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유쾌 발랄 상큼 울컥한 폭격 코미디
게르니까- 우리 쫌 사랑하게 냅둬!

2011년 신작 <게르니까>는 어떤 작품인가요?
- 네, 이 작품은 폭력 앞에 참을 수 없이 가벼워지는 인간의 존재라는 철학적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제의 장엄함에 비해 이 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너무도 소박하고 낙천적이어서 한없이 가볍게 느껴집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사랑을 잃지 않는 주인공들을 통해, 참을 수 없는 인간 존재의 가벼움을 숭고함으로 이끌어가는 유쾌한 비극입니다.

실제로 일어났던 이야기
1937년 4월 26일, 스페인에 있는 게르니까라는 마을에 폭격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1930년대 후반. 스페인은 내전으로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독일 나치군은 스페인 반란군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새로 개발한 폭탄의 성능을 실험하기 위해 민간인 마을이었던 스페인 북부 게르니까 마을에 공중 폭격을 가했습니다. 폭격은 세 시간 동안 계속되었고, 5만 여 발의 폭탄이 마을에 떨어졌습니다. 1천 명 이상의 민간인이 숨졌고, 대부분의 건물들이 폭격을 맞아 흙먼지와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유쾌하고 울컥하게 사랑하는 노부부의 이야기
“아픔을 잊어버리게 웃기는 얘기 해줄까?”
“당신이? 웃기지 말아요.”
“잿더미 속에 파묻혀 화장실 안에 갇힌 여자의 얘기가 어떻소?”
전쟁 중에 가까스로 살아남은 늙은 부부, 황슈와 리라. 어느 날 리라가 화장실에 갔다가 폭격으로 인해 돌무더기에 깔려 갇히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화장실에서 책을 읽다 잿더미에 파묻힌 리라, 그리고 폭탄맞은 머리로 그녀의 곁을 지키는 황슈. 그는 리라를 꺼내주려고 하지만 리라가 움직일 때마다 돌더미들이 떨어지고, 폭격은 계속됩니다. 하지만 폭력이 불러오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너무나 유쾌하고 낙천적인 이 부부는, 끝까지 유쾌한 농담을 주고 받으며 서로의 사랑을 놓지 않습니다.

작품에 대한 이야기
<게르니까>는 스페인 출신이며 프랑스 연극계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극작가 훼르난도 아라발의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혼돈의 역사 속에서 인간의 의미를 끌어내려는 피묻은 목소리이며 저항의 몸부림이고 분노의 불길이기도 합니다. 사회에 존재하는 모순과 부조리, 의외성이 불러오는 삶의 복잡한 현상들은 인간을 비극적 코믹상태로 몰아 넣습니다. <게르니까>는 순수와 잔혹, 분노와 무력이 뒤엉킨 거대한 공황 속 작은 인간의 모습을 코믹하고 유쾌하게 포착해낸 작품입니다.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거대한 폭력을 응시하게 됩니다. 소수 권력자들의 탐욕과 호기심으로 인해 만들어진 이 폭력 앞에 수많은 사람들은 고유의 존재가치를 상실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권력자들이 구상해 낸 이상적인 세계를 위한 실험도구로 전락하며, 그들이 만들고자 하는 신세계의 구성요소, 혹은 그 세계를 만들어낼 도구로서 존재하게 됩니다. 그들이 높은 빌딩을 지을 때 수많은 사람들은 회반죽이 되어 빌딩의 어마어마한 높이를 지탱해야 하고, 그들이 다시 빌딩을 부숴버리면 사람들은 흙먼지가 되어 대기 속으로 사라집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인간적인 감성이 존재하지 않길 바랍니다. 우리가 사랑하고 분노하고 꿈을 꿀 수 있다면, 그들이 원하는 세계를 그들 마음대로 만들거나 부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 속에는 수많은 황슈와 리라가 존재합니다. 비록 물리적인 힘이나 무기는 없지만, 끝까지 사랑하고 사유하고 꿈을 꾸기에 이들의 죽음은 숭고한 승리로 그려집니다. 이들은 비록 빌딩의 회반죽이 되더라도 웃고 싸우고 사랑하고 희망하기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며 마지막을 함께하는 황슈와 리라의 사랑. 이들의 끈질긴 낙천성에서 위대한 힘이 느껴집니다. 이들의 사랑은 숭고합니다.

