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연출의도>

일상의 현실을 예술가적 창조력으로 초 현실화하는 것이, 그래서 가공할만한 폭발력을 더하게 하는 것이 연극의 존재 가치라고 생각한다. <찬란한 오후>에 등장하는 네 명의 젊은이들의 지루할 정도로 평범한 일상을 통해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진단해 보고자 한다.
극은 처음부터 무의미의 반복과 지루함으로 이루어지는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비르지트는 끊임없이 머리 모양을 바꾸지만 그것은 만족을 가져다 주지 못하는 의미 없는 행위일 뿐이다. 찰리는 작가이면서도 글을 쓰지 못하고 있으며 일상의 권태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다.
등장인물들은 햇빛 가득한 여름날에도 밖으로 나가지 않고 방안에서 시간을 허비하는데 이것은 젊은 세대들에게 세상이 요구하는 것, 열심히 일하고 무엇인가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을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들을 지독한 권태에 빠지게 하는 것일까?
이번 작업에서는 그 문제점의 원인을 사회적인 것으로 규정짓기보다는 인간 개개인의 내면의 문제로써 다뤄보고자 한다. 젊은이들이 충분한 자아성찰을 하고 목표의식을 지녀야만 창 밖은 찬란히 빛나는 오후가 될 것임을 경고한다.

<기획의도>

[예술공간 서울] 개관기념 기획공연 시리즈 세 번째 공연
[예술공간 서울]에서 개관기념 기획공연 시리즈의 세 번째 공연은 이성구 연출의 <찬란한 오후>이다. 연극 <찬란한 오후>는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젊고 역동적인 공연으로 관객들을 만난 바 있다. 이번 [예술공간 서울]의 공연에서도 관객들은 끓어오르는 에너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젊은 우리 관객을 위한 연극
현대 사회의 젊은이들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살고 있는지 의심스러워 보일 때가 많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만, 삶에 아무런 의심도 없고, 호기심도 없어 보인다. 연극 <찬란한 오후>에는 네 명의 무기력한 젊은이들이 등장한다. 관객들이 이들을 보고, 그들의 감각을 깨웠으면 한다. 또한, <찬란한 오후>는 젊은 세대들이 흥미로워할 공연으로, 파격적이고 신선하여, 젊은 관객층을 개발하는데도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작은 창문을 통해서 들어오는 찬란한 햇살
원작은 배경이 방안이다. 하지만, 연극 <찬란한 오후>에서는 무대 배경을 집에 있는 차고로 바꾸었다. 차고 안에는 오토바이가 있다. 자유를 표현한 오토바이는 고장이 나 움직일 수 없고, 등장인물들은 움직이지 않는 정체된 공간인 차고에서 먹고 마시며 시간을 보낸다. 찰리와 비르지트는 이 창고를 나가지 않는다. 그들의 모습을 통해 미성숙하고 자립성이 부족한 젊은이들, 그리고 진지한 물음 없는 충동적인 요즘 세대를 그리고자 한다. 현대사회에 살고 있는 젊은 세대들의 문제점을 사회적인 시선보다는 개개인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이해해 보고자 한다. 그리고 동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함께 ‘찬란한 햇살’을 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보고자 한다.

<작품 소개>

연극 <찬란한 오후>는 창조적이고 진취적, 능동적으로 사회에 이바지해야 하는 젊은이들의 안일한 삶을 고발하는 작품이다. 청년실업이 사회의 고질병이 되어버린 지금 문제점의 원인을 정치적, 사회적 문제로만 보지 않고 인간 내면의 문제로 다루려고 한다. 등장인물들에게서는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성향을 지닌 ‘히피문화’를 연상할 수도 있다. 이번 작품에서는 우리가 비정상적이라 여기는 동시대 젊은이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관객의 내면에 숨어 있는 비사회적인 충동을 일깨우고 내적 만족을 이루게 할 것이다. 무대 위에서 문제를 극복할 대안이나 바람직한 인간상을 제시하지는 않을 것이다. 관객들에게 우리가 ‘젊음’에 대해 고민한 흔적을 보이고 싶다.

줄거리

햇빛 가득한 여름날 오후, 평범한 사회에 지겨워하고 지루해하는 도시의 젊은이들이 방안에 있다. 머리모양에 신경 쓰고, 담배를 피우고, 팝 음악을 듣고, 술을 마시고 섹스하고, 무의미한 잡담을 나누고, 운 좋게 얻어온 대마초를 피우고, 그러다가 싸우게 된다. 이들은 희곡과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들이면서도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내지 못한다. 그리고 지루한 세상에 절망을 드러내 보이지도 않는다. 이들은 자기방식으로 편안하고 행복하다. 이들의 의사소통은 철저하게 최소한의 언어로 축소되어 있으며, 다른 한 편으로 완벽하게 무의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