 작품을 번역하기도 했다. 이런 환경 속에서 바이런에 흠뻑 빠져있던 슈만은 이 파우스트적인 문제아 만프레드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1849년 완성된 이 서곡은 슈만의 대표적인 연주회용 서곡이면서 가장 슈만적인 작품의 하나로 사랑받고 있다. 구원을 위한 방황, 타락, 그리고 절망과 파멸의 도식에 의한 비극적 낭만주의자의 행적을 음악화한 것으로 슈만의 후기 양식이 잘 드러나 있다. 비극성에 맞춘 듯, 현의 주도적인 아득한 울림은 때때로 가세하는 관과 팀파니의 타격으로 강렬함과 심각성을 짙게 한다. 동시대 바그너 오페라의 강렬하고 호쾌한 맛을 주는 서곡과 비교해보면 관악기 사용을 절제하면서 보다 섬세한 표현에 치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승리하는 영웅보다는 방황하는 젊음에 더 공감하던 슈만이었으니...(연주시간 약12분)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 작품47

J. Sibelius Violin Concerto in d minor, op.47 (연주시간 약30분)


핀란드의 국민 작곡가라는 타이틀 때문에 시벨리우스의 작곡가로서의 실체는 자칫 놓치기 쉽다. 그는 교향곡 작곡가로서 아마 말러 이후의 낭만적 서법의 교향곡의 맥을 이어나가려 했다. 물론 20세기 이후 새로운 음악이나 모더니즘의 위세 때문에 그것이 완전한 빛을 발하기는 어려우며, 그에 대해 비판적 시각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시벨리우스의 어릴 적 꿈은 바이올리니스트였다. 바이올린 공부를 열성적으로 했는데, 이점에서 현악기에 능했던 드보르작과 같다고 할 수 있다.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들이 많았던 시대로는 이채로운 존재이다.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당연히 훌륭한 작품으로 주목받을만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독주악기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 풍부한 작곡가가 썼으니만큼 연주기술적인 측면이나 음악적인 측면에서 모두 주목할 만한 것이다. 그런 만큼 멘델스존, 브람스, 차이코프스키의 협주곡과 함께 낭만 시대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제1악장 관현악에 의한 제시 없이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처럼 바로 독주 바이올린의 독주 선율이 제1주제로 등장한다. 아련함과 내면의 슬픔을 간직한 듯한 주제 선율은 점차 바이올린의 빠른 움직임에 의해 격렬해진다. 제2주제 역시 독주 바이올린이 강렬하면서도 흐느끼듯 호소한다. 독주 바이올린의 기교적 난이도는 선배 작곡가들의 그것을 능가하며 바이올린의 주도적 성격이 더욱 두드러진다.

제2악장 목관의 짧은 도입에 의해 역시 독주 바이올린이 느린 주제 선율을 연주하는데, 숨이 길게 서서히 상승하는데 중간부의 관현악에 의한 강렬한 합주후의 독주 선율은 더욱 처연한 느낌을 준다.

제3악장 피날레 악장답게 빠르게 종횡무진 질주하는 독주 바이올린의 운동감이 음악적 주춧돌이다. 관현악이 가세하면서 긴장도를 높여 나가고 다시 독주로 돌아오는 론도적 움직임에서 <핀란디아>나 교향곡들에서와는 또 다른 시벨리우스의 세련된 음악적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연주시간 약30분)



프로코피에프 교향곡 제5번 B플랫장조 작품100 (연주시간 약 47분)

S. Prokofiev Symphony no.5 in B-flat major, op.100


프로코피에프는 독특한 작곡가다. 그는 20세기 초, 중엽 러시아 작곡가의 지형도에서 스트라반스키, 쇼스타코비치와 함께 삼두마차를 이루고 있다. 스트라빈스키는 서구의 극단적 모더니즘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 러시아를 떠났고 쇼스타코비치는 완전한 소비에트 리얼리즘 작곡가였다. 프로코피에프는 양쪽을 왔다갔다한 작곡가였다. 물론 소련에서의 활동이 많은 비중을 차지했지만 젊은 시절부터 그의 행적은 주로 파리와 뉴욕을 동경하고 그곳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40대 중반 나이에야 러시아로 돌아간다. 이것은 조국에서의 창작활동의 경향을 알고 있던 그가 택한 자발적인 귀향이었다. 이점에서 그는 모더니즘과 신고전주의 사이를 오가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안착한 작곡가였다. 소비에트 체제에서 곡절이야 있었지만 그는 비교적 체제의 예술적 요구와 자신의 음악적 성향을 잘 합치시켜 많은 곡들을 생산(양산)했다. 많은 장르에 걸쳐 쓴 그의 창작력에 놀랄 정도이다.