작품을 통해 하고픈 이야기
나는 이 작품을 온 몸으로 그리는 서사시라고 말하고 싶다. 수많은 황슈와 리라들의 움직임은 지친 영혼이 만들어내는 저항의 이미지가 될 것이며 그들의 합창은 죽어간 모든 영혼들을 위한 진혼곡이 될 것이다. 합창단의 절규와도 같은 합창과 코러스들의 격렬한 춤과 움직임을 통해 이미지를 구축하고 그 가운데 황슈와 리라의 삶의 드라마가 관통하는 한 편의 서사시를 쓰고자 한다. 이 세상의 수많은 폭력에 변변히 항거조차 하지 못하는 현실 속의 우리는 슬픈 시인이며 낙천적인 바보다. 이 작품 속에서 우리는 황슈와 리라라는 인물들을 통해 죽음 앞에서도 끝까지 사랑을 지켜가는 낙천적인 바보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우리의 고된 삶을 이어가는 힘은 망각과 사랑이다. 내 안에 상실된 사랑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것이 있어서 나는 여전히 사랑을 상실시킨 이 세상에 분노하는 지도 모르겠다.
권력자들의 호기심은 채워지지가 않는 것 같다. 그들은 자신들의 힘을 끊임없이 실험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더 강력해지기 위해 노력한다. 폭탄을 터트려 몇 명까지 죽일 수 있는지, 어디까지 파괴할 수 있는지를 실험한다. 전쟁이 아닌 평화 시에도 권력자들의 욕심은 우리의 생존력을 실험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고 서로를 존중하지 않길 바라지만, 우리는 말한다. “우리의 목숨을 빼앗을 수는 있지만 우리를 사랑하지 않게는 할 수 없다.”

2011년 신작 <게르니까> 어떤 형식으로 표현되나요?
- 네. 이 작품은 오페라의 음악성과 신화적 장엄함을 수용한 음악극적 요소와 캐릭터 및 상황에 따른 독특한 움직임, 절규에 가까운 소리, 오브제가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복합 피지컬 연극> 입니다.
회백색 먼지로 뒤덮인 무너진 도시의 잔해가, 고대 그리스의 거대한 신전을 연상케 합니다. 무너진 돌 틈 사이에 횟가루를 뒤집어쓴 작은 인간들이 꿈틀댑니다. 눈이 내리 듯 끊임없이 떨어져 내리는 횟가루에 땀과 눈물로 반죽된 작은 황슈와 리라들은 서로를 향해 절규하듯, 또는 기원하듯 사랑을 외치고 분노를 노래하고 공황의 춤을 춥니다. 폭력은 규칙적인 폭음을 동반한 음악과 시각적 이미지로 상징화 되고, 수많은 황슈와 리라들은 현실과 환상을 오가며 때로는 코러스로써, 때로는 주인공으로써 고단한 삶의 무대를 지킵니다.
이 작품의 무대는 무중력 상태의 공간입니다. 불안과 위태로움, 황폐한 공격성으로 꽉 막힌 공간은 삶의 터전이 무너져 생기는 갑작스러운 공백, 즉 공황의 이미지를 나타냅니다. 이 공간에서 거리 즉 한 지점과 또 다른 지점 사이의 거리는 현실적인 단위로 계산되지 않습니다. 두 걸음이면 다가갈 수 있는 거리를 배우들은 스무 걸음에야 도달합니다. 때로는 영원히 다가설 수 없는 거리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배우들은 부상당해 몸이 뒤틀린 다리가 많은 벌레들처럼 몸을 잔뜩 긴장한 채 빠른 속도로 팔다리를 휘저으며 걷고 달립니다. 이 무중력의 공간 속에서 그 움직임은 독특한 속도감과 몸짓으로 변형됩니다.
이 공간에서 소리는 시간과 공간을 창조해내는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배우들은 소리가 공간과 접목하거나 부딪히거나 공간을 뛰어넘거나 때로는 사라져버리는 느낌을 섬세하게 포착하고 충분히 표현해 내야 합니다. 이 작품은 오페라의 시적이며 신화적인 장엄함을 수용한 음악극적 요소와 캐릭터 및 상황에 따른 독특한 움직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 인간 감성이 치환된 절규에 가까운 소리들, 오브제가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피지컬적 요소를 접목시킨 새로운 장르의 무대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