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기획의도>
2007년 에딘버러가 극찬한 Enda Walsh의, < The Walworth Farce >
2011년 서울에서 재탄생 한다.
<굴레방다리의 소극>의 원작인 는 현재 아일랜드에서 혁신적이며 스릴 넘치는 희곡작가로 평가 받고 있는 Enda Walsh의 작품으로 아일랜드 극단 Druid에 의해 2006년 초연된 작품이다. 2007년 8월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가하여 많은 관객들에게 경이로움을 선사하며 ‘First Award''''를 수상하였다. 사다리움직임연구소에 의해 2009년 한국에서 선보인 <굴레방다리의 소극>은 2011년 다시 한 번 관객과 만나고자 준비 중이다.
21세기가 원하는 동시대성 공연
런던의 Walworth가 서울의 굴레방 다리 밑의 한 아파트로 옮겨온다. 고도로 발전하고 문명화된 21세기의 대도시에서 경제적, 문화적으로 소외 당한 밑바닥 삶을 서울을 배경으로 재조명한다. <굴레방다리의 소극>은 지금 이 시대의 이야기를 풀어내어 관객과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동시대인으로서의 사고와 가치관을 교류하고, 예술적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한다.
고립되어 살고 있는 현대인의 진실 찾기
미디어와 이데올로기에 지배당하는 현대인은 오히려 자신의 의지와 사고로부터 고립되어 타인의 삶을 살고 있는 지도 모른다. <굴레방다리의 소극>은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가족사를 연극으로 끝없이 재연하는 구조이다. 섬처럼 고립된 공간에 갇혀 있는 이들은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지만, 이러한 삶의 형태밖에 알지 못하기에 자유를 누리지도 못하게 된다. <굴레방다리의 소극>은 서로서로 고립되어 살고 있는 지금의 현대인들의 모습을 반추할 수 있는 공연이 될 것이다.
연극 속의 연극, 최고의 연기력
계속해서 극중극을 선보이는 <굴레방다리의 소극>은 남자에서 여자로, 어른에서 아이로, 혼자서 2명 이상의 대화 장면을 연기하는 등 고도의 연기력을 필요로 하는 공연이다. 코미디이면서 참혹하고, 침묵하다가 거대한 충돌을 몰고 오는 무대 위의 희열을 사다리움직임연구소의 최고의 배우들이 유감없이 보여줄 것이다. 그 동안 비주얼 씨어터로 많은 작품을 선보여 왔던 사다리움직임연구소가, 현대인의 삶을 날카롭게 지적하며 진실한 삶을 복원하는 과정을 웃고 싶어도 웃을 수 없는 역설적인 블랙 코미디로 무대에 구현할 것이다.
<연출의도>
삶은 때론 연극보다 더 연극적이다!
미디어와 이데올로기의 자극적인 폭력으로 무감각해져 얼굴을 숨기고 타인의 삶의 공간을 조각 내는 우리들 - 가벼운 소극의 연기자처럼 리얼타임의 극중극을 만들어 스스로를 위안하는 비굴한 현대인의 삶 - ‘섬처럼 고립된 현실’ 속에서 우리의 삶은 연극 속의 삶보다 얼마나 부조리한가
<굴레방다리의 소극>은 원작를 21세기 현재 한국에서 일어난 이야기로 각색한 것이다. 아일랜드의 콜크시에서 살았던 한 가장이 그가 저지른 폭력으로 상처를 입고 런던의 워월스로 도망 와 두 아들과 숨어 지내는 한 가정의 일상의 삶 속의 이야기이다. 두 아들에게 그 피 비린내 나는 사건의 실제를 위장하고 그때 그날의 사건을 미화해서 들려주던 이야기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소극으로 발전해서 그 집안을 무대로 20년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두 아들이 친척들과 엄마를 연기하며 공연을 한다.
