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설명

현대 부조리극의 선구자 외젠 이오네스코의 1962년 작 <왕, 죽어가다>(각색 김덕수, 연출 유환민)가 오는 11월 8일부터 12월 2일까지 홍대 인근에 위치한 가톨릭청년회관 다리 CY씨어터에서 공연된다.

다른 세상, 잃어버린 세상, 잊혀진 세상, 가라앉은 세상...
- 당신은 지금 어디쯤 살아가고 있나요.

‘죽음’은 즐겁고 유쾌한 단어가 아니다. 언젠가는 ‘죽을 운명’의 사람들에게 어쩌면 ‘죽음’이란 단어는 쉽게 내뱉지 못하는 금기와도 같은 말이다. 그러나 현대인들이 살아가는 시간 속엔 ‘죽음’이라는 단어가 생소하지 않다. 그것은 ‘죽음’이라는 것이 모든 생명이 생의 마지막에 도달할 종착지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현재의 시대적 상황들이 우리를 그것으로 더 가깝게 몰고 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삶을 살아내야 하고 살아남아야 한다. 소중한 생이 있을 때 그 마지막은 더 가치 있는 것이 되기에, 어느 날 한 순간에 ‘죽다’가 아닌 우리의 삶-죽음을 따스하게 매만지며 ‘죽어가야’ 하는 것이다.


‘죽다’ 가 아닌 ‘죽어가는’ 자의 이야기

자신이 죽을 것이란 사실을 알고도 전혀 준비 없이 살아가는 불쌍한 사람이 비단 베랑제 뿐일까? <왕, 죽어가다>는 공연이 끝날 즈음 ‘죽을 것’을 알게 된 베랑제 왕의 고군분투 이야기를 다룬다. 바로 ‘사라지는 자’의 이야기다.

온수 주머니 차고 휠체어에 앉은 베랑제가 줄리엣에게 말한다.

‘하루에 같은 길을 두 번 걷다니! 위로는 하늘이 있고! 하루에 두 번 하늘을 쳐다볼 수 있어. 숨을 쉬면서. 우린 숨을 쉰다는 생각조차 못하고 살지. 생각해봐. 분명히 넌 모르고 살았을 거야. 숨 쉰다는 건 기적이야’

어리벙벙한 상태지만, 죽음 저쪽에서 이쪽 삶을 들여다보는 자의 말이라니, 또 이 연극이 닫히는 순간 죽을 자의 말이라니, 조금은 믿어볼만 하지 않은가.


우리들의 살아있는 현재에 쉼표가 되는 연극, 2012 <왕, 죽어가다>

이오네스코 원작 가 처음 공연된 시간에서 5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으며, 2012년 11월 <왕, 죽어가다>를 마주할 각자의 사람들이 비록 그 시절의 ‘왕’은 아닐지라도 우리는 현재의 삶 속에서 누구보다 귀하게 여겨질 존재로서 죽어가야 마땅하다. 2012 <왕, 죽어가다>는 어느 때보다 부조리한 시대를 살아가는 동시대인들로 하여금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고 아직 허락된 시간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하는 쉼표를 가슴에 담는 시간이 될 것이다.

이번 공연은 서울 어느 동네 철거민들의 이야기를 다룬 <없는 사람들>(2011)로 관객들과 만난 가톨릭 신부이자 연극 연출가인 유환민(극단 동네방네 대표)이 연출을 맡고, <우리사이>(2007), <어느 미국 소의 일기>(2009), <없는 사람들>(2011) 등 을 집필한 극작가 김덕수의 각색으로 무대에 오른다.