프로코피에프의 교향곡 제5번은 그의 대표작으로 그에게 최고의 영광을 가져다준 작품이다. 1944년 여름 치열했던 대독항전중 씌어진 작품으로 쇼스타코비치의 전쟁 교향곡들과 함께 소비에트 음악의 충실한 결실이라 할만하다. 그 스스로도 이 교향곡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였는데, 음악적 기법이나 재료의 처리면에서 매우 공들인 작품이면서 무려 16년만에 다시 쓴 교향곡이었기 때문이다. 한걸음 더나아가 그는 이 작품을 인간 정신의 위대함을 담은 교향곡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로써는 당과 인민의 예술적 요구, 즉 위기에 처한 조국의 현실 과 난관을 극복하는데 도움을 주라는 요구와 자신의 음악적 기법을 숙성시켜 발휘하려는 혼신의 노력 속에서 나온 작품이다. 1945년 1월 13일 승리를 목전에 둔 희망의 시점에서 모스크바에서 초연되어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그에게 두 번째의 스탈린 상을 안겨다주었다. 그러나 이런 영광의 순간은 오래지속되지 못한다. 그는 고혈압과 심장 발작, 협심증 때문에 심각한 건강상의 위기를 맞이하게 되고 심한 고통을 계속 겪게 된다. 말하자면 이 작품을 쓰면서 생긴 과로와 심적 부담, 스트레스가 그의 건강을 해친 것이다. 이후에도 그는 많은 작품을 썼지만 점차 힘이 고갈되어갔다는 점에서 이 교향곡은 그의 최전성기를 증언하는 중요한 작품이다.


제1악장 안단테. 목관으로 느리게 차분하게 시작하지만 어딘지 불안에 휩싸인, 폭풍전의 고요를 연상케한다. 교향곡의 첫악장을 안단테로 설정하여 시작한 것은 전쟁을 앞둔 시기의 정황과 분위기를 먼저 그리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평화로운 러시아인들의 삶이 전쟁의 비극 속으로 들어감을 그리기 위해. 점차 성부가 두터워지고 음향이 풍성해지면서 긴장의 파고도 높아간다. 다른 프로코피에프 곡들에서는 쉽게 들을 수 없는 선율과 울림이 주목할만하다. 슬라브적 음울함과 황량한듯하면서도 스산한 느낌이 함께한다.


제2악장 알레그로 마르카토. 음들을 분명하게 연주하라는 지시어 마르카토에 부합하듯 각이진 음들이 예리하게 부각되고 저성부의 일정한 추동 리듬과 담김음(싱코페이션) 리듬으로 줄기차게 나아간다. 현의 스타카토 반주위에서 등장하는 클라리넷의 도입 주제의 출현기법은 참신한 음향으로 주목을 끈다. 중간에는 휴식감을 주는 느린 악구도 잠시 등장하지만 악장 끝부분의 격렬한 군화의 발자국을 연상케하는 대목은 프로코피에프의 탁월한 긴장 고조 수법을 느끼게해준다. 본격적인 전쟁 국면의 돌입과 힘든 전황을 그린 악장으로 상상할 수 있다.


제3악장 아다지오. 현의 긴장어린 선율 속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전쟁의 참화에 대한 참담함과 무수한 희생자들에 대한 슬픔어린 절규이다. 어떤 음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그 비극적인 감정은 점차 관악이 가세하면서 더욱 격렬해진다. 표제는 없지만 곡이 나온 정황상 전쟁을 증언하며, 그 무고하게 희생된 이들에 대한 레퀴엠이다.


제4악장 알레그로 지오코소. 악장 서두는 3악장 분위기를 잠시 이어받는듯하지만 이내 급변하여 프로코피에프 특유의 추동적인 활기찬 베이스의 일정한 타격 리듬 위에서 날카로운 목관과 현의 주제들이 등장한다. 후반으로 갈수록 분위기가 밝게 고조되며 어떤 승리에의 예감과 같은 화색이 돈다. 지오코소(giocoso), 즉 "기쁨에 겨워"라는 지시어에서 연상할 수 있듯 독일과의 전황에서 초반에 밀리며 막대한 희생자를 냈던 공방에서 승리하기 시작하던 그 기쁨과 환희가 표출되고 있다. 격렬한 음향과 폭발적인 힘을 내는데 어느 작곡가보다 능했던 프로코피에프 솜씨를 들을수 있다. (연주시간 약 47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