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각색/ 연출의 글
사회와 시대가 누군가의 삶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방관의 시대이다. 세상은 더 더욱 풍성해지고 더 더욱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어딘가 다르다. 어딘가 허전하다. 그리고 이방인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텁텁한 된장찌개를 끓여주던 골목길식당이 세계인의 입맛을 맞춘다면서 퓨전된장 찌개를 끓여주는 고급인테리어로 장식된 가게가 된 기분이랄까?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도 자유로워야 한다”고 외치다 보니 어느새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있는 나를 보곤 한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쯤 “유리의 성”이라는 제목으로 올렸던 공연을 다시 꺼내 대본을 손보고 훌륭한 배우들을 데리고 다시 공연을 한다. 2012년, 과연 정극은 재미있을까?
이 연극은 정신분석학의 대가 칼 융과 그를 찾아온 가학성 성적도착증에 시달리는 마그다라는 한 여인과의 상담심리극이다. 서구 문화는 오래토록 인간의 내면을 탐구해왔다. 인간의 심리에 관한 학문이 발달하고 실제로 심리적인 치료에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우리들의 심리에 과연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 의식적인 혹은 무의식적인 모든 심리가 우리가 육체를 통제하듯 통제할 수 있을까? 가해자이면서도 희생자인 마그다라는 한 여성을 통해서 우리는 동정의 눈물을 흘릴 것인가? 아니면 외면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지난 삶 속의 고통점을 찾아서 자신과의 대화를 시도해 볼 것인가,,,,,,. 연습을 하면서 배우들에게 참 많은 고마움을 느꼈다. 이 연극은 배우들의 연극이고 그들은 그 어려운 과정을 수행하면서, 모두에게 힘이 되었고, 그들 스스로 무대를 장악했다.
이제 저와 배우들과 관객 여러분이 만날 차례입니다. 

원작 : 유리로 만든 세상
The World Is Made of Glass (유리로 만들어진 세상) - Morris West
작가 모리스 웨스트는 여러 필명으로 출간된 초기 작품 몇 권을 포함해 약 30권의 책이 27개 국어로 번역되어 6,000만 부 이상 팔린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이다.
멜버른대학교에서 공부했으며 1933년부터 그리스도교 형제단의 단원으로 뉴사우스웨일스와 태즈메이니아에서 근대 언어와 수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1939년 종신 서약 직전에 수도사로서 규율에 얽매인 생활을 하는 것은 자신의 소명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그리스도교 형제단을 떠나 군에 입대했다. 그는 1943년 전역하여 총리를 지낸 윌리엄 모리스 휴스의 비서가 되었는데, 얼마 후 멜버른에 있는 '헤럴드' 라디오방송사에서 일하기 위해 이 일을 그만두었다. 그 뒤 오스트레일리아 라디오 방송국의 동업자가 되어 일했다. 신학교에서 생활한 경험을 기록한 처녀작 〈내 호주머니 속의 달 Moon in My Pocket〉은 1945년에 발표되었다.
웨스트는 1950년대 초반에 신경쇠약을 겪은 뒤, 세금 납부 부담에 시달리며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모래 위의 교수대 Gallows on the Sand〉(1955)와 〈쿤두 Kundu〉(1956)를 썼다. 이 두 작품의 성공이 그를 전문적인 작가로 성장시키고 그의 소설은 무수히 많은 연극과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 연극의 원작이 되는 ‘유리로 만들어진 세상’은 1982년 발표되었으며 그의 정신적인 고통과 칼 융의 정신분열을 동일시하며 마그다라는 여인을 그려낸 것으로 그의 작품 중 가장 격렬한 심리소설이었다.

줄거리

[시작 : 칼 융의 입장에서]
1913년 어느 따뜻한 봄날이었다. 그 당시는 내 인생의 전환기였다.
나는 스승이자 옛 친구인 프로이드와 결별을 선언하였다. 그와의 논쟁을 증명하기 위해 다른 인간들의 심리가 나에게 주는 영향에 대해서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아내는 다섯번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고, 난 조수인 토니양과 혼외정사에 깊이 빠져 있었다. 겉으로는 철저히 나 자신을 감출 수 있었지만, 내 안에서는 치밀어 오르는 살기와 거친 광기들을 억제하느라 고통스러웠었던 시기였다.
내 손으로 내 아내와 자식의 목을 조를 때 마주치는 그들의 증오의 눈빛들, 난 매일 밤을 악몽과 죄의식에 시달리고 있었다. 바로 그 즈음, 한 여인이 내 분신의 모습으로 나의 상담실을 찾아왔다. 그 여인을 처음 봤을 때 그녀는 마치 여왕이 신하를 방문하듯 나의 서재를 압도했다. 순간 나는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가 아닌 한 남성으로서 여자에게 느끼는 욕망을,,,,,,,. 그때 그녀가 털어놓은 이야기는 정신병이라기보다는 한 여인의 고해성사였다. 난 의사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그녀를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녀와 나와의 만남은 서로 마주보고 달리며 충돌해야만 하는 두 개의 숙명이었고, 절제와 폭발의 서로 다른 결과일 뿐이었다. 이제 여기 그녀와의 실제 상담일지를 공개한다.

[이야기: 마그다의 입장에서]
내 이름은 마그다. 한때는 외과의사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최근엔 사교 클럽 을 운영하고 있었다. 어느날 밤 독일군 대령과 침실에 들었다. 난 벌거벗은 그의 몸을 미친 듯이 채찍으로 내리쳤다. 그날 나날이 심해져 가는 나의 폭력성이 폭발을 하고 만 것이다.
그의 비굴한 표정을 보는 순간 화병을 들어 그의 두개골을 내리치고 만 것이다.
난 그 남자의 입이 뒤틀리는 것을 보고야 깜짝 놀라 현실로 돌아왔다. 난 뒷문으로 빠져 나와 무작정 거리를 헤맸다. 더 이상 그렇게 살 수는 없었다. 그때 나는 어느 저명한 정신과 의사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나에게 구원을 줄 수 있을까?
마침내, 나는 ‘칼 구스타프 융’을 만나기 위해 취리히로 가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지금 이 열차는 삶의 구원과 절망의 기로를 달리고 있다.
코트 깊숙한 곳에는 작은 유리병을 품고 있다. 유리병 속에는, 나를 죽음의 안식으로 인도할 극약이 들어있다.
마지막 희망을 품고 나는 칼구스타프 융 박사의 문을 두드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