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백가흠 원작 소설 <귀뚜라미가 온다>
프로젝트 그룹 휘파람의 <귀뚜라미가 온다>는 백가흠 원작 소설 <귀뚜라미가 온다>를 각색한 작품이다. 소설가 백가흠은 극단적인 삶에 기댄 우울한 몸부림과 기이한 사랑의 방식을, 절제된 언어와 구성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젊은 작가이다. 백가흠이 만들어내는 주인공들은 내면이 모두 황폐해져 모든 세상이 그들에게 불가항력으로 다가온다. 모성에 대한 질투, 경쟁과 소유욕, 잔인한 폭력을 지닌 이들은 피학과 가학, 헌신과 폭행 등으로 그들만의 사랑을 표현한다. 프로젝트 그룹 휘파람이 만들어낼 연극 <귀뚜라미가 온다> 역시 소설에서 보이는 이미지를 무대 위에 강하게 표출하여 은유적이면서도 상상력 가득한 세계를 무대 위에 그려낼 것이다.

[예술공간 서울]이 준비한 두 번째 공연
프로젝트 그룹 휘파람의 <귀뚜라미가 온다>는 [예술공간 서울]의 개관 기념 기획 공연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이다. [예술공간 서울]은 서울연극협회가 운영하는 두 번째 극장으로, “다르다, 충돌한다, 지속적이다”라는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예술가들의 자유로운 공간으로 관객들과 만날 것이다.

기이한 방식으로 표현되는 그들의 사랑
연극 <귀뚜라미가 온다>는 백가흠의 단편소설집 <귀뚜라미가 온다>에 수록된 두 번째 소설을 각색하여 만든 공연이다. 달구분식과 바람횟집은 지붕을 함께 쓰는 ‘한집’이다. 그 집에 사는 달구와 노모, 여자와 사내는 폭력과 근친상간, 가학적 성행위 등으로 각자의 사랑을 표현하며 살고 있다. 태풍 “귀뚜라미”가 불어 닥치며 여자와 노모는 죽고, 사내와 달구만이 남는다. 바다, 가을전어, 귀뚜라미, 노래와 춤, 폭력과 섹슈얼리즘이 어우러지는 판 속에서 우리는 희망을 찾아보고자 한다.

연출의도
연극 <귀뚜라미가 온다>는 폭력과 섹슈얼리즘이라는 극단적 이미지를 차용함으로써 “왜 살고, 무엇을 위해 살고, 난 지금 왜 이렇지. 도대체 무슨 이유이지 ----- 그러나 잘 모르겠다.”라는 질문을 관객들에게 던지고자 한다. <잘 모르겠다> 우리는 왜 우리의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 수 없고 어처구니없는 일들로 끝을 맺는가? 이 작품에서 왜 태풍은 그들을 죽음으로 이끄는가... 태풍은 도대체 뭐지? 어쨌든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친절하지 않게... 극단적인 장면 연출이 주는 예술적 접근과 그 소재가 가족의 실존에서 기원한다는 점이 충돌한다는 점은 본 작품만의 큰 강점이라고 본다. 삶과 죽음, 산 자와 죽은 자로 분리되는 가족사의 비극-어쩌면 아이러니-이 무대 위의 시청각적 오브제들을 통해, 보다 적극적으로 관객에게 다가갈 것으로 기대한다. 또한 작품 속 주된 오브제인 ‘물’은 때로는 청각적으로, 때로는 시각적으로 적절히 이용되어 작품의 이미지를 구체화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덧붙여, 배우의 몸으로 표현되는 태풍 ‘귀뚜라미’의 움직임이 풍부한 연극적 재미를 더할 것이다.

줄거리

외로운 가을 밤, 귀뚜라미 소리는 없다. 전어가 온다는 가을의 바닷가. 그 곳에 바람횟집과 달구분식이 있다. 달구는 오늘도 대낮부터 해가 질 때까지,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올라 술을 마시며 운다. 노모는 그런 아들을 기다리며 오늘도 잔뜩 꼬부라져 떨어진 담배꽁초를 주워 문다. 동그랗고 흰 얼굴의 여자는 싸구려 매니큐어가 칠해진 손으로 분주하게 전어를 옮겨 나른다. 여자보다 한참 어린 남자는 오늘도 잔뜩 구겨진 욕설을 내뱉는다. 그렇게 공존하는 그들은 언뜻 보기에 바닷가의 비릿함을 연상시키지만, 어쨌든 그들은 저마다 꿈을 꾸고 있다. 그들은 전어만 오면 다 좋아질 것만 같았다. 달구가 노모를 향해 또다시 큰 주먹을 들어 올리던 그날 밤. 여자와 남자가 비릿한 정사를 마치고 늘어져있던 그날 밤. 그 밤에, 귀뚜라미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