우리의 삶은 항상 인종, 지역차이, 빈부의 격차 그리고 인간의 열정과 욕심으로 인해 불거지는 갈등 그리고 그것을 해소하려는 노력 등으로 점철되어있다. 그러는 가운데 인간은 자기의 목적을 위해 여러 가면을 쓰고 핍박하고 받고, 저항하고 받고 하는 등의 어려운 삶을 살아간다. 어쩌면 우리는 무대의 극적인 삶보다 더 노출되고, 더 리얼하고, 더 그로테스크하고, 더 굴곡되고 확장되어있는 사회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우리가 직접보고 듣지 않아도 될 흉측하고 역겨운 세계 곳곳의 사건들이 반 강제적으로 우리의 눈과 귀를 홀린다. 그것은 강하고, 짜릿하고, 흥미진진하고, 역겹고, 호기심을 자극하고, 보고 또 보게 하는 마력을 가졌다. 매일 뉴스에 나오는 일상의 엽기적인 사건들에 의해 우리의 눈과 귀는 점점 더 면역되어가고, 그러한 폭력(개인적이던 사회적이던 간에)에 무감각해진 우리는, 전면에 나서지 않은 채 얼굴을 숨기고 혹은 ‘익명 이라는 가면’으로 ‘독립되고 존중되어야 할 타인의 삶의 공간(더 넓게는 국가)’을 조각 낸다. 마치 가벼운 소극의 연기자처럼 그 스스로 리얼타임의 극중극을 만들고 즐긴다. 본인이 성취했고, 참여했기에 짜릿하고 좀더 강한 쾌감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이 물론 정상적인 사회의 일원인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본 작품 <굴레방다리의 소극>도 ‘섬처럼 고립된 공간’ 속에서 그들 스스로 ‘삶을 복원’하는 극중극을 통해, 가식과 허울 그리고 폭력의 상흔은 인간을 얼마나 비굴하고도 비참하게 만드는가 하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나는 이 작품에서 극중극이라는 메타포가 우리에게 늘 눌러 붙어 기생하여, 아니 공생하여 존재하는 삶이, 연극 속의 삶보다 얼마나 부조리한가를 보고 있다.
2007년 에딘버러가 극찬한 Enda Walsh의
2011년 서울에서 재탄생 한다.
21세기가 원하는 동시대성 공연
런던의 Walworth가 서울의 굴레방 다리 밑의 한 아파트로 옮겨온다. 고도로 발전하고 문명화된 21세기의 대도시에서 경제적, 문화적으로 소외 당한 밑바닥 삶을 서울을 배경으로 재조명한다. <굴레방다리의 소극>은 지금 이 시대의 이야기를 풀어내어 관객과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동시대인으로서의 사고와 가치관을 교류하고, 예술적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한다.
고립되어 살고 있는 현대인의 진실 찾기
미디어와 이데올로기에 지배당하는 현대인은 오히려 자신의 의지와 사고로부터 고립되어 타인의 삶을 살고 있는 지도 모른다. <굴레방다리의 소극>은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가족사를 연극으로 끝없이 재연하는 구조이다. 섬처럼 고립된 공간에 갇혀 있는 이들은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지만, 이러한 삶의 형태밖에 알지 못하기에 자유를 누리지도 못하게 된다. <굴레방다리의 소극>은 서로서로 고립되어 살고 있는 지금의 현대인들의 모습을 반추할 수 있는 공연이 될 것이다.
연극 속의 연극, 최고의 연기력
계속해서 극중극을 선보이는 <굴레방다리의 소극>은 남자에서 여자로, 어른에서 아이로, 혼자서 2명 이상의 대화 장면을 연기하는 등 고도의 연기력을 필요로 하는 공연이다. 코미디이면서 참혹하고, 침묵하다가 거대한 충돌을 몰고 오는 무대 위의 희열을 사다리움직임연구소의 최고의 배우들이 유감없이 보여줄 것이다. 그 동안 비주얼 씨어터로 많은 작품을 선보여 왔던 사다리움직임연구소가, 현대인의 삶을 날카롭게 지적하며 진실한 삶을 복원하는 과정을 웃고 싶어도 웃을 수 없는 역설적인 블랙 코미디로 무대에 구현할 것이다.
<연출의도>
삶은 때론 연극보다 더 연극적이다!
