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2008 서울연극제 공식 참가작 “두드리 두드리”
서울연극제란?
1977년 <대한민국연극제>로 출발한 서울연극제는 올해로 29회를 맞이한 한국연극의 역사와 전통을 고스란히 담아온 대한민국 최고의 권위 있는 축제이다. 100여 개의 프로와 아마추어 극단들이 서울시민과 서로 어울리며 연극이라는 문화로 어우러지는 대규모 서울의 축제이다. 또한 서울 연극의 발전과 한국 연극의 발전을 도모하여 서울을 세계 속의 문화 도시로 탈바꿈 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서울 연극제는 한국연극의 흐름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는 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며 그것은 연극의 모체인 희곡이 동시대 삶에 적극적으로 포개져야 한다는 기준을 낳았다. 누구나 다 알고 있다시피, 오늘날 대학로 중심의 한국연극은 삶을 축소하고, 삶을 천편일률적으로 정의하는 상투적 언어로 가득하다.
그러므로 다양한 형태의 공연을 통하여 공연예술 활성화에 기여하고자 한다.
“앵콜” 아르코 대극장에서..또 다른 무대가 시작된다.
2007년 대학로에서 공연되었던 <두드리 두드리>는 기억의 연극이다.
기억은 정직하지 않다. 기억은 왜곡된 표현이다.
이 작품은 연극의 내용보다 연극으로 말하는 방식을 강조하고 있다. 말하는 방식으로서의 기억, 그것이 이 작품의 모체이다. 이 작품은 번안작으로 우리가 겪은 과거의 삶이 어떻게 칸토르 식으로 반영되고, 투영되고, 재현되는지 기대할 만하다.
이번 2008 서울연극제 공식 참가작인 <두드리 두드리> 는 작년에 공연된 작품과는 사뭇 다르게 좀 더 넓은 무대에서 탄탄한 비주얼로 채워질 것이다.
언론,평론계의 관심도
2007년 11월 대학로에서 칸토르 작 ‘빌로폴 빌로폴’을 한국화하여 국내무대에 처음 선보인 ‘두드리 두드리’는 국내관객들에게 매우 어려운 작품이었다. 하지만 연극사적으로 매우 의미가 있는 작품으로써 연극을 공부하는 학생, 연극 관계자들에게 널리 알려져 그 가치를 인정 받은 바 있다.
* 연합뉴스- ‘두드리 두드리’ 는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고통을 겪은 폴란드와 한국 의 유사한 역사를 바탕으로 주인공이 가족과 국가, 전쟁에 의해 짓밟히고 희생당한 어머니를 회상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주인공의 기억의 영역이 확장되며, 어머니는 민족의 희생자, 가족들은 이기적인 민중을 각각 상징 하게 된다. (2007.11.8)
* 뉴스컬처- 작품은 전쟁의 처참한 기억, 그에 따른 인간성 상실 등을 통해 비극적 역 사의 악순환과 현재까지 고통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미지화하게 된다.
따라서, 공연에는 소품들의 도상학적 사용과 배우들의 이중이미지 ..(2007.10.26)
* 연극평론가 김미도- 전쟁의 폭력성을 표현주의와 초현실주의의 기묘한 결합으로 강렬하게 시각화시켜 시종 공포와 전율 속에서 헤어날 수 없었다. 배우와 등가적 가치를 이루는 오브제들, 완전히 마리오네뜨화된 배우들의 연기, 극도로 양식화된 조협적인 연기스타일은 때로 생명이 배제된 느낌마저 주었다. 연출가의 치밀한 계산에 의해 정교한 움직임으로 강렬한 회화적 이미지들을 점층 시켜갔다.
건국 60년,시대 변화를 적나라하게 표현하다.
<두드리 두드리>는 칸토르의 “빌로폴 빌로폴”을 우리 이야기로 옮겨온 것이다. 배우들은 마치 신들린 영혼처럼 화자에 이끌려 무대에 앉혀지고 어린 날의 사건들을 재연한다. 물론 이 사건들은 어떤 일관된 사건과 이야기를 가진 것이 아니라 기억의 작용처럼 논리와 연관성이 없다. 허나 굳이 드러나는 이미지를 통해 파악하자면 전쟁의 처참한 기억의 편린, 대량학살과 그에 따른 인간성 상실을 통해 민중의 고통과 비극적 역사의 계속되는 악순환, 끊임없는 폐허, 주검들 그리고 지금까지 고통당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정의 할 수 있다. 즉, 모든 육체적, 정신적 경계를 뛰어 넘는 개인적 공간인 상상력, 또는 기억, 역사의 차원을 형상화 한 것이다. 이에 따라 공연은 소품들의 도상학적 사용과 배우들의 이중이미지, 음악의 심원한 파장, 소도구들과 배우들의 기계적 움직임들로 인해 위압적이고도 감각적인 경험의 장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와 함께 20세기 후반, 또는 미래주의적인 연극표현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자 한다. 또한 폴란드의 역사와 우리나라의 역사가 유사한 점에 착안하여 번안하였으며 이를 통해 관객들은 작품의 주제를 우리의 것으로 쉽게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원작에서는 기독교 정신이 작품의 근간을 이루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와 달라 이점 역시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게 어머니의 입장을 강화하여 번안하였다.
줄거리
‘무대’는 탁자와 의자들이 난잡하게 펼쳐져 있다.
멀쩡한 모양새는 오직 ‘나’뿐이다. 무대는 ‘나’의 기억 속을 드러내는 공간이다.
기억은 순차적인 시간대를 요구하지도 않고 명확한 공간을 그려내지도 못한다.
기억이 떠올리는 사건은 논리적 인과관계도 없는 일종의 파편들일 뿐이다.
‘나’는 이런 기억들의 주체이며 원하는 대로 가공하는 신이다.
‘나’는 가족들을 기억하며 무대 위에 어릴 적 외갓댁을 만들어 간다. 그러나 그 기억의 불완전함 때문에 포기해 버린다. 그리곤 ‘나’의 아버지와 ‘나’의 어머니의 결혼식을 기억해낸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하게도 ‘나’의 기억이 아니다. 그것은 ‘나’의 가족들을 기억하며 만들어낸 상상일 뿐이다. 외가쪽 사람들과 좋지 않은 관계의 아버지는 ‘나’가 보기엔 가정적이지 못하고 고집 센 무능한 군인일 뿐이었다. 그런 아버지를 사랑한 어머니는 아버지로부터, 가족으로부터 버림받고 핍박받는 존재일 뿐이었다.
‘나’의 기억은 이제 그 영역을 확장한다. 희생자인 어머니는 민족의 희생자를 대변하게 되고, 가족들은 이기적인 민중을 대변하게 된다. ‘나’는 6.25전쟁과 군사독재의 개발논리를 떠올린다. 전쟁 속 비인간성과 패륜으로 어머니는 강간당하기도 하며 군사독재 속에선 자본과 비민주의 그늘에 가려진 민초를 보여주게 된다.
‘나’는 단순히 기억하는데 그치지 않고 의지를 기록하려 한다. ‘나’는 사진사를 이용하여 사진으로 현상을 기록하고 역사를 정리하며 그들을 사격하여 응징하려 한다.
그리고 모두가 무대 위에서 죽어간 뒤 ‘나’는 유유히 그곳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