미디어와 이데올로기의 자극적인 폭력으로 무감각해져 얼굴을 숨기고 타인의 삶의 공간을 조각 내는 우리들 - 가벼운 소극의 연기자처럼 리얼타임의 극중극을 만들어 스스로를 위안하는 비굴한 현대인의 삶 - ‘섬처럼 고립된 현실’ 속에서 우리의 삶은 연극 속의 삶보다 얼마나 부조리한가
<굴레방다리의 소극>은 원작
우리의 삶은 항상 인종, 지역차이, 빈부의 격차 그리고 인간의 열정과 욕심으로 인해 불거지는 갈등 그리고 그것을 해소하려는 노력 등으로 점철되어있다. 그러는 가운데 인간은 자기의 목적을 위해 여러 가면을 쓰고 핍박하고 받고, 저항하고 받고 하는 등의 어려운 삶을 살아간다. 어쩌면 우리는 무대의 극적인 삶보다 더 노출되고, 더 리얼하고, 더 그로테스크하고, 더 굴곡되고 확장되어있는 사회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우리가 직접보고 듣지 않아도 될 흉측하고 역겨운 세계 곳곳의 사건들이 반 강제적으로 우리의 눈과 귀를 홀린다. 그것은 강하고, 짜릿하고, 흥미진진하고, 역겹고, 호기심을 자극하고, 보고 또 보게 하는 마력을 가졌다. 매일 뉴스에 나오는 일상의 엽기적인 사건들에 의해 우리의 눈과 귀는 점점 더 면역되어가고, 그러한 폭력(개인적이던 사회적이던 간에)에 무감각해진 우리는, 전면에 나서지 않은 채 얼굴을 숨기고 혹은 ‘익명 이라는 가면’으로 ‘독립되고 존중되어야 할 타인의 삶의 공간(더 넓게는 국가)’을 조각 낸다. 마치 가벼운 소극의 연기자처럼 그 스스로 리얼타임의 극중극을 만들고 즐긴다. 본인이 성취했고, 참여했기에 짜릿하고 좀더 강한 쾌감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이 물론 정상적인 사회의 일원인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본 작품 <굴레방다리의 소극>도 ‘섬처럼 고립된 공간’ 속에서 그들 스스로 ‘삶을 복원’하는 극중극을 통해, 가식과 허울 그리고 폭력의 상흔은 인간을 얼마나 비굴하고도 비참하게 만드는가 하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나는 이 작품에서 극중극이라는 메타포가 우리에게 늘 눌러 붙어 기생하여, 아니 공생하여 존재하는 삶이, 연극 속의 삶보다 얼마나 부조리한가를 보고 있다.
줄거리
서울 북아현동(옛지명 : 굴레방다리)의 어느 허름한 서민아파트. 엘리베이터도 없는 아파트에 아버지와 한 살 터울인 두 아들이 살고 있다. 고압적이고 위협적인 아버지, 겁 많고 소심한 작은 아들, 그리고 더 굴복한 듯 보이는 큰 아들. 그들은 서울로 오기 전 고향에서 있었던 할머니의 죽음에 관한 일들을 매일 연극으로 꾸미는데, 이 연극공연이 바깥세상을 두려워하고 단절된 채 살아가는 그들의 일상이다.
문 밖으로 나갈 기회는 오직 마트에 가는 일뿐. 매일 아침 둘째 아들만이 마트에 가서 똑같은 식료품들을 사온다. 연극에 쓰일 소품(식료품)이 도착하면 그들은 먹고, 마시고, 음모를 꾸미고, 태우고, 부수고, 죽이고, 도망치는 잔인하고 난폭한 연극을 시작한다.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두 아들은 엄마와 삼촌 내외, 어린 시절의 자신들 등 다양한 역할들을 연기한다.
큰 아들은 아버지의 독재와 심한 대우, 동생에 대한 연민 등으로 아버지와 아버지의 연극에 대한 증오를 불태우고, 둘째 아들은 자유와 바깥세계에 대한 절망과 염원으로 가득하다.
갑자기 둘째 아들이 매일 가는 마트에서 만나던 점원 아이가 바뀐 봉지를 들고, 이 집에 찾아 오는데…
문 밖으로 나갈 기회는 오직 마트에 가는 일뿐. 매일 아침 둘째 아들만이 마트에 가서 똑같은 식료품들을 사온다. 연극에 쓰일 소품(식료품)이 도착하면 그들은 먹고, 마시고, 음모를 꾸미고, 태우고, 부수고, 죽이고, 도망치는 잔인하고 난폭한 연극을 시작한다.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두 아들은 엄마와 삼촌 내외, 어린 시절의 자신들 등 다양한 역할들을 연기한다.
큰 아들은 아버지의 독재와 심한 대우, 동생에 대한 연민 등으로 아버지와 아버지의 연극에 대한 증오를 불태우고, 둘째 아들은 자유와 바깥세계에 대한 절망과 염원으로 가득하다.
갑자기 둘째 아들이 매일 가는 마트에서 만나던 점원 아이가 바뀐 봉지를 들고, 이 집에 찾